[헤세카 단편 모음집]
[찬열빙의글] 네 곁에 있어


[찬열빙의글] 네 곁에 있어

대사 목록을 클릭해서 보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어두운 방 안에서 혼자 몸을 웅크리며 생각했다. 넌 모두의 손을 그리 쉽게 놓아버린 것을 후회할까. 너는 그곳에서 나를 잊고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수많은 상처들과 너를 끊임없이 힘들게 한 지친 마음들이 그곳에서 너를 괴롭히고 있지는 않을까.

그곳에서만큼은 네가 아파하지 않았으면. 네가 항상 행복했으면. 네 스스로 자신을 괴롭게 하지 않았으면. 어둠 속에서 혼자이려 하지 않았으면.

굳게 닫힌 창 틈 사이로 한 줄기 따사로운 볕이 내린다. 볕이 스미는 아침이 밝아오듯, 나의 삶에도 한 줄기 빛이 내릴 수 있을까. 길었던 어둠이 사라지고, 아침이 찾아오면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너 없이는 하루도 살기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던 내가, 너 없이 일년을 버텨 왔다. 너의 기일에 맞춰 네가 생을 마감했던 그 장소에 가 보았다.

막상 그 곳에 서 보니 도시의 풍경이 색달리 보인다. 저녁 시간임에도 바쁘게 움직이는 차들과 사람들, 거리를 밝게 비춰주는 가로등과 거리의 불빛들. 평소에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X같은 세상. 착하게 산 사람은 뒤지고, 지X떨면서 산 새끼들은 아직까지도 살아있네..."

난간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차가운 밤 공기가 바람을 타고 나에게로 불어온다. 더는 이런 끔찍한 곳에서 살기 싫었다. 마음을 굳히고 한 발, 두 발 걸음을 옮겼다.

난간에 걸터앉아 주머니 속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익숙한 번호를 입력하고 메세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한 문장도 적지 못했는데, 벌써부터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버린다. 떨어진 눈물은, 차디찬 밤 공기와 맞닿아 차갑게 식어간다.

겨우 꾸역꾸역 메세지를 다 작성한 남자는, 휴대전화를 그대로 땅바닥에 던져버린다. "미안해, 엄마. 이렇게...이렇게 못난 아들이어서 미안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남자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바닥으로 떨어져 가는 남자는 스르륵 서서히 눈을 감는다. 남을 이들이 걱정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쿵-

* * * 여기는 어디일까. 나에게로 따사로운 한 줄기 볕이 쏟아져 내린다. 주위를 둘러보자 익숙한 창 밖의 풍경이 보였다. 아, 여기는 나와 네가 살던 집이구나.

덜컥- 집의 문이 열리고, 내가 그토록 찾아 헤메던 너의 모습이 보인다. 과거의 너와 나는 참 행복해 보인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갑자기 울컥, 눈물이 솟는다.

"-아, 찬열아-! 의사선생님!" 희미하게나마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어머니였다. 남아있는 온 힘을 다해 눈을 떴다. 흰 천장과 처음 보는 기계들, 그리고 피에 젖은 침대. 병원이구나, 여기는. 나는 옥상에서 떨어져서, 병원으로 이송되어 왔구나.

어머니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린다. 문이 벌컥 열리고, 의사선생님과 간호사들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다.몸의 힘이 점점 빠져간다. 눈꺼풀조차 들어올리기 힘들어진다. 서서히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을 들은 어머니는 숨을 쉬는 것 조차 힘겨워 보일만큼 눈물을 쏟아낸다. "우리, 우리 찬열이...불쌍한 내 새끼...엄마가, 엄마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침상 옆의 기계에서 내 바이탈 수치가 점점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자꾸만 잠이 온다. 더는 버티지 못하고 스르륵, 눈을 감았다. 삐이-

울음 소리만 들리던 병실에 조용한 기계음이 울려퍼진다. 나는 이 세상에서의 소중한 기억들을, 많은 추억들을 뒤로 한 채 너에게로 간다. 하지만 나는, 나를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 것이다.

'엄마, 나 찬열이야. 엄마 두고 먼저 가서 미안해. 엄마 호강시켜 준댔는데 못지키고 가서 미안해. 먼저 가서 은경이랑 같이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엄마는 천천히 와. 사랑해.'

끝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