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16. | 운명이란건


한편 리원은 정처없이 계속 걸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은 리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머리카락을 스쳐지나갔고, 제법 쌀쌀해진 날씨가 얇은 자켓 너머로 느껴졌다.

막 걷다보니 도착한 곳은 하필이면 그 날 성운의 품에서 안겨 울었던 그 벤치였다.


현리원
이때는 기대도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현리원
걔라면 나한테 위로가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리원
걔와의 관계가 더 큰 아픔만 만들어버렸네


현리원
운명이란건 거스를 수 없나보다


현리원
이게 나랑 걔의 운명이자 숙명이었고

혼란스러움이 살짝 가라앉자 이젠 씁쓸한 기분만 들었다.

아직 18살 밖에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참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띠링)

발신자:[성운이♡]

연인이 됐다고 설레는 마음으로 바꾼 이름을 이런 상황에서 보자 어딘가 서글퍼졌다.

✉[성운이♡] 리원아 다음주 목요일에 재판이야

✉[성운이♡] 그 전에 굳이 만나자고 하진 않을게

✉[성운이♡] 내가 네 얼굴을 못 볼 것 같기도 하고 너도 나 보기 싫을 것 같아서

✉[성운이♡] 그러면 그 날 만나자

✉[성운이♡] 그리고...대신 미안해

선뜻 답장을 보낼 수가 없었다.

어떻게 보내야 좋을지도 몰랐고,

답장을 하게 되면 너무 보고싶어질 것 같았다.

지금의 난 걔를 보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피할려고 하는건데

또 마음은 안 따라줘서 보고싶어질 것 같기 때문에

문자를 읽었음에도 그냥 묵묵히 폰 전원 버튼을 꾸욱 눌렀다.


현리원
미안해 내가 아직 널 볼 수가 없을 것 같아

더 이상 갈 곳도 없고, 다리도 슬슬 아파오기 시작 할 때 쯤 리원은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들리는 도어락 소리와 함께 차가운 공기가 맴도는 집에 들어섰다.

쇼파에 대충 가방을 던져놓고 옆에 걸터앉았다.

고개를 돌리며 집을 훑어보니,

탁자 위에는 며칠 전 성운이 입었던 사촌오빠의 하얀색 명품티셔츠가 가지런히 올려져있었다.


현리원
짜증나게 이건 왜 또 여기있어...

그 티셔츠를 보니 갑자기 또 원망스러워졌다. 왜..왜 하필이면 걔처럼 좋은 애가 그런 사람 밑에서 태어난걸까.

왜 하필이면 그 사람이 들이박은 차가 우리 엄마 차일까.

왜 하필이면 내가 걔랑 만난걸까.

그 모든것이 다 나의 운명이었고, 이것또한 마찬거지였다.

그리고 아무 힘 없는 인간이게 주어지는 선택권이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