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DEN CARD: 히든 카드
ESPER: 초능력자 [08]


"흐, 흐익!!!! 살려주세요!!! 여, 여기 사람 있어요!!!!"

몸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언제 공격할까 타이밍을 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웬 남학생 두 명이 함께 뛰어오고 있었다.

딱 봐도 우리가 찾고 있던 남학생들 같았다. 도대체 여기서 뭐하는 거냐며 소리치려던 그때, 그들의 뒤에서 먼지를 흩날리며 다가오는 무리가 보였다.

김여주
"…와."

코뿔소다.

김여주
"시발, 여기가 동물의 왕국이야 뭐야."

한국 땅에선 그렇게 보기 힘든 코뿔소가 저기 앞에 한 마리도 아닌 한 무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눈은 새들과 마찬가지로 붉은색을 띄었고, 몸은 철갑옷을 입은 듯 딱딱한 무언가로 덮여있다.

그들에게 쫓기며 달려오는 남학생들이 보였다. 이 모든 일의 원흉. 이리로 오지 말라며 소리치거픈 본능을 애써 붙잡고 손을 뻗었다.

…애들을 피해서 잘 조준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저 두 남학생들이 자꾸 손을 뻗는 방향으로 다가와서 곤란했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이 달려오는 방향으로 맞부딪히며 달려나가려던 그때,

바닥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그림자가 저 멀리서 다가오는 것들을 한 번에 집어삼켰다. 숨을 멈춰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니, 그제야 자신이 누군가의 품에 안겨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후… 조금만 더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너, 방금 저기로 뛰어가려고 했지. 저것들한테 깔려 죽고 싶어?"

마치 백허그를 한 자세로 호석의 가슴에 여주의 등이 닿자, 호석은 여주를 품으로 더 끌어당기며 으르렁거리듯 속삭였다. 귓가에 닿는 숨소리에 여주는 몸을 흠칫 떨었다.

김여주
"아, 아, 아니거든요. 그, 이, 이건 좀 놓죠."


정호석
"싫어. 놓으면 도망칠 거잖아."

평소답지 않게 말을 더듬어버렸다. 등 뒤로 호석의 심장이 뛰는게 느껴져 움직이지도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으니, 호석은 단호하게 싫다 대답하며 인이어를 매만졌다.


정호석
"아아. 이렇게 쓰는 거 맞나? 여주한테 합류했어요. 남학생 두 명도 찾았고요."

한서준
— 하아, 다행이다. 여주 상태는 어때. 괜찮아? 다치진 않았어?


정호석
"뭐……."

시선만 옮겨 대충 여주의 몸을 훑어보던 호석은 여주의 목과 손바닥, 그리고 얼굴에 쓸린 상처를 봤지만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리며 담담하게 답했다.


정호석
"다칠 뻔하긴 했는데, 제가 막았어요. 괜찮아요."

대놓고 하는 거짓말에 여주는 멈칫 상처가 있는 손을 가렸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왠지 숨고 싶어졌다.

김여주
"…여긴 왜 왔어요."


정호석
"혼자라 위험해 보여서."

김여주
"…안 위험해요. 그러니까 이제 이거 좀…… 놔주세요."

아까보다 조금은 차분해진 여주가 한숨을 내뱉으며 말하자, 호석은 잠시 뜸을 들이다 이내 여주에게서 한 걸음 물러났다. 물론, 정말 딱 한 걸음이었지만 말이다.

호석에게서 떨어진 여주는 참았던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코뿔소들에게 쫓기던 두 남학생이 어느새 여주의 앞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대는게 보였다.

김여주
"야…. 너희 진짜,"

단미래
"여주야!!!! 위!!!!!"

미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여주의 몸이 하늘로 부웅 떠올랐다. 갈고리에 할킨 듯 어깨와 허리가 아팠지만, 그걸 신경쓸 겨를도 없이 하늘 위로 떠올랐던 여주의 몸은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눈가를 스치는 걸 애써 막으며 똑바로 바닥을 바라봤다. 하늘에 떠있는 여주를 향해 입을 벌리고 날아오는 새 여섯 마리.

이미 새들이 하늘로 올라와서 그런지 호석의 능력은 일정 거리까지밖에 올라오지 못했고, 여주는 왼손으로 오른쪽 손목을 붙잡고 새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김여주
"집중… 집중해, 김여주."

하늘에서 떨어지는 와중에도 능력이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이 가지 않도록 신중에 신중을 가했다. 그리고 불과 새들과 여주의 거리가 10미터도 남지 않았을 때,


새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김여주
"성공했……."

단미래
"여주야!!!!!!!!!!"


정호석
"아, 자, 잠깐만!!! 여주야 조심해!!!!!"

새들을 없애버림과 동시에 하늘이 뻥 뚫리더니 떨어지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10초 내에 바닥에 뚝 떨어질 듯 하다.

점점 바닥이 가까워지는 것이 보여 눈을 꾸욱 감은 그 순간,

둥실–

동그란 원 안에 갇혔다.

예상했던 고통이 느껴지지 않아 조심스레 눈을 떠 주변을 살펴보니 웬 투명한 막이 둥글게 감싸 보호하고 있었다.

천천히 바닥에 발이 닿으니 풍선이 터지듯 이 결계 또한 펑 터졌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멍하니 서 있으니 곧바로 달려온 미래가 여주를 껴안았다.

단미래
"여주야!!!!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어?!?! 보건실 갈까?!?!"

김여주
"……."

껴안은 미래의 어깨 넘어로 호석과, 아까는 자리에 없었던 남준이 보였다. 아무 말 없이 뚫어져라 쳐다보니, 남준도 여주의 시선을 느낀 듯 마주보며 입모양으로 무어라 말을 했다.

'괜찮아?'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게 구해진 건.

윤기도, 호석도, 남준도…. 아니, 그냥 다 내게는 낯설었다.



인물들의 능력 정리를 댓글에 적어두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트 눌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