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DEN CARD: 히든 카드

ESPER: 초능력자 [09]

현장을 정리하고 난 뒤, 여주는 미래, 남준, 호석, 그리고 이 일의 원흉인 아이들과 함께 가디언실로 들어갔다. 종종 이런 일이 있는지라 선생님들께는 따로 말씀드리지 않아도 되는 사안이었다.

단미래

"야!!!! 너희들 미쳤어?!?! 누구 마음대로 거길 들어가래!!!!"

"죄… 죄송합니다…."

단미래

"이건 단순히 징계로만 끝나지 않을 거야. 너희 때문에 몇 명이나 죽을 뻔한지 알아?!?! 당장 말해!! 누가 주선한 거야!!!"

"……."

허리에 손을 올린 채 목이 터져라 호통을 치는 미래에 아이들은 하나같이 한 아이만 바라봤다. 진하준. 고등학교 1학년이라고 했나. 알만한 애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김여주

"야."

"……."

김여주

"대답해. 너 부르는 거 맞아."

"…네."

김여주

"왜 그랬어? 선생님들이 학교 내외에서 가면 안 되는 곳은 다 알려줬을 텐데."

"……."

왜 이렇게 속 터지게 구는 건지. 여주는 대답이 없는 하준을 끈질기게 쳐다봤다. 어떻게서든 답을 듣겠다는 의지였다.

한서준

"에이, 여주야. 너는 지금 치료가 시급해 보이는데? 얼른 치료부터 받고 여기는 내가,"

김여주

"됐어. 고작 쓸린 거 가지고 뭘 그래. 뭐, 이렇게 상처난 것도 누구들만 아니었으면 없었을 테지만."

"……."

단미래

"너희!!! 여주 말에 당장 대답 안 해?!?!? 확!! 모가지 비틀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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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어, 서, 선배. 폭력은 안 돼요."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 목을 조를 것 같은 미래에 아이들은 흠칫 몸을 떨었고, 남준은 옆에서 미래를 잡느라 진땀을 뺐다.

어찌나 성격이 소 같은지… 적이라고 인식이 들면 바로 뿔을 내다박으려고 했다. 물론, 그 적이라고 인식하는 것도 다 여주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들 한정이지만.

"죄, 죄송해요…. 그냥 후배들 놀려주려고 한 건데 진짜로 갈 줄은 몰랐어요…. 애들이 간 거 알고서 저희도 급하게 따라간 거였고요…."

김여주

"그래? 그럼 너희 넷 중에 누가 책임질래?"

"…네?"

김여주

"너희들 때문에 가디언 다섯이나 움직였고, 너희들 때문에 그 다섯 명이 학교 수업도 제대로 못 들었어."

김여주

"뭐, 나야 상관은 없다만 성적을 중요시하는 우리 가디언 부장님께서 피해를 보셨는데, 누가 책임질 거냐고."

언제부터 네가 나를 챙겼다고…. 뒤에서 서준이 툴툴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건 여주가 뒤돌아보지 않아도 미래의 찌릿한 눈빛에 바로 수그러들었다.

김여주

"왜 말을 못 해? 누가 책임질 거냐니까?"

"그… 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근데… 어떤 책임을 어떻게 지라는 건지……."

독촉하는 여주의 물음에 결국 이 사건의 시작인 하준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차마 여주의 얼굴은 쳐다도 못 보겠어서 고개를 숙인 채 물으니, 앞에서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김여주

"뭘 어떻게 책임져. 모가지를 비틀어 버려야지."

여주의 말을 들은 하준은 그만 그 자리에 주르륵 주저앉고 말았다. 앞서 미래가 했던 말과는 조금, 아니 확연히 다른 반응이었다.

여주가 내뱉은 말에 섬뜩함을 느낀 건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미래의 옆에 조용히 서 있던 호석이 속삭이듯 미래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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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저러다 진짜… 죽이는 거 아니에요…?"

단미래

"응? 뭐가? 아, 여주? 저거 여주 농담인데 왜? 방금 내가 한 말 따라한 거잖아. 너무 귀엽지 않니? 아궁, 콱 깨물어주고 싶어랑."

그렇다. 여주는 농담으로 말한 것이었다. 여주의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이들은 식은땀만 줄줄 흘릴 뿐이고…….

여주는 다음 수업 시간이 시작하기 딱 직전에 교실에 도착했다. 이번 수업 시간은 건설, 사냥, 보조 중 하나를 선택해 듣는 것이었는데 여주는 자동적으로 사냥 수업을 듣게 됐다.

가디언의 일은 월타나 볼타를 없애는 것, 즉 생명체를 죽이는 것이기에 들을 수 있는 수업이 사냥밖에 없었다.

다른 학생들보다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자리가 딱 하나 남았고, 여주는 옆에 누가 앉았는지는 궁금해하지도 않으며 굳이 돌아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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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어! 여주다!"

김여주

"……?"

아, 그냥 돌아볼 걸 그랬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이어폰을 꽂으려던 행동을 멈추고 슬쩍 시선만 옆으로 돌렸다.

옆자리는 김태형, 앞자리는 정국과 지민. 하긴, 얘네도 가디언이기는 하니 이 수업을 듣는 것에 딱히 놀랄 일은 없었다.

"어이, 거기 조용히 하고! 오늘 수업은 자, 여기 토끼 한 마리를 죽일 거예요."

"네에?! 토끼를요?!?!"

"세상에는 무시무시한 존재들이 많아요. 그 중 사나운 동물들이 많죠. 언젠간 이 토끼가 우리를 잡아먹을지도 모르는 날이 올 거예요."

김여주

"……."

무시무시한 존재들. 분명 반정부군이 만든 월타와 볼타를 말하는 것일 터였다. 저렇게 선생님이나 정부가 학생과 국민들을 향해 진실을 숨긴다는 건 전부터 알고 있었다.

알아서 좋을 것 없다며, 알면 다칠 것이라며 계속해서 답변을 미루고 미루다 저 지경이 된 것이었다. 그 뒤에서는 몇 명씩이나 죽어나가는 가디언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가디언에 대한 언급은 일절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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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저번에 봤던 그 코브라 같은 걸 말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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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그에 비해 저 토끼는 너무 작고 귀여운데? 저걸 어떻게 죽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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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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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근데 전정국. 넌 왜 자꾸 여주 쳐다보냐? 여주 얼굴 뚫어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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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김여주, 너 얘랑 뭔 일 있었어? 너한테 할 말 있다는데?"

김여주

"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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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그냥 놔둬. 원래 또라이들은 또라이들끼리의 세상에서 노는 법이잖아. 나도 이제 체념했어."

태형은 징글징글하다는 표정으로 지민과 정국을 쳐다봤고, 그 와중에도 정국은 계속해서 여주를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 건지, 마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자, 그럼 토끼를 받아가볼까? 앞 줄부터 나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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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야, 박지민. 내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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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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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아 쉬벌놈들이 맨날 나만 시켜. 야, 전정국. 너까지 나한테 이러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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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지 혼자 뭐라는 거야, 저 새끼는."

여주는 그들의 대화를 신경쓰지 않은 채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관심이 없는 것도 있고, …무엇보다 정국의 시선이 뜨거웠다.

저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분명 새벽에 그렇게 말했던 대결이겠지. 그제야 정국을 혼자 훈련장에 두고 왔다는 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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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야, 받아."

김여주

"난 안 할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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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아씨, 그럼 괜히 가져왔잖아. 그냥 받아."

긴 귀를 한 손에 잡힌 토끼가 지민에게서 여주에게로 넘어왔다. 하얗고 복슬복슬한 털에 까만 눈동자를 가진 토끼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 기분이 그리 썩 좋지는 않았다. 이 아이도 강제로 잡혀왔을까– 하는 생각 뿐이었다.

"아, 나 수업 신청 잘못했어…. 텔레포트가 뭔 사냥이야!! 건설이나 갈 걸, 하……."

그때, 뒤에서 다른 아이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텔레포트.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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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 야야, 이거 존나 전정국 닮지 않음? 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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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거기다 리본을 묶어주면 어떡해 이 미친새끼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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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

아무도 몰래 뒷자리에 앉은 아이에게 손을 뻗어 조금씩 능력을 흡수하고 있으니, 옆에서 멍청한 얘기를 하고 있는 세 사람이 보였다.

하얀 털에 핑크빛 코, 새까만 눈동자를 가진 토끼의 한 쪽 귀에 핑크색 리본을 살며시 묶은 태형, 그런 토끼와 태형을 바라보며 미친듯이 웃어대는 지민, 그리고….

"……."

자신과 닮았다는 토끼를 유심히 바라보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꽤 정성스럽게 사진을 찍는 정국까지.

뭐… 이렇게 보니까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 집중을 안 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양을 흡수해 버렸다. 여주에게 능력을 흡수 당한 학생은 몸에 힘이 빠졌는지 졸리다며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했다.

"이제부터 자신의 능력껏 토끼를 죽여보세요! 고통스럽게 죽여도 되고, 한 번에 죽여도 되고. 개인의 자유랍니다. 다 끝낸 사람은 손을 조용히 들어주세요."

시작됐다. 여주는 이 말도 안 되는 수업을 듣고 있으면서도 미간을 찌푸리며 집중을 가했다. 지금부터 여주가 할 건… 토끼들을 밖으로 텔레포트 시키는 것이다.

"미안하다, 토끼야…. 내가 그냥 빨리 끝내줄, …?"

"어, 선생님! 갑자기 제 토끼가 사라졌어요!"

"선생님, 저도요!!!"

"헐, 선생님. 그러면 저희 다 빵점인가요…?"

"선생님!! 토끼가 없어졌어요!!"

여주는 교실에 있는 토끼들을 한꺼번에 없애지 않고, 학생들이 능력을 쓰려는 타이밍에 맞추어 하나씩 밖으로 보냈다. 순식간에 교실 안은 아수라장이 됐고 의아함을 느낀 태형이 머리를 긁적이며 토끼에게 불을 붙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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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엥?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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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아! 앗! 악! 앗 뜨거!! 시발 조준 겁나 못 하네!!! 옷 다 탈 뻔했잖아 새끼야!!!"

태형의 앞에 있던 토끼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있던 지민의 옷자락에 불이 붙었다. 지민은 뜨거운 열기에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재빠르게 불을 껐지만, 재처럼 까맣게 타버린 옷은 구해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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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

아, 이런. 눈이 마주쳤다.

정국은 태형이 리본을 달아준 토끼가 마음에 들었는지 품에 끌어안고 있었고, 교실 곳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텔레포트를 쓰던 여주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저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 언제라도 기회가 된다면 능력을 쓰라는 말을 뱉을 것 같은 정국의 눈을 여주가 먼저 피했다. 이 이상으로 더 곤란해지기는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