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DEN CARD: 히든 카드
ESPER: 초능력자 [10]



김태형
"많이 먹어, 여주야–."

단미래
"뭐냐, 너? 우리 여주한테 친한 척하는 거야? 우리 여주 건들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한서준
"후배랑 뭐하는 거야, 단미래…. 그냥 밥이나 좀 먹어. 애들이 쳐다보잖아."


김석진
"그래, 태형아. 너도 미래 그만 쳐다보고 젓가락도 치워…."


박지민
"아, 왜 아침도 그렇고 점심도 그렇고 버섯만 겁나 나오는 거야. 와, 심지어 국에도 버섯 들어가 있어. 개빡치네."


김남준
"반찬 투정 하지 말고, 많이 먹자. 지민아."


정호석
"정국아, 너 왜 거기 앉았어. 형 옆에 앉기 싫어?"


전정국
"……."


민윤기
"김여주 얼굴 뚫어지겠네. 둘이 무슨 일 있었냐?"

김여주
"하아……."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여주는 한순간에 조용했던 일상이 깨지는 것을 느껴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주위에서 이쪽을 보는 시선들이 느껴진다. 경외, 존경, 선망, 질투, 분노, 짜증. 여러 감정이 뒤섞인 시선들의 중심에 있으니 위속에 있는 걸 다 게워낼 것 같았다.

항상 혼자 먹던 자리에 회의할 것이 있다며 서준과 미래가 찾아왔고, 그 일곱 명은 급식실에서 마주쳐 이제는 가디언이니 함께 밥 먹자는 말과 함께 합류했다.


전정국
"……."

김여주
"뭘 봐."


전정국
"……."

김여주
"싫다니까?"


김태형
"헐. 뭐야. 여주도 전정국 말 알아들을 수 있는 거야? 나만 못 알아들어…?"


박지민
"그러니까 네가 빡대가리라는 거야."


김태형
"뭐? 난 박씨 아닌데. 박씨인 네가 빡대가리 아니냐?"

여주가 밥을 퍼 먹으면서도 뚫어지게 쳐다보는 시선에 기어코 정국에게 한소리를 해 버리니, 주위에 있던 태형과 지민이 투닥였다.

결국 여주는 식판에 있는 음식들을 반이나 남긴 채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니 아홉 명의 시선이 여주에게 박혔다.

단미래
"우리 여주, 벌써 다 먹었어? 다 남겼네? 왜? 어디 아파? 같이 보건실 가 줄까?"

김여주
"……순찰하러 갈게요."

한서준
"어, 김여주! 점심 시간 순찰은 석진이랑 정국이랑 같이 해! 야!"

뒤에서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는 여주의 귀에 닿지 않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 여주는 묵묵히 자신의 손에 들린 식판을 처리할 뿐이었다.

벌써 저만치 가 있은 여주의 뒷모습을 보며 석진이 정국의 뒷덜미를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석진의 손에 의해 일으켜진 정국은 그 와중에도 입에 문 당근을 놓지 않았다.


김석진
"우리는 먼저 가 볼게. 순찰 장소는 어디야?"

한서준
"S-4. 학교 밖으로 크게 한 바퀴 돌다보면 찾을 수 있을 거야. 아, 가디언실에서 인이어 챙겨 가는 거 잊지 말고!"

서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한 석진은 정국을 질질 끌고 가다시피 해 급식실을 빠져나갔다. 조금만 더 늦다간 여주를 놓칠 수도 있었다.



김석진
"여주야. 같이 가–."

김여주
"……."


김석진
"뭐가 그렇게 급한 거야. 나 뛰는 거 별로 안 좋아해, 여주야–."

뒤에서 졸졸 따라오는 석진과 정국의 발소리가 들렸다. 여주가 걸음을 멈추면 두 사람도 똑같이 걸음을 멈추고, 여주가 걸음을 빠르게 하면 두 사람도 똑같이 걸음을 빠르게 한다.

멈춰 있을 때 옆으로 오라고 한 건데…. 저 두 사람은 왜 똑같이 멈추는 거야. 여주의 입장에서는 석진과 정국이 자신을 놀리는 것 같은 기분에 미간에 뫼산자가 그려졌다.

김여주
"그럼 뭘 좋아하시는데요."


김석진
"음…."

"인상 찌푸리는 것도 어여쁜 여주?"

김여주
"……."


전정국
"……."


김석진
"핫핫핫…. 그렇게 무서운 눈빛으로 쳐다보면 내가 좀 머쓱해지지 않을까, 여주야?"


김석진
"정국아, 넌 왜 날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그래, 형이 잘못했어. 미안해. 미안하다고. 미안하다니까? 어?"

여주는 표정을 풀지 않은 채 다시 뒤를 돌아 앞을 향해 걸었고, 정국은 삐뚤어진 시선으로 석진을 바라보다 이내 작게 한숨을 쉬며 여주의 뒤를 따라갔다.

졸지에 혼자 남게 된 석진은 동생 뼈 빠지게 키워봤자 돌아오는 거 하나 없다며 남몰래 신세한탄을 했다.


김석진
"아, 같이 가!!"

물론, 그 동생은 석진에게 일절 관심도 없었다.


통제구역 S-4는 나무와 호수가 잘 어우러진 곳이었다. 잔잔하게 물결이 치고 가끔가다 짹짹 들리는 새소리는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다.

호수, 하니 여주와 단둘이 이야기했던 때가 생각나 석진은 푸스스 미소 지었고, 여전히 여주와의 대결만 생각하고 있는 정국은 동그란 여주의 뒷통수만 바라보고 있었다.

김여주
"…쉿."


김석진
"…왜? 뭐 있어?"


전정국
"……심장 소리."


김석진
"응?"

치지직–

순간이었다. 여주가 입가에 검지손가락을 가져가 조용히 하도록 만들고, 석진이 상황 파악 할 틈새도 없이 정국은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땅을 이용해 전기를 쏴 보냈다.

"끄악!"

정국의 판단이 맞았는지 나무 옆 풀숲에서 짧은 비명 소리가 들렸다. 짐승이 아닌 사람. 여주는 그곳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풀을 확 걷어냈다.

김여주
"……뭐야.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사… 살려주세요…. 저, 저 아무것도 안 했어요…. 살려주세요…."

풀숲에 가려진 존재는, 적게 치면 다섯 살, 많이 쳐줘봤자 일곱 살로밖에 보이지 않는 남자아이였다. 차림새를 보니 학교 학생은 아닌 것 같은데…. 일반인이 어떻게 들어왔지.

여주는 아이로부터 다섯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눈만 굴려 아이의 신원을 확인하려 애썼다.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는 여주가 이상했는지 석진과 정국도 여주의 옆으로 다가가 풀숲을 들여다봤다. 웬 남자아이가 있는 모습에 놀란 석진은 헙! 입을 다물었고, 정국은 여주와 같이 물끄러미 아이를 쳐다봤다.


김석진
"여기에 왜 아이가…. 얘, 넌 이름이 뭐야?"

"사… 살려주세요…. 그곳으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제발…."


김석진
"그곳? 그곳이 어디지?"

다 찢어진 옷에 여기저기 성한 구석이 없는 몸. 그중에 단연코 눈에 띄는 건, 팔을 가득 매꾼 주삿바늘이었다. 주삿바늘의 개수를 세어보던 여주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김여주
"이름."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김여주
"살고 싶으면 이름 말해. 같은 말 반복하는 거 싫어한다. 한 번만 똑같은 거 묻게 하면, 그때 진짜 죽일 거야."

"……."

김여주
"죽고 싶어?"

방금 하는 말이 거짓이 아니란 걸 보여주듯 여주는 살기를 내뿜으며 아이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여주가 다가온 만큼 아이도 뒷걸음질을 쳐보려 했지만, 살기에 눌러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것인지 턱을 달달 떨었다.

"시… 실험체 9호…."

김여주
"뭐?"

"시, 실험체 9호예요. 제 이름…."

실험체 9호. 평범한 사람의 이름이라고 하기에는 확실히 달랐다. 석진과 정국은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고, 여주는 자신이 예상했던 게 맞았는지 한숨을 쉬며 아이에게 다가갔다.

여주가 다가가는 동안 아이는 히익! 거리며 눈을 감았지만 곧이어 느껴지는 게 고통이 아닌 따뜻함임을 알아차리고는 살며시 눈을 떴다.

김여주
"이름 말했잖아. 안 죽여. 떨지 마."


전정국
"……."


김석진
"뭐… 뭐야. 그렇게 막 안아도 되는 거야?"

김여주
"위험하다고 판단됐다면 바로 죽였겠죠."

죽였겠죠. 싸늘하게 들리는 말에 아이의 몸이 흠칫 떨렸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이었다. 여주의 어깨에 걸치듯 덮여 있었던 가디건이 아이의 몸을 감쌌다.

따뜻하면서도 난생 처음 맡아보는 부드러운 향기에 아이는 작은 손으로 가디건을 만지작거렸다. 아이가 만진 부분이 흙으로 더럽혀지는 것이 보였지만, 여주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김석진
"애는 왜? 데려가게?"

김여주
"네. 확인할 게 좀 있어서요."


김석진
"뭘 확인하려,"


전정국
"…온다."

스스슥–

정국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무에서 기다란 몸을 가진 뱀들이 붉은 혓바닥을 내밀며 몰려들었다. …이번에도 또 뱀인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꺼림칙한 소리에 여주는 얼굴을 구겼다.

김여주
"하아…. 팔다리 없는 건 딱 질색인데."

여주가 능력을 쓰려 아이를 석진에게 맡길 때였다. 아이는 가디건에 향해 있던 눈을 들어올려 조용히 뱀들을 쭉 훑어봤고, 그 순간.


김석진
"뭐, 뭐야!"

나무 위에 있던 뱀들이 하나같이 눈과 입에서 피를 흘리며 땅으로 떨어졌다.

잘못하다 나무에서 떨어지던 뱀을 머리로 받은 석진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뱀을 던졌고, 여주는 자신의 품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고개를 내려 아이를 쳐다봤다.

"나… 살려주세요."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짧은 찰나에도 여주는 놓치지 않았다. 잠시나마 탁했던 아이의 눈동자가 빠르게 본연의 색을 되찾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