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그냥 귀여웠어요

따뜻한 물에 적신 머리칼이 뺨과 어깨를 간질였다.

수건으로 머리를 툭툭 털며 세연은 방 문 앞에 조심스레 섰다.

두 손으로 머리칼을 한쪽으로 쓸어 넘기며, 그녀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마치 무슨 전쟁이라도 나가는 병사처럼, 몸과 마음을 단단히 다잡고 있었다.

어젯밤의 기억은 군데군데 끊겨 있었고, 명확한 건 없었지만, 무언가 대단히 창피한 일을 했다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문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아주 천천히 손잡이를 돌려, 문을 사알짝 열었다.

틈새로 고개를 빼꼼 내밀며, 바깥의 상황을 살핀다.

거실은 고요했고. 인기척 하나 없었다.

다행이라는 표정이 얼굴에 잠시 떠올랐다.

지금이라면 살짝 나가서 물 한 잔만 마시고 다시 몰래 방으로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 문 앞, 바로 눈앞에서 낮고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디에잇(명호) image

디에잇(명호)

"일어났어요?"

갑작스럽게 들려온 말에 세연은 몸을 벌컥 젖히며 비명을 질렀다.

중심을 잃은 그녀는 그대로 뒤로 넘어지려 했고, 그 순간 명호의 팔이 재빠르게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몸을 붙잡았다.

그의 손이 그녀의 허리에 단단히 감겨 있었고, 세연의 손은 본능적으로 그의 가슴을 움켜쥔 채 얼어붙었다.

두 사람의 거리는 5cm. 서로의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웠다.

살짝 젖은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명호의 셔츠를 적셨다.

그의 눈동자는 순간 미세하게 흔들렸다. 세연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민망함과 당황스러움이 한꺼번에 밀려들며, 온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찰나, 명호가 천천히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말없이 손을 놓았다. 그녀의 허리에서 살짝 힘이 풀리자, 그가 먼저 한 발 물러선다.

디에잇(명호) image

디에잇(명호)

“또 넘어질 뻔했네요.”

담담한 말투. 하지만 목소리엔 어딘가 조심스러운 온기가 담겨 있었다.

세연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며 뒷걸음질쳤다.

머리칼이 살찍 얼굴에 달라붙은 것도 잊은 채,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였다.

정세연

“죄… 죄송해요… 저 진짜 몰랐어요… 제가 너무 놀라서…”

명호는 그런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무표정한 얼굴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희미하게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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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잇(명호)

“…그렇게 놀랄 거면, 다음엔 그냥 나오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고개만 내밀지 말고요."

****

문 앞에서 벌어진 아찔한 거리의 사고 이후.

세연은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한걸음 물러나 앉은 명호를 조심스레 쳐다본다.

그는 여전히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다만, 표정에 묘한 미소가 걸려 있다.

세연은 입술을 꾹 다문 채 망설이다가, 결국 머뭇머뭇 말을 꺼낸다.

정세연

“…저… 그… 어제요…”

목소리는 거의 들릴 듯 말 듯, 부끄러움에 잔뜩 눌린 목소리였다.

명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본다. 눈빛은 평온했다.

하지만 세연은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바닥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을 잇는다.

정세연

“…제가 혹시… 뭔가 실수했다던가… 그런 건 없었죠…?”

순간, 정적이 흐른다.

명호는 아무 말도 없이 그녀를 바라보다,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디에잇(명호) image

디에잇(명호)

"실수요?"

그 짧은 말에 세연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번쩍 든다.

정세연

“헉… 했어요? 진짜요?? 저… 뭔 말 했어요? 아니면… 행동이라도?”

급격히 빨개진 얼굴에 눈은 동그래지고, 손끝이 허둥대기 시작한다.

그 반응이 재밌는지, 명호는 아주 살짝 웃는다. 무심한 듯, 장난스럽게 말을 건넨다.

디에잇(명호) image

디에잇(명호)

"기억 안나요?"

정세연

“…네… 흐릿하게는 나는데…”

세연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이며 시선을 피한다. 명호는 그런 그녀를 지켜보다,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한마디 더 던진다.

디에잇(명호) image

디에잇(명호)

“…흐릿하게 어떤 기억이요?”

그 말에 세연은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만다.

얼굴이 더는 빨개질 곳도 없다는 듯,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몸을 웅크린다.

정세연

“아 진짜… 저 그냥 이불 속으로 다시 들어갈래요…”

그 모습에 명호는 낮게 웃음을 흘린다.

그러다 장난기 어린 눈빛을 살짝 걷고, 한 톤 낮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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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잇(명호)

"실수한거 없어요."

그의 눈빛이 조용히 세연에게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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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잇(명호)

“…그냥, 귀여웠어요..”

그 말에 세연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조용히 명호를 바라본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명호는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그저 평온하게, 담담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세연은 가슴이 조용히 요동치는 걸 느꼈다.

정세연

‘…지금… 방금 뭐라고 했어요…?’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은데, 심장은 시끄러웠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그 순간, 입안에서 말 대신 숨이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