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푸름을 사랑하는 방법
#12. 낙엽이 떨어지는 속도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마지막 여름방학을 보내자마자 돌아온 추위는 가을을 찾아 불어오고 있었다.

학교 창틀에 햇빛보다 찬 바람이 스멀스멀 다가왔다.

창 밖의 운동장이 노랗고 붉은 빛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새삼 가을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막 물드린 가을 잎들이 제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김여주
…

나는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았다.

병원에서 흔히 보던 단풍잎이 새삼 배경 하나 바꼈다고 새로웠다.

단풍잎이 예쁘게 물든 것을 보면서 떠올랐다.

병원에서 보낸 날들이

웃기지, 참..

잊고 싶은 기억을 계속 회상하는 것은 나였다.

새로 시작하겠다고 마음 먹어 놓고 말이다.

…

“야, 김여주”


김여주
?

콕-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뾰족한 무언가가 볼에 콕 박혔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한동민의 감긴 눈웃음을 보았다.


김여주
뭐,뭐야…

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에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안가 그 기분은 예상을 적중했다.

한동민의 손에 들린 컴퓨터용 싸인펜을 보고서야..

스윽.-


김여주
아..

손으로 뺨을 쓸어넘겼다.

손에 묻어오는 검은 잉크가 분명하게도 컴퓨터용 싸인펜이다.


한동민
ㅋㅋㅋㅋㅋㅋ


한동민
아ㅋㅋ 야 번졌잖아ㅋㅋ

이제 눈치 챈 내 반응을 보고서야 동민은 웃음을 터트렸다.


김여주
아, 뭐야..;;!!

여주는 얼굴을 박박 문질렀다.


한동민
번진다니까 그러네ㅋㅋ


김여주
아..진짜..!!


한동민
점인데 번져버렸네..~

동민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김여주
…—(째릿)


한동민
ㅋㅋㅋㅋㅋ


한동민
탄 고구마 먹었냐ㅋㅋ

번진 싸인펜에 입가며 뺨이며 거뭇거뭇 해졌다.

한동민은 웃기다며 웃어대는데 여주는 그런 동민이 얄밉다.


김여주
…아니거든!!

결국엔 큰 반항도 없이 소리만 높혔다.


한동민
ㅋㅋㅋㅋㅋ

그러나 그럴수록 한동민의 재미만 더 돋우는 듯 했다.

…




”..이야, 낙엽이 많이 쌓였는데?“


김동현
완전 가을인데~


김여주
그니까..!


한동민
뭐 물든지 얼마나 됐다고 금세 수두룩 떨어졌네,,

동민은 쌓인 낙엽을 발로 슥슥 걷어냈다.


김여주
눈 처럼 쌓이니까 예쁜데?

여주는 쭈구려 앉아 낙엽의 버석한 촉감을 느꼈다.

손에서 빠짝 마른 단풍잎이 부스스 녹아내리듯 바스러졌다.


한동민
이거 다 쓸려면 꽤 힘들겠는데


김여주
…?


한동민
경비 아저씨가 고생하시겠..


김동현
아 낭만 뒤졌냐..


한동민
?


김여주
ㅋㅋㅋㅋㅋ

바짝 마른 한마디가 한동민스러워서 웃음이 터졌다.



김동현
여주야, 너 낙엽침대라고 들어봤어?


김여주
응?


김여주
그게 뭔데??


김동현
자 봐봐

풀썩.-

동현은 쌓인 낙엽 위로 몸을 던졌다.

몸이 낙엽에 파묻히면서 동현은 손짓했다.


김동현
죽이지, 생각보다 폭신해ㅋㅋ

동현은 대자로 누워 세상 해맑은 미소지었다.


김여주
우와..


김여주
나도 해볼래..!!

여주는 동현을 따라 낙엽 위에 몸을 던졌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꽤나 포근하게 낙엽잎 사이로 움푹 들어갔다.


김여주
와, 좋은데??


김동현
그치?ㅋㅋ


한동민
…아 더럽게,,


한동민
낙엽에 벌레 많은데..


김동현
아 저 깍쟁이;


김동현
하기 싫음 말아


김동현
1년에 몇번 못해보는 건데, 니만 아쉬운 거지 뭐~

한동민 긁는데 소질있는 김동현이다.


김여주
그니까~


김여주
어쩔 수 없지 뭐~

김여주도 어느새 김동현에 물들었는지 철썩같이 김동현을 따라한다.


한동민
..허;

동기화 된 둘의 모습을 보니 긁힘이 2배였다.


한동민
진짜 초딩이냐..


“어, 형들!! 거기서 뭐해요!!??”

어디선가 익숙한 목청이 점차 우리에게 다가왔다.


김운학
어, 뭐예요!! 여주선배도 있었네!


김여주
어, 운학이 안녕ㅎㅎ


김운학
와, 저도 누워봐도 돼요????

운학은 여주와 동현이 누운 낙엽침대가 재밌어보였는지 두 눈을 반짝였다.


김동현
아 드루와 드루와~

동현은 거들먹 거리며 손짓했다.


김운학
와악!!

운학은 낙엽잎으로 뛰어들었다.



김운학
와 이거 진짜 대박인데요!!?


김운학
동민이형! 형은 안 들어와요!?

무슨 목욕탕 들어오는 식으로 묻는 운학의 해맑음에 김동현 이자식과 얼굴이 겹쳐보였다.


한동민
…아 됐..


김동현
아, 쟨 안 들어온대

동현이 말을 끊듯 답했다.

…

사락-


김여주
짠, 낙엽눈~

여주는 한움큼 잡은 낙엽을 공중에 날렸다.

마른 잎들이 찬바람에 살랑이며 떨어져내렸다.


김동현
오, 좋은데?


김동현
눈 좀 더 뿌려봐라~

동현은 또 다시 거들먹거리며 세상 편하게 누워 떨어지는 마른잎을 향해 두 팔을 들어보였다.


김운학
ㅋㅋㅋㅋㅋ

퍽.-


한동민
됐냐

동민은 어디서 낙엽들을 한사발 주워왔는지 그대로 동현의 머리 위로 내던졌다.


김동현
얽,

낙엽이 동현의 얼굴을 덮쳤다.


김운학
동현이형..!! 죽었어요?


김여주
괜찮아?ㅋㅋ


김동현
…

미동도 없이 파묻힌 동현은 반응이 없다.

그러게 한동민을 작작 긁었어야 했나.



김여주
살아있는 거 맞지..??

여주는 조금 걱정되는 마음에 동현의 얼굴이 묻힌 하나씩 잎을 들쳐보았다.

그런데 그때


김동현
와악—!


김여주
(깜짝)!!


김운학
으왁;;!!!


김동현
히히

여주가 다가가자 묻혀 있던 얼굴을 확 들어올려 둘을 놀래켰다. 그러곤 동현은 태연하게 히히 웃었다.


김여주
아, 놀랐잖아..!!


김운학
그니까요!!


김동현
ㅋㅋㅋㅋㅋ


한동민
…

풀썩-

동민은 여주와 동현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김동현
뭐야, 안 한다매-


한동민
재밌어보이길래.

사실은 둘이 붙어 있는 꼴이 마음이 들지 않아서다.


김여주
…?

여주는 한동민의 평소답지 행동에 머리 위로 물음표만 띄웠다.


한동민
..


한동민
..(뭘-봐)

동민은 자신을 향해 꿈뻑이는 여주에게 ”뭘봐“ 새침하게 입만 벙긋했다.

한동민 속으로 신경쓰이긴 했나보다.

괜히 툴툴거리는 게 딱 봐도 둘이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게 분명하다.


김여주
..(휙)

여주는 곧 바로 고개를 돌렸다.

동민에게 겁을 먹은 것이 아니라 사실상 한동민의 눈을 오래 보고 있기 힘들다는 이유에서 였다.

그날 이후부터 조금씩 한동민을 보는 게 어려워졌다.

자꾸만 저 얼굴을 보면 그날의 기억이 떠오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저 입술

왜 꿈뻑거려??

자꾸 한동민의 입술에 시선을 빼앗기는데 이건 내가 드디어 미친건가.

…


한동민
…

동민은 또 미간을 구겼다.

본인이 뭘봐라고 틱틱거리긴 했다만, 진짜 시선을 피해버리는 여주에 진실의 미간버튼이 딸깍거린다.


후드둑-

그때 한동민의 머리 위로 낙엽들이 우수수 떨어져내렸다.


김운학
동현이 형에 대한 복수!!

동민의 머리 위로 낙엽을 떨어트린 건 김운학이었다.


한동민
…

저 눈치없는 김운학에 체념한 동민이다.

…

“거기, 학생들!!”

경비아저씨가 우리를 향해 뛰어왔다.


김동현
어, 경비 아저씨다


한동민
…좆됐네


김운학
헉!?


김여주
?

경비아저씨의 등장으로 뭐 결과는 뻔하게

단체 낙엽 쓸기.

경비아저씨가 치워놓은 낙엽들을 다시 어질러버렸으니 혼이 났다.

그래도 학주한테 안 깨진 게 다행이려나

우리는 학교 전체를 한 손에 빗자루를 들고 빙글빙글 돌았다.



김운학
와, 허리 빠질 것 같아..!!


한동민
ㄹㅇ..


김동현
그래도 재밌었는데


한동민
낙엽 두번 쓸 일 있냐


김여주
ㅋㅋㅋㅋㅋ



김동현
앉아서 수업 듣는 것 보단 나을 수도ㅎ


김동현
언제 졸업하냐, 우리..-


김여주
곧 10월이니까, 금방일걸?


한동민
벌써 10월이야..?


한동민
시간 개 빠르네..


김운학
아, 맞다 형들


한동민
?


김운학
이번주 연습 꼭 나오셔야 돼요!!


김동현
꼭?


김운학
이번주가 마지막 연습이거든여!!


김운학
방송부 말로는 리허설도 한대요


김운학
그니까 꼭 나오셔야 돼요-!!


김동현
와, 벌써 곧 축제야??


김여주
재밌겠다..


김여주
축제면 막 부스도 있고! 맛있는 것도 많겠지??


김동현
당연하지-


김여주
우와,, 나 축제는 처음이라 떨린다..


김여주
부스 뭐가 제일 재밌어??


김동현
작년엔 귀신의 집이 인기 많았던데, 웨이팅까지 있었으니까


김여주
귀신의 집..?


김동현
그리고 책갈피 만들기, 보물찾기, 퀴즈, 메이드 카페.. 뭐 되게 많았지


김여주
진짜??

여주는 눈을 반짝거렸다.


김운학
그래도 축제의 장식은 우리 밴드부에 공연이라구요~!!


김운학
여주누나, 꼭 보러 와야 돼요! 알겠죠!?


김여주
응응, 꼭 갈게!!

…

..

.




+) 번외


한동민
…저기 낙엽 쌓였다

동민은 쌓인 낙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김여주
?


한동민
…


김여주
…하고 싶어?


한동민
그냥.. 뭐-

동민은 멋쩍게 시선을 피했다.


김여주
ㅋㅋㅋㅋ

한동민 그새 낙엽 놀이에 재미들렸는지,

낙엽만 쌓인 걸 보면 눈을 못 뗀다.

처음에는 그렇게 초딩이냐 질색하던 녀석이.

은근 즐기고 있었나.

귀여운 녀석..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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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