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너를 꼬시는 방법
42. 뭣 같은 첫사랑



여주에게 언제나 큰 의지가 되어주는 예지. 항상 밝고, 활발하고 커플들을 (여주와 윤기) 극혐하는 평범한 여학생이지만, 그런 예지에게도 짝사랑하는 상대가 있다.

윤기만큼 모든 여학생의 짝사랑 상대, 3학년 혜성이었다.

윤기가 만인의 연예인이었다면, 혜성은 만인의 선배였다.

만인의 선배라는 그 얘기 때문에 예지는 쉽게 혜성에게 다가서지 못했고, 항상 멀리서만 바라보았다.

그렇게 항상 혜성을 바라만 보던 예지가 혜성의 눈길이 언제나 향하는 곳을 알게 되었는데.

그 눈길이 닫는 곳은 다름이 아니라 여주였다.

신도 참으로 무심하시지. 하필이면 혜성이 짝사랑하는 상대가 예지의 하나뿐인 친구 여주라니...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된 예지는 더욱더 혜성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고, 짝사랑은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만 말았다.

자신이 받고 싶은 사랑을 받는 여주가 미울만도 할 텐데, 예지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자신이 봐도 여주는 누구에게나 사랑받을만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같이 하교하자는 여주를 윤기랑 등 떠밀어 보내고 혼자 남겨진 반에서 쓰디쓴 짝사랑을 끝낼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내 마음을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이루어질 수도 없는 이 짝사랑 따위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을 텐데.



서예지
"하아... 어렵다..."


다이어리에 빼곡히 채워진 '짝사랑 끝내자. 아프다'라는 문장.

삼킬 때 진하고 오래 느껴지는 쓴맛, 사라져도 잊혀지지 않는 그런 약. 혜성은 예지에게 딱 쓴 약 같은 존재였다.



서예지
"다 부질없는 짓이야. 아무리 지우려고 해봐도 몸에 새긴 문신같이 지워지지 않잖아"


서예지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건대..."


땅이 꺼질만큼 깊은 한숨을 내쉰 예지는 다이어리를 접고 가방을 챙겨 반에서 나왔다.




한 발짝 한 발짝 아무도 없는 휑한 복도를 걷던 예지는 누군가가 흐느끼는 소리에 음악실 앞에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창문으로 조심스럽게 확인해 보니, 음악실에서 흐느끼며 우는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혜성이었다.

그 상황을 발견한 예지는 당황스러웠다. 하필이면 혜성 때문에 머리도, 마음도 복잡한 상태인데, 항상 웃던 혜성의 우는 모습을 보니 더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들어가서 오지랖을 부릴까, 그냥 무시하고 가버릴까.

두 가지의 의견으로 나누어진 예지는 심란한 마음을 부여잡고 한 가지를 선택한다.

드르륵-] 음악실 문이 열리고 조심스럽게 혜성이의 곁으로 다가간 예지. 고개를 숙이고 도망가려는 혜성의 발목이 예지에 한마디에 잡혀버린다.



서예지
"짝사랑 참 뭣 같죠? 저도 그 기분 잘 알거든요"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이 말해서 놀란 혜성이 고개를 돌려 드디어 예지를 마주한다.

어떻게 알았지? 라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혜성에 옅은 미소를 띤 예지가 말했다.



서예지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말아요. 제가 원래 쓸데없이 눈썰미가 좋거든요"


구혜성
".............."


서예지
"이렇게 마주친 거 꾹꾹 담아 놓았던 말 저한테 버리신다고 생각하고 털어놓으실래요?"


서예지
"제가 또 듣고 잊어버리는 거도 잘하는데"


구혜성
"그럼... 듣고 다 잊어줘"


서예지
"네. 다 잊어버릴게요"




숨겨진 정보:


1. 예지는 고1 때부터 고2였던 고혜성을 짝사랑했다.

2. 학교가 떵 빌 때까지 예지는 오랜 시간 동안 반에 있었다.

3. 혜성이가 우는 이유가 여주 때문이라는 걸 알아챈 건, 오늘 윤기가 자신의 반으로 찾아와 여주를 데리고 갈 때, 복도에 서 있는 혜성을 발견했기 때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