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너를 꼬시는 방법
44. 오래 걸리진 말아줘



더 이상 여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윤기는 곧장 119로 전화를 걸면서 여주의 집으로 달렸다. 다른 건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여주가 무사하길 바랐다.




여주의 집 앞에 도착한 윤기의 눈에 띤 건 타오르는 불길과 자욱한 시커먼 연기였다. 빌라의 사는 다른 주민들은 빠져나와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면서 두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전에 여주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집에 화재가 나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한 것이 기억난 윤기는 마당 작은 꽃밭에 있던 수도꼭지를 열어 온몸을 적신 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불타오르는 빌라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뒤에서 나오라고 외치는 주민들의 소리가 들렸지만, 윤기는 소매로 입과 코를 막고 오로지 여주만을 생각하면서 들어갔다.



여주가 사는 2층에 올라온 윤기는 잠겨 있는 문을 소화기로 힘껏 내리쳤다. 오래된 빌라여서 그런지 문손잡이는 생각보다 쉽게 떨어졌다.



이곳저곳을 수색하다가 침대에 쓰러져 있는 여주를 발견한 윤기는 그녀를 가볍게 안아 올려 불 속을 빠져나왔다.



여주를 안고 나오는 그 시점을 딱 맞춰 소방차와 구급차가 도착했고 늦지 않게 구급차에 탑승하였다.

유독가스를 생각보다 많이 흡입한 윤기는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고 그런 윤기에게 구급대원은 산소 공급기를 주었다. 의식이 없는 여주의 손을 붙잡은 윤기는 간절하게 빌었다. 제발 여주가 무사하게 해달라라고. 이렇게 간절했던 적이 없었다.




병원에 도착하자 여주를 진찰한 의사 선생님은 입을 열었다.


"그나마 유독 가스를 덜 흡입해서 다행이지만, 의식이 언제 돌아올지는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네요"


민윤기
"감사합니다"


윤기는 여주의 손을 감싸 잡고 묵묵하게 곁을 지켰다. 여주의 소식을 들은 여주의 어머니는 시장에서 헐레벌떡 뛰어오셨다.


"여주야...!! 딸...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니..."


민윤기
"안녕하세요. 여주 남자 친구입니다. 여주 곧 깨어날 거예요"


여주의 어머니는 아무런 말 없이 윤기의 손을 잡고서는 토닥여주셨다. 사랑하는 딸이 뜨거운 불길 속에서 죽을 뻔했다니 무엇보다 더 힘든 건 자신일 텐데, 윤기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 것이다.

따뜻한 손길에 윤기는 꾹꾹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소리 없이 숨죽여 울었다.

집에 전화한 윤기는 여주의 곁에 있기로 했다. 여주가 눈을 뜨면 따뜻하게 안아 이제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백여주



민윤기
"여주야... 내가 기다릴게. 그렇지만 너무 오래 걸리진 말아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