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친 인스타 좋아요 실수로 눌러버렸어요ㅠㅠ

09. 실수인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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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입니다.)

조그마한 소주잔 속 동그란 청포도 사탕.

채워지는 소주잔이 미심쩍어서 미간 새를 좁히고 고구마 말랭이 포장을 뜯었다.

김여주

이렇게 먹으면 진짜 맛있는 거 맞아?

엄마

그렇다니까. 엄마 못 믿어?

소주잔 속 그 초록색 사탕은 엄마가 넣어주셨거든. 청포도맛 소주가 된다나 뭐래나... 아니 그럼 진짜 무슨 맛이야. 엄마. 나 이슬톡톡도 잘 안 먹어.

아까 그 남자가 편의점에서 사온 과자봉지를 주욱 뜯었다. 엄마 취향 과자가 여러 개.

그 남자는,

엄마의 새 남친이라고 했다.

태형이랑 태현이는 자고, 그 남자도 자고. 그 남자는 모녀끼리 술 마시자고 얘기했을 때 바로 편의점 나가서 과자부터 청포도 사탕까지 사 온 걸 보면 어련히 엄마한테 잘 하겠지.

그래도 한 번 물었다.

김여주

저 분이 잘해줘?

저 사람이 엄마 행복하게 만들어줘?

엄마

아. 세종씨? 당연히 잘해주지.

세종씨?

김여주

이름이 세종?

엄마

응. 양세종.

자세한 얘기는 알콜이 들어가고 말해줄듯 싶어 엄마 앞 빈 소주잔에 술을 따랐다. 자. 마시자. 오랜만이잖아 우리. 그치 엄마?

김여주

엄마. 짠.

짠. 소주잔끼리 부딪히며 맑은 소리를 냈다.

고개를 꺾어 연둣빛 잔에 입을 대니 느껴지는 달큰한 맛. 으응, 상큼해. 맛이... 있네.

김여주

맛있다. 사탕 넣어 먹는 거 누가 가르쳐줬어?

으응. 호선을 그린 엄마의 입술이 오물거렸어.

엄마

세종 씨가.

-

아버지는 엄마를 가족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잠자리 파트너. 그런 거.

엄마한테 몇 번 들었다. 집안에 돈이 없어서 팔려오듯 아버지와 만났다고. 혼인신고도 안 하고 애 낳으라 한 것 보면 말 다했지.

심지어 자기는 지금 본처가 있을 텐데. 아이도 있었나? 진짜 나쁜 새끼.

엄마랑 우리 삼남매만 불쌍하지. 지원도 못 받고. 방치당하고 외면당하고.

근데 엄마는 행복했으면 좋겠어. 누군가는 무책임하다며 비난하겠지만 나는 내가 성인이 된 후 집에 자주 들르지 않는 엄마가 좋다.

우리 세 명이 엄마한테 짐이 되는 것 같아서. 남편이란 사람도 있어야 할 자리에 없고 혹처럼 아이를 셋이나 줄줄이 낳게 됐으니... 항상 미안하다.

집에는 자주 들어오지 않아도 매월 1일에 꼬박꼬박 100만원이 통장으로 들어온다. 말은 안 하지만 엄마인 걸 안다.

당연하지. 엄마 이름으로 들어오는데.

김여주

... 엄마.

배우자라도 잘 만난 것 같으니 나도 좋아 엄마.

김여주

행복해?

고구마 말랭이를 씹던 엄마가 말했다.

엄마

응. 엄마 너무 행복해.

.

엄마와 옛날 이야기를 하다 한바탕 울고 나서 막힌 코를 킁킁거렸다. 딱 기분 좋게 취했어 지금... 딱 기분 좋으니까 저질러버려.

김여주

으으.

맨날 저녁에 하던 짓. 인스타에 들어가서 '김석진' 세 글자를 검색했다. 오늘은 좀 달랐다. 항상 두세 번 지웠다 썼다 했는데 오늘은 고민없어.

만약 내가 지금 또 좋아요 누르면...

아니, 실수로 누른 척 할테니까. 술 마시고 사리분별 못하는 상태로 누른 척 하면서 좋아요 누를테니까.

다시 연락해주라.

제일 위에 있는 새 게시물을 눌러 액정 안에서 빵끗 웃는 그 얼굴을 엄지손가락으로 두번 콕콕 눌렀다.

'김석진님의 게시물을 좋아합니다.'

제발 저번처럼 연락이 오길 종교는 없지만 온갖 신들 다 들먹여가며 기도했다.

김석진. 제발 연락해주라.

제발 김석진의 연락이 오게 해주세요.

나 진짜 보고싶어.

엄마와 했던 취중진담 되새기며 마른 침을 꼴딱 삼키고 방에 불을 껐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내가 노력해 볼게.

다시 연락해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