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합니다. 저 좀 죽여주세요.

의뢰합니다.

“···아무도 없나요-?”

간간히 불이 깜박거리는 형광등에 의존한 채, 모자를 푹 눌러쓴 여자 한 명이 어느 창고 속을 누비고 있다.

조금 초조한 듯 입술을 물어뜯고, 이리저리 둘러보는 것을 보면 누군가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는 거겠지.

여자가 이리저리 창고를 누비고 다니면 어느 샌가 창고에 넓게 울리는 남자의 목소리. 낮은 목소리가 어딘가 소름끼친다.

“여긴 왜 왔어. 어려보이는데.”

넓고 폐쇄된 공간이라 그런가. 메아리처럼 울리는 남자의 목소리에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연다.

한겨울

“의뢰, 하러 왔어요.”

“···허, 요즘은 개나소나 다 찾아오나 봐.”

“너 같은 애새끼들 의뢰는 안 받아. 딱히 누구에게 악감정 있는 것도 아니면서.”

읏차-

어딘가에서 뛰어내리는 소리와 함께 공기를 타고 진동하는 소리와 살짝 흔들리는 땅에 소리가 난 쪽으로 돌아보면, 목소리의 주인공인 남자가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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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돌아가. 여기 더 있다가는 무슨 꼴 당할지 모르니까.

가만히 저를 응시하는 검은 눈동자를 빤히 바라본 겨울은 침을 한 번 삼키곤은 말을 조심스레 이었다.

한겨울

···가벼운 마음으로 온 거 아니에요.

한겨울

타인을 죽여달라는 의뢰도 아니고.

겨울의 말에 윤기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아마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하나의 제스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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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그럼 여긴 왜 온거야. 너 우리가 뭐하는 사람들인지 몰라?

“우리 청부살인업자야. 사람 죽이는 사람들.”

담담하게 말하는 입에서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놀랄 말들이 나왔다. 하지만 겨울은 알고 있었다는 듯 윤기를 응시하는 시선을 한 번도 놓치지 않곤 독기 품은 눈으로 윤기를 바라보았다.

한겨울

알아요, 그 정도는. 그러니까 여기 찾아왔지. 사람 좀 죽여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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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뭐? 타인을 죽여달라는 의뢰도 아니라며. 나랑 말장난이나 치자고 온거야?

윤기의 말에 겨울은 고개를 좌우로 저어보았다. 명백한 부정. 그런 겨울에 윤기의 미간이 서서히 좁아졌다. 자신을 가지고 장난치는 듯한 겨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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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씨발, 그럼 뭔데.

아까와 같은 어조지만 어딘가 격양된 목소리에 그가 화가 났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당연하지만, 그에게는 시간이 금이니까.

한겨울

···좀 죽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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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뭐?

조금 어렵게 말을 내뱉는 겨울에 의뢰인이 누군지 듣지 못했던 윤기는 다시 물었다. 그러자 겨울은 떨리는 손을 꽉 말아쥐고는 다시 소리쳤다.

한겨울

저 좀 죽여달라고요!!

[의뢰합니다. 저 좀 죽여주세요.]

제 1화

나랑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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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겨울의 말을 듣곤 아무 말도 않은 채 가만히 서 있는 윤기. 그에 겨울의 외침만 메아리로 울리다 발 끝에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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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이거, 미친년이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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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돌아가, 목숨 아까운 줄 모르면.

한숨을 쉬며 발을 돌리는 윤기의 뒤로 겨울의 다급한 외침이 이어졌다.

한겨울

저, 돈은 얼마든지 드릴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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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얼마나 줄 수 있는데. 뭐, 10억?

겨울의 외침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10억이라는 거액을 부르자 겨울이 흠칫했다. 아마 평볌한 사람은 10억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 하지만 겨울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겨울

10억···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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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뭐?

다시 돌아가려던 윤기가 겨울의 말에 발을 멈춰세우곤 다소 놀란 눈으로 겨울을 바라보았다. 10억이, 평범한 고딩정도 나잇대의 사람이 부를 수 있는 돈은 아니니까.

그런 겨울에게 윤기는 식상하지만 조금 흥미가 생겼을까. 돈도 많고, 얼굴, 몸매도 다 되는 것 같은 완벽해 보이는 이 아이가 무엇때문에 무너졌을까 하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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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그 정도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죽으려는거야. 나는 돈 벌기 위해서 이런 짓까지 하는데.

윤기의 말에 겨울은 고개를 푹 숙였다. 겨울의 얼굴 옆으로 쏟아지는 머리 사이로 비친 겨울의 눈은 누가 봐도 사연이 많았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머금고 부릅 뜬 눈으로 윤기를 바라본 겨울은 말했다.

한겨울

더 살 이유도, 지킬 것도···

한겨울

없어요, 난.

한겨울

차라리··· 지옥이 이곳보단 나으니까.

“그래서 죽을 거에요, 나는.”

겨울의 말에 어딘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꾹 깨문 윤기는 단 몇 초 안에 총을 장전하여 여주에게 발사했다.

한겨울

읏..!!

짧은 순간이였지만 총알이 날아오는 동안 겨울은 매우 두려웠다. 죽어보고자 했던 자신의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겨울은 순간 겁에 질렸다.

윤기가 쏜 총알은 겨울의 볼 옆을 훝고 지나갔고, 겨울은 그 자리에서 다리에 힘이 풀린 채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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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봐, 죽음을 이렇게 두려워하면서 죽긴 뭘 죽어.

한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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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네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윤기의 말에 겨울이 주저앉아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그런 겨울이 민망하지 않도록 자신의 자켓을 벗어 겨울의 머리에 대충 얹어주는 윤기.

한겨울

아저씨…, 나 어떡,해요. 나 이제 정말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어…

한겨울

죽으면, 다 될 줄 알았는데, 이게.. 뭐야.

“난.. 죽는 것,도 못 하나봐요..”

훌쩍대며 단어단어 끊어서 말하는 겨울을 보며 윤기는 가만히 서 있다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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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나랑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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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너만 괜찮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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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좀 힘들긴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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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절대 외롭지는 않을거야. 우리 애들, 의리 하나는 대단하거든.

윤기가 자켓을 덮어쓴 여주의 머리 위에 손을 살짝 올렸다. 겨울이 자신을 조금이라도 믿으면 하는 바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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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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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나랑 가자.

한겨울

정말.., 외롭지 않은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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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응.

정말요? 정말이죠..? 몇 번이고 물어오는 겨울에 윤기는 그저 계속 고개를 끄덕여주었고, 겨울 윤기의 손을 잡고 바닥에서 일어나 어느 새 어깨에 걸쳐진 자켓을 몸 쪽으로 꼭 당겨 자기 몸을 감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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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갑작스러웠을텐데 나 믿어줘서 고맙다.

“이제 잃을 게 많아질거야. 지킬 준비해. 죽을 준비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