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해줄게

고백

내가 눈을 떴을 때 난 병원의 침대에 누워있었다.

몸을 천천히 일으켜보니 내 팔에는 링거 바늘이 꽂혀있었고, 옆에서 간호사 한명이 수액을 조절하고 있는게 보였다.

태형

저기요.. 뭐가 어떻게 된거죠?

-아.. 병원 복도에서 갑자기 정신을 잃으셨어요. 그래서 여기로 옮겼구요.

-의사 선생님께서 너무 피곤하거나 큰 일을 겪으셔서 과로 때문이라고, 큰 이상은 없다고 하시니까, 이거 다 맞으면 가셔도 될거같아요.

태형

아... 네, 감사합니다.

복잡했던 머릿속이 차츰 정리가 되는 듯했다. 그리고 불현듯 내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태형

아!!!! 맞다..... 저기요, 저랑 같이 실려왔던 그 환자. 어딨어요 지금?

그때

옆에서 나즈막한 목소리가 내 질문에 답을 해주었다.

"이제야 나 찾냐ㅋ"

그 목소리를 듣자 나도 모르게 두 눈 가득 눈물이 고였다.

옆으로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그는 내 옆 침대에 앉아서 나를 보며 삐딱하게 웃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그런 미소였다.

태형

형....? 정말 형이야? ..윤기형 맞..아?

윤기

아니면 누구겠냐ㅋ 아직 잠 덜깬거 아냐?

태형

이거 꿈 아니지.. 현실 맞지.....? 형, 우리 살아있는거 맞..지?

윤기

어 맞다고ㅋㅋ 몇번을 말해야 되냐, 김태형.

태형

........흐윽...흑흑....윤..기형....민윤기..이 나쁜놈아. 흑흐윽...흐

그제서야 나는 마음놓고 울었다.

그가 살아있다는 사실, 그것 하나만이

지금까지의 모든 불안함과 두려움, 절망감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그리고 민윤기는 아무말없이 울고 있는 나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윤기

그래..그래. 이제야 깼네. 근데 어디서 건방지게 반말이냐? 어?

태형

흑...크흡...으어어어... 흐윽흑..흑.. 이 나쁜 자식아.. 누가 그러랬어.. 누가... 나만.. 흐윽... 남겨놓고 가라고 그랬어...

나를 위로시켜주려 애써 웃음짓는 그가 너무나도 밉고 원망스러워 그의 가슴팍을 치기 시작했다.

윤기

미안 미안.. 앞으로 다신 안그런다, 내가... 근데 너 어째 주먹이 점점 쎄진다?

태형

지금 이 상황에 농담이 나와?

윤기

미안하다고.. 아 거참. 그만 좀 울어라. 사내새끼가...

그렇게 한참을 나는 울고 또 울었다.

태형

....킁!!! 흐으으... 크으응

요란하게 코를 푸는 내 모습에 민윤기가 한심하다는 듯 날 쳐다봤다.

윤기

아 진짜... 더럽게

그 말에 난 그를 확 째려보았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윤기

너 발은 왜 그 모양 그 꼴이냐?

슬쩍 살펴보니 자전거와 부딪힐 때 아스팔트에 쓸려 찢어졌는지 검붉은 피와 먼지가 뒤섞여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태형

아.. 살짝 넘어졌어.

윤기

지랄하네. 살짝 넘어진걸로 그정도 다치냐? 간호사 부를테니까 소독해달라 그래.

태형

아 됐네요. 별것도 아닌거 같고 난리 피우기 싫네요~~~

윤기

그래.. 내 말을 들으면 김태형이 아니지.

태형

지금 그 말은 내가 해야되는거 아닌가, 민윤기 씨?

윤기

뭐래

태형

이유나 들어보자. 굳~이 걸어놓은 비번 뚫고 그걸 왜 봤는지. 그 빌어먹을 유서인지 유언인지, 그건 뭔지. 그리고...

왜 그랬는지.

윤기

하아... 왜 그랬나..... 그런 이유... 왜 그랬는지..

그는 길고긴 이야기를 시작했고, 나는 그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그리고 그의 얘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그는 사람이 너무 무서웠다. 그 인간들이 자신에게 하는 말들이 모두 상처였고, 아픔이었다. 그는 자신이 죽었을때 슬퍼할 사람보다는 기뻐할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싫었다.

이 고통을, 이 통증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죽는 것 외엔 없었다. 그들도 그렇게 원하고, 자신도 너무나 아픈데 왜 삶을 붙잡고 있어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도망치려 한 것이다.

이 구역질나고 시궁창같은 현실로부터.

그는 그랬던 자신이 밉고, 미치도록 후회된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날 처음으로

민윤기의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