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에서 일진한테 뽀뽀 받았어요

02. 나중에 가지러 와 (2)

남은 명찰도 없는데 하나뿐인 그 명찰을 들고가버렸으니...

쌤들한테 눈총 좀 받았다. 나쁜 쪽으로...

명찰 뺏기고 지각할까 싶어 뛰어올라오다 한번.

국어

1학년이 명찰도 없어? 너 몇 반이야.

어휴... 계단 올라가고 있었는데 1학년인 건 어떻게 아셨는지. 눈도 안 좋으신 분이! 하여튼 명찰 안에 이름은 안 보이고 명찰이 달려 있는지만 보이시죠? 아악. 그래도 이때까진 괜찮았어.

쌤들 눈 피해다니려고 교실에만 짱박혀 있었는데 점심 먹으려고 나왔다가 눈 마주친 윤리쌤도 한마디 하시고...

윤리

어, 어. 거기 너!

저. 저요...? 저 왜요ㅠㅠㅠ 속으로만 그리 울면서 20분간 연설을 들었지. 오늘 닭볶음탕 나왔는데... 열심히 젓가락질 했어야 하는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웠어.

라스트 팡. 수업 들어온 담임한테 한번 걸려서.

한국사 image

한국사

오늘 28일이지? 28번 빠졌으니까 29번. 그 쪽 읽어볼... 여주 명찰 없니?

하하... 없어요. 아니 있었는데 없어요. 저 진짜 있었는데 그냥 없어졌어요... 진짜로 이렇게 구구절절 말 할 수도 없고. 어우, 답답해!

왜 1학년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고3들은 거의 다 안 하고 다녀도 안 잡으면서. 고2도 안 잡잖아. 하. 월요일이라 그런가 다들 신경이 곤두서 계셔...

하여간 만만한 게 1학년이지. 그런거지? 진짜 짜증나게!

한번씩 경고만 받고 학생부로 끌려가진 않았는데 억울한 거 있잖아. 내가 왜 이래야 해. 그 선배한테 명찰 받으러 가기는 좀 쫄리는데.

에이. 재수가 없어서 진짜. 내가 진짜 못 찾아가는 게 아니라 안 찾아가는 거야! 참. 나는 그 선배 몇 학년인지도 모르니 못 찾아간다는 게 맞지.

절대 무서워서가 아니라 몰라서 못 찾아가는 거야. 진짜로.

그냥 의미없는 자기위로와 함께 얻은 정신승리로 교복사에서 하나 사려고 했다. 미리 사 놓을걸. 하여튼 내 덜떨어진 준비성이 항상 문제야.

책상 위에 엎어져 한숨만 푹푹 쉬었다. 종례 좀 빨리 끝내 주실래요 담임쌤... 저 오늘 학원 갔다 명찰 사러 갔다 아주 바쁠 예정이네요.

너무 지루해서 앞에서 무어라 말하고 계신 담임 등지고 김채원한테 속닥거렸다.

홍여주 image

홍여주

오늘 6시야, 6시 반이야?

김채원 image

김채원

6시. 너 저번처럼 가방 안 가지고 오기만 해. 너 빌려줄 볼펜 없으니까.

홍여주 image

홍여주

야. 너 말 진짜 막 한다... 내가 너 괴롭히려고 그랬겠냐고.

막 속닥거리다 앞에서 느껴지는 부담스러운 눈길에 자리에 바로 앉았다. 오늘 진짜 마음에 안 들어. 월요일이라서 그런가 봐.

한국사 image

한국사

여주가 오늘 왜 이렇게 떠들지?

홍여주 image

홍여주

죄송합니다아...

담임도 완전 짜증나... 이쯤 했으면 끝내야하는 거 아니냐고.

오늘따라 왜 이렇게 재수가 없는지. 집에 가려고 짐 다 챙겼는데 이번 주 주번인 애가 며칠 전부터 아파서 학교를 빠졌다는 거다.

그 말은 뭐다? 번호가 밀려서 내가 대신 해야 한다... 지들끼리 하면 되지 꼭 나까지 불러들여야 했냐고!

궁시렁대는 것 외엔 방법이 없지만 그마저도 소심하게 속으로 해야한다는 사실이 너무 서럽네.

그냥 설렁설렁 바닥 쓸고 반장이랑 떠들다 반을 나왔다. 이제 학교 탈출...

어?

은은하게 코에 맴도는 섬유유연제 향. 좀 익숙한데 이거...

그 불길한 생각에 주위 두리번거리다 누구랑 눈 마주친다. 아. 아아. 저, 저 둥그런 눈...!

하루 내내 재수가 없게 했던 장본인이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저... 저 선배가 오늘 불행의 근원지였어!

왠지 모르게 피해야 할 것 같아서 못본 척 채원에게로 발걸음을 돌린다.

원래 부정탄 물건, 아니 사람하고는 가까이 지내면 안 된댔어. 훠이훠이.

홍여주 image

홍여주

야 오늘 쌤들 진짜...

어깨에 턱 얹어지는 손.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 명찰 선배다. 어어어어떡해...

차마 얼굴은 못 돌리고 가만히 있으니까 김채원이 뒤를 도네. 아 진짜 채원아... 눈치가 없어억!

전정국 image

전정국

저기 친구야. 얘, 여주? 여주 오늘 나랑 할 얘기가 있어서 너 혼자 가야할 것 같은데.

전정국 image

전정국

어떡하냐. 기다릴래?

홍여주 image

홍여주

아니 제가 왜.

무슨 소리야 싶어 뒤를 도는데 이미 선수를 쳤다 이거야.

누가? 김채원이.

김채원 image

김채원

네. 저 먼저 갈게요.

뭐? 야 네가 어떻게 그래. 이 상황에 어울리지는 않지만 눈 앞에서 바람맞은 기분이다.

김채원 image

김채원

홍시 너 오늘 가방 꼭 챙겨와.

홍여주 image

홍여주

어? 아니...

아니 가지마... 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다. 말하고 싶었다. 근데 아직 내 오른쪽 어깨 위에 올려져 있는 손 때문에.

힘이 실려 있지 않은데 무거운 마음에 조용히 그 선배 마주봤다.

홍여주 image

홍여주

왜, 왜요... 저 쟤랑 같이 가기로 했어요.

잔뜩 쫄아서 개미만한 목소리로 벌써 등 돌린 김채원 가르키며 말했는데 그 선배 픽 웃는다.

전정국 image

전정국

우리 방금 약속 잡았잖아. 뒷문으로 나갈래?

홍여주 image

홍여주

미쳤어, 진짜 미쳤어요?

계속 뻐팅기면서 혼자 가려고, 아니 혼자는 아니더라도 절대 이 선배랑 같이 가려고는 안 했는데 대화하고 있으면 말리는 기분이다.

벌써 말렸네 난. 왜 이 선배랑 같이 가고 있냐고... 그것도 뒷문으로.

홍여주 image

홍여주

들키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요?

만만한 1학년이라 두리번거리면서 조심스럽게 뒷문 뛰쳐나가는데 이 선배는 그런 것도 없어. 진짜... 부럽다. 왜 이리 느긋해.

그리고 뭘 자꾸 웃어 이 인간. 내가 웃기게 생겼어? 아니면 급식 급하게 먹어서 닭볶음탕 양념이라도 입에 묻었어? 아님 고춧가루가 이에 낀거야?

홍여주 image

홍여주

저한테 왜 그러세요?

웃는 게 보기싫어 툭 던지듯이 말했는데 곱게 휜 눈은 더 깊어져. 웃지 마요... 정 들것 같아. 마음속으로밖에 할 수 없는 그 말을.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어.

아. 이것 봐. 같이 있으니까 내가 이상해진다니까.

전정국 image

전정국

나중에 가지러 오랬잖아.

내 앞으로 불쑥 내밀어진 손. 뭐야. 내 명찰이네. 잽싸게 낚아챈다. 내가 오늘 이거 하나 때문에 평소에는 못 받아봤던 안 좋은 관심을 받아봤어, 알아?

홍여주 image

홍여주

... 왜 가져갔어요?

전정국 image

전정국

너랑 말 한번 섞고싶어서. 찾아오라고 했는데 안 찾아오더라. 왜 안 왔어?

... 으. 왜 저래. 할 말이 없게 만드네.

싫어? 그런 얼굴로 말해도. 싫은건 싫... 싫,

홍여주 image

홍여주

... 네. 싫어요.

솔직히 싫어요.

그러니까 또 막 웃어. 이씨. 왜 자꾸 웃는데.

전정국 image

전정국

너 진짜 귀엽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명찰 뺏어놓고 다시 주면서 꼬시는 말투 하면... 이상해 진짜. 중딩 때 많이 들었던 뻔한 멘트랑은 조금 달라.

아냐아냐. 이상하고 다르고 그러면 뭐해. 조용히 살기로 했잖아.

홍여주 image

홍여주

저 선배 진짜 누군지 몰라요.

땅만 보면서 그렇게 말하니까 웃음기 가득한 눈 안 보여서 좋다. 왠지 상상이 가기는 한데.

전정국 image

전정국

근데 내가 선배인 걸 아네?

아. 진짜 이 사람 뭐지? 왜 이렇게 사람을 홀려?

홍여주 image

홍여주

아니 그건,

그대로 멈춰서는 이 선배를 보고 진지하게 고민한다. 튈까. 튀어야겠지. 튀자 그냥...

전정국 image

전정국

나랑 사귀자.

전정국 image

전정국

나랑 뽀뽀했잖아. 내가 책임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