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길 바라"

04. 순수했던 꿈, 막연한 소원

"오늘이 마지막이길 바라"

제4화. 순수했던 꿈, 막연한 소원

🍈10k Hours (Feat. Nas) - Jhene Aiko

++ 이번 화 분위기에 걸맞는 노래가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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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라

…….

믿기지 않았다. 내 눈앞에 서있는 이는 대체… 왜 여기 있으며, 나한테까지 아는 척을 한 이유는 무엇이고, 어쩌다 날 발견한 건지.

모든 게 의문투성이인 와중에, 내가 일어서면 내게로 다가온 그는 주저하지 않고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어 신발 끈을 다시 묶어주었다.

뭐에 홀린 듯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양쪽 신발 끈 다 묶어준 그가 어느 순간부터는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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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이렇게 묶어야지_

그 말을 끝으로 일어나더니 내게 하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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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차마 아무 말도 못 하겠더라. 그냥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밖에.

아무 말 없이 삐뚤어진 미소를 지어 보인 나는, 최대한 그의 시선을 피하고서 바닥만 응시했다.

그렇게 그냥 이 자리를 피하려 하는데… 먼저 내 손목을 잡아오는 그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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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날 벌써 잊은 거면 좀 서운한데.

그는 이미 알고 있다.

내가 그를 아직 잊지 못했다는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늘 그랬듯 나를 흔들어 놓겠지.

응, 오랜만이네. 큰 결심 끝에 내가 내뱉은 한 마디라곤 그것뿐. 그와 어떤 대화를 하기에는, 망설여지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우리의 첫 만남으로 돌아가려면, 꽤 오랜 시간을 되돌아가야 한다.

9년 전, 그러니까 열여덟.

어느 날과 다름없이,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친구들과 급식실로 뛰어 내려가는 길이었다. 그것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치즈 핫도그가 나온대서 뒤도 안 돌아보고.

한창 먹을 게 전부인 나이. 넘어질까 봐 내 이름 외쳐대며 나를 말리는 친구들을 제치고 재빠르게 급식실 근처에 도착했더니 막상 몇 명 없길래 돌아온 길을 바라봤다.

저 위쪽 계단에서 친구들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는 한데… 이러다간 다른 애들한테 순서 뺏길 것 같은 거야. 내가 어떻게 뛰어와서 얻어낸 1등인데.

한사라

야-!!! 너네 빨리 안 내려와?!?

그래서 다짜고짜 전방에다 대고 고함 질렀다. 주변에 계시던 쌤 한 분 화들짝 놀라셨는데… 내 소리를 듣긴 들었는지 점차 빨라지는 발걸음 소리.

"아 ㅋㅋㅋ 한사라 너 언제부터 여기 있었냐-? 진짜 빠르네."

한사라

됐고 됐고, 빨리 와.

셋이서 나란히 발맞추어 걸어오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뒤로 걸었다. 시간 없다며 재촉하니까 그제서야 뛰어오길래, 나도 뒤는 볼 생각조차 안 하고 뒤로 뛰었지.

근데… 점차 날 보던 애들 표정이 굳어 가는 거야. 이미 그걸 알아챘을 때는 너무나도 늦었던 때지만.

퍽, 진짜 거짓 안 보태서 이런 소리가 나더라. 내 등이 누군가의 등에 부딪힌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길래 허겁지겁 뒤돌았지.

한사라

…진짜 미안. 괜찮아? 안 다쳤ㅇ…

내가 생각해도 그때는 거의 몸통 박치기(?) 하다시피 내 몸을 가져다 박은 상황이었어서… 아무리 남자애라도 아플 것 같더라고.

나보다 제법 큰 남자애로 추정되었던 얘도 나와 동시에 뒤돌아서서 말했어. 그때 얘한테만 자체 슬로 모션 걸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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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미안, 내가 못 봤다. 괜찮아?

그때(첫눈에 반했을 때)를 빌미로 걔한테 찾아가는 횟수가 빈번했던 것 같다. 실은 좋아했지만, 감정은 감추고서 친해지는 데에만 힘썼던 것 같고.

그때는 친구로만 남아도 충분할 것 같다고 생각했으니까.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지, 5년 가까이 흘렀다. 이제는 희미해질 법도 한 그의 얼굴이었지만, 몇 번이고 꿈에 나타나던 모습이라 어제도 본 것처럼 익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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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라

…언제부터 한국에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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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조금 됐어. 지난주부터인가.

정신 차려 보니까 한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던 우리. 자판기에서 뽑아 온 따뜻한 캔커피를 내게 내민 그였다.

눈이 제법 다 내리고 난 후에, 어두운 하늘을 바탕 삼아 날리는 희뿌연 눈송이들이 유독 반짝거리는 밤이었다.

도시를 비추는 환한 빛은 여전하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소박한 대화가 오고 갈 동안 우리는 어떠한 말도 없이 서로를 의식했다.

너는 나를 한때 흔하디흔한 친구 중 하나로 여겼을지 몰라도, 나에게만큼은 네가 결코 흔한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넌 그렇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네가 어려운 나와 달리 지금처럼 내게 쉽게 말을 걸어왔을 테고.

네가 건넨 캔커피만 만지작거리며, 별생각이 다 떠올랐다. 갓 자판기를 나온 탓에 온기가 손을 감싸는 듯한 느낌이 좋으면서도, 머지않아 식어버리는 온기가 마치 우리 사이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캔에 남은 따뜻한 온기가 다 식어갈 때즈음, 캔 뚜껑을 따서 조심스레 입에 대었다. 이 추운 밤에 마시는 따뜻한 음료는, 얼어있던 몸을 단번에 풀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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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라

그럼 이제, 계속 한국에 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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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어. 이제 할 거 다 했으니까.

여기서 가게만 차리면 끝이네. 홀가분한 어조로, 꽤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인 그는 남은 커피를 마저 다 들이켰다.

그래, 한때 내 마음을 앗아간 절절한 짝사랑의 상대인 그에겐 어릴 적부터 꿈이 있다고 했다.

남들 다 한 번쯤은 꿈꿔봤다던 돈 많은 백수나, 로또 당첨되기… 그 무엇도 아닌, 향기를 선물하는 사람이 되는 것.

처음에는 나도 듣고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뭘… 선물해? 하지만 그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에는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조향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자신만의 공방을 차리기.

이왕이면 유명해져서, 벌어들인 수익 전부를 아이들에게 기부하고 싶다고도 했던 것 같은데.

그렇게 5년간 타지에서 조향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우고 온 그는, 5년이 지난 지금도 결심에는 변화가 없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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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라

바쁘겠다, 알아볼 게 많겠네.

요즘 땅값 비롯해서 건물 시세 만만치 않잖아. 내 집 하나 구하기도 힘들다-. 바람 빠지듯 웃으면, 고개를 돌려 날 응시하는 그였음을.

돈이라면 부족하지 않게 있긴 해. 너스레를 떨며 날 향해 웃는 그의 모습에, 괜시리 어깨 한 번 쳤다. 너 지금 내 앞에서 자랑하는 거지.

그가 입가에 미소를 띠자, 나도 자연스레 웃게 되더라. 그때를 틈타 그가 꺼내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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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곧 바빠질 예정이니까, 네가 좀 도와주면 되지.

그는 내게 고개를 가까이 내밀며 말했다. 내가 도와주기를 애초에 바라고 있었던 사람처럼.

그렇지만… 나는 너를 마주하는 게 지금이 마지막이길 바라는 걸.

그게 과거의 순수했던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지금으로써 내 첫사랑이 무사하다는 걸 확인한 후에 온전히 너라는 존재를 잊기 위해서라도.

나는 오늘이 마지막이길 바랐고, 바라.

내가 오늘부로 너를 놓아줄 수 있기를 말이야.

++ 안돼 사라야... 너희는 이제 시작이잖아( •︠ˍ•︡ )

++ 아니 여러분. 근데. 비주얼.은. 대체. 왜. 움짤.이🤦🏻‍♀️ 안 되는. 걸까.요. (깊은 한숨)🤦🏻‍♀️ 이마 탁. 진짜. 움짤. 넣고싶다. 그래야 과몰입. 더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