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길 바라"

07. 꺼지지 않은 불씨

"오늘이 마지막이길 바라"

제 7화. 꺼지지 않은 불씨

김태형, 세 자의 이름을 가만 곱씹던 정국은 이내 입을 열었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빛을 감추려 고개를 약간 숙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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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고등학생 때 첫사랑이라던, 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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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라

…어.

입안 살을 꾹 깨물었더니, 머지않아 혀끝에서 비린 맛이 감돌았다. 나의 모든 연애사를 알고 있는 놈이, 그들과 같이 일하게 된다는 현실이란.

나도 가혹하지만, 얘도 얘 나름대로 매우 불편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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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옛 인연 다 만나네, 이번에.

그의 그 말 한마디에는 분명 웃음이 섞여있었지만, 그의 표정과 감정이 꼭 그렇지마는 않았다.

그럴 수 밖에 없는 노릇이지, 하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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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라

정말 도망가고 싶다-

먼 곳을 응시하며 한숨과 함께 내뱉은 말이었다. 그것도 잠시, 정국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지.

나 도망가게 되면 같이 따라와, 너도 ㅋㅋㅋ 흘리는 말으로 너스레 웃음을 보이니 그제서야 제법 풀어진 네 표정에 마음이 놓였다.

···

Double take - Dhruv 0:52 ━━━━●────────── 3:50 ⇆ㅤㅤㅤㅤㅤ ◁ㅤㅤ❚❚ㅤㅤ▷ ㅤㅤㅤㅤㅤ↻

09:28 PM

퇴근 후, 집.

오늘따라 씻는 게 너무 귀찮기도 하고… 그냥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씻어야겠다 싶어 옷만 갈아입고 소파에 기대 누웠다.

딱 눕자마자 잠이 솔솔 밀려오길래… 오늘 빠뜨린 건 없나 하며 흐려지는 정신을 붙잡고 생각해 보는데…

조용한 공기의 흐름을 깨뜨리는 발랄한 벨 소리에 그만, 오던 잠도 다 달아나 버렸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벨 소리가 들리는 가방까지 걸어가 핸드폰을 꺼내는데, 그 순간 끊어진 소리.

통화 기록에 들어가 확인해 보니, 저장 안 된 번호로 걸려왔길래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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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라

……익숙한데.

왜인지 모르게 낯이 익은 숫자 배열의 번호. 하지만 개의치 않고 핸드폰을 내버려 두고, 선반에서 잔 하나를 꺼내들었다.

저번에 마시다 남은 와인도 함께.

아일랜드 식탁 앞에 앉아 와인을 쪼르르 따르고 있었을까, 다시금 걸려 오는 전화에 다시 핸드폰을 찾게 되는 나였음을.

같은 번호네.

생각하기 무섭게, 이번에는 짧게 울리다 말고 끊어졌다. 두 번 연속으로 건 걸 보면 실수로 건 전화는 아닌데.

곰곰이 이 익숙한 번호의 출처를 생각해 보며 조심스레 와인잔을 입가에 대자, 미적지근하면서 달콤 씁쓸한 액체가 입안으로 밀려들었다.

빤히 들여다 보는 중이던 핸드폰 화면. 아까보다는 꽤 긴 시간이 지났을까, 다시금 같은 번호로부터 온 전화가 울렸다.

이제는 받아봐야겠다 싶어 잔까지 내려놓고, 조심스레 응답 버튼을 누르고서 귀에 가져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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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라

여보세요…?

바로 목소리가 들려올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다. 초반에는 그 어떠한 소리도 안 들렸다.

그러다… 사람의 숨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는 듯한 소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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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라

여보세요, 누구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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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라

말씀을 하세요, 저ㄱ…

"…사라야."

…그 조용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긴가민가하던 그 숫자의 배열이, 그토록 익숙하게 느껴지던 그 번호의 이유가.

박지민이었기 때문에.

"정말 미안해…. 미안해, 지민아."

"나보다 좋은 사람 만나서 제발 행복해 줘."

"…평생 나 원망하고 살아. 정말 미안해."

···

"…사라야."

그 어느 때보다도 조용한 목소리였다. 미세하게 떨리는 듯한 그의 목소리가 오늘 낮에 봤던 정적인 그의 모습과는 완전히 대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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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라

……응.

정적이 이어졌다. 그렇게 숨 막히지는 않은, 침묵의 시간이 제법 흘렀다.

헤어지고 나서 단 한 번도 내게 먼저 전화를 건 적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할 말이 있어서 전화를 건 듯한 그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른 것으로 보아 제법 취한 듯 했다.

이런 실수를 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술이 정말 센 편이라 사귈 때에도 술 마시고 전화한 적을 본 적이 없는데.

그간 그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가 이 전화 한 통에 다 담긴 느낌이라, 마음이 괜히 묘해졌다.

"…."

"……보고 싶어."

마음이 쿵 내려앉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와 동시에 눈가가 시큰거리자, 머지 않아 따뜻한 액체가 턱 아래로 떨어졌다.

미처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나오려는 눈물을 참으려 시선을 천장에 두고 있었을까. 이내 들려오는 그의 한 마디….

"…미안해."

···

다음 날, 회사.

"웬일이야? 사라 씨랑 같이 출근하는 거 아니었어, 정국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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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아, 사라가 오늘은 먼저 가라고 하더라고요.

팀장에게 있는 힘껏 사람 좋은 웃음을 내비친 정국은 대화 도중에도 까만 핸드폰 액정을 하염없이 쳐다봤다.

마치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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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

그리고 그날,

사라는 끝내 회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인물 관계도 투척! (오른쪽 아래에 있는 자그마한 글씨는 무시해 주세요:)

++ 사라는 회사에 왜 안 나왔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