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수저 물고 태어났는데요 "
01. 금수저, 싫은데


어릴 적에, 나는 내가 평범한 줄 알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걸 남들도 다 가진 줄 알았다.

내 주위에 친구는 인형들이 전부였고,

어린 내게 밖에 대해 말해주는 어른은 없었다.

그러다가 4살쯤 되었나,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외로워하기 시작하자,

내게 친구가 생겼다.

진짜 친구, 인형 같은 게 아니고.

표지훈, 내 인생 최초의 친구였다.

나는 똑똑한 편이라 한글을 일찍 깨우쳤지만

표지훈은 밖으로 나가거나 노는 걸 좋아해서,

글을 아직 깨우치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나보고 잘 지내라고 알려줬다.

나랑 비슷한 나이에 사람을 만나니까,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건 그 애도 마찬가지인지 처음 만난 날 30분 동안,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표지훈이 한 첫 말이 기억나는데,


표지훈
표, 표지훈!

한 마디도 없다가 갑자기 대뜸 표지훈이라고 외친 게 기억에 남아서, 가끔 놀릴 때 써먹는다.

물론 그 때 엄마가 새 친구 이름은 표지훈이라고 알려줘서

일주일 전부터 외우고 있었지만,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실제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냥 꽉 끌어안았던 것 같다.

그걸 보던 우리 유모는 입을 틀어막았지만, 뭐.

내가 놔주니까 표지훈은 얼굴이 새빨게져서 웅얼거렸다.


표지훈
이, 이름이 뭐야?


김여주
김여주, 김여주야! 잘 부탁해, 지훈아

빨리 말할 수도 있었지만 표지훈은 못 알아들을 것 같아서 천천히 한 마디, 한 마디 말해줬다.

고개를 끄덕이더니,


표지훈
흐, 좋아!

하고 환하게 웃던 그 날의 표지훈.

난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유치원을 가게 되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표지훈은 학교, 이런거에 관심없어서 안 가고,

나 혼자 가는 유치원이었다.

유치원 가기 전 날, 내가 내일은 못 논다고 얘기했더니만

왜 못 만나냐면서 엉엉 울어대는 표지훈.

표지훈네 유모가 여주는 유치원 가야한다면서

안된다고, 지훈이랑 못 논다고 그러니까

울면서 잘 하지도 못하는 말을 웅얼거린다.


표지훈
나두, 나두 갈래.. 여주 가는데는 나도 갈거야..

유모는 안 된다고, 지훈이는 못 간다니까


표지훈
왜? 나는 왜 못 가는데...!!

혼잣말로 이미 유치원 모집이 끝난 걸 어떻게 설명하지,

그러시는 유모를 툭툭, 치고서는 내가 설명하겠다고 했다.

뭐, 그렇게 표지훈한테 유치원 끝나고 오겠다고 하고

유치원을 갔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등원했을 때, 선생님들이 수군거리면서 날 쳐다봤다.

담임선생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와서 가식적인 웃음을 지었다.

가식, 그 단어를 5살 아이가 이해했다.

확실히 다른 아이랑 나를 대하는 태도는 달랐고,

다른 아이랑 대화하다가 깨달았다.

걔네한테는 집에 마당도, 부모님처럼 소중한 유모도,

인형방도, 원하는 걸 전부 살 수도 없었다.

그 날, 표지훈한테 이상하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표지훈은 그냥 날 봐서 기쁜 듯 웃고 있었다.

유치원을 한 달 다녔나, 나를 보며 속삭이는 모든 것들에서부터 알 수 있었다.

나는 재벌, 그니까 돈이 많은 집안에서 태어났고

돈은 세상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걸.

그래서 남들이 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것을.

아, 나중에 안 사실인데 표지훈네 부모님 역시 재벌이셨고,

부모님들끼리 친분이 있는데 마침 동갑이라서 소개시켜줬다고 했다.

나는 원래 초등학교에 안 가게 되어있었다.

굳이 가지 않아도 나는 집에서 더 뛰어난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갈 필요성도 못 느꼈다.

하지만 나는 가고 싶었다.

내 인간관계가 가족과 표지훈네 가족, 이 두 개로 끝나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마저도 부모님이 재벌 학교에 보내시려는 걸 말렸다.

나는 K그룹 회장 딸 김여주보다, 그냥 평범한 김여주가 되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 평범한 김여주 ' 가 되었고,

표지훈도 나를 따라서 ' 평범한 표지훈 ' 이 되었다.

학교에서도 선생님들 중에 몇몇 분들만 우리가 누구인지 알았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했고,

둘은 각자 친구가 생겼고,

유명하지도, 그렇다고 혼자이지도 않은

그냥 정말 평범한 삶을 살았다.

물론 학교를 다녀와서는 특별한 삶을 살았지만.

중학교 입학을 하는 날, 표지훈네랑 같이 외식을 했다.

내가 기억하던 그 꼬맹이는 없고, 내 맞은 편에 앉은 건

눈 앞의 스테이크를 자르는 데 열중한 중학생 남자애랄까,

아무튼 어린 아이는 아니었다.


표지훈
이거 먹어, 여주야


김여주
어, 고마워

부모님
아이고, 우리 지훈이 남자가 다 됐네~

표지훈 부모님
여주는 커갈수록 점점 더 예뻐져?


표지훈
여주는 어릴 때부터 예뻤어요, 아빠


김여주
그에 비해 지훈이는 많이 용된 거죠


표지훈
어어, 너 그러는 거 아니다


김여주
뭐가, 맞는 말 했구만


표지훈
됐어- 나 삐질거야


김여주
그러시던가요~

부모님
어이고, 스테이크 식겠다 어서 먹어라 애들아

표지훈 부모님
그래, 많이 먹어~


이지은
김여주, 오랜만이다!


김여주
무슨, 우리 어제도 봤거든요?


이지은
에이, 그게 오랜만이지.


이지은
어제 너랑 밥 먹으려고 했는데, 누가 약속 있다고 후다닥 가버리는 바람에-


김여주
미안해, 부모님이랑 외식 약속 있었어. 대신 주말에 놀자, 응?


이지은
그래그래, 바쁘신 김여주님 말 들어야죠~

이 쪽은 내 두번째 친구, 이지은이다.

초등학교 들어가서 친구는 있었는데 정말 친한 친구는 아니라서,

학교를 괜히 간다고 했나 후회될 때 만난 친구다.

그 후로는 학교 잘 갔다는 생각밖에는 없다.

물론, 지은이는 내가 K그룹 회장 딸인 건 안다.


박지민
아 얘는 무슨 아침부터 김여주 반이야,


표지훈
뭐, 불만 있냐


박지민
어, 물도 있다


이지은
아 ;


표지훈
여주 안녕~ 오랜만이야


김여주
저기 우리 오늘 봤거든요? 아침에


표지훈
그래도 오랜만이야-


김여주
표지훈이나, 이지은이나. 둘다 똑같네


이지은
어 그거 되게 기분 나쁘네-


박지민
그래서 인사 나눴으면 다시 반으로 갈까, 지훈아?


표지훈
싫어, 종 칠때까지 있을거야.


박지민
아니, 첫날부터 수업 늦으면 너는 괜찮겠지만 나는 안 괜찮거든?


표지훈
그건 네 알바고 ㅋㅋㅋ


박지민
아 진짜, 표지훈!


표지훈
알겠어, 가볼게 여주야 이따 집 갈 때 보자


김여주
응, 이따 봐-


이지은
잘가, 다신 보지 말자-


박지민
내가 할 말이네요~


김여주
어우, 깜빡 잘 뻔했다


이지은
그러게, 수업 되게 재미없게 하시네


김여주
화장실이나 갈래? 잠 깨는 용도로,


이지은
웅, 콜


김여주
헐 미친, 방금 봤냐


이지은
갑자기 복도 한 가운데 서서 뭐하세요,


김여주
존나 내 스타일인 남자애 봤어


이지은
안 쓰던 욕까지 쓰고, 어지간히 좋았나보네


김여주
어, 진짜 완전 대박.


이지은
그건 나중에 생각하시고요, 가던 길이나 가자-


표지훈
여주여주-


김여주
부르지 말아봐,


표지훈
?


이지은
지금 우리 여주가 바쁘거든,


이지은
자기 이상형 찾느라고.


표지훈
...? 이상형이요?


이지은
응, 아까 복도에서 본.


박지민
와, 김여주 눈에서 레이저 나온다.


김여주
헐, 찾았다.


이지은
어디, 어디


김여주
저어기, 두번째 줄 오른쪽에서 세번째.


이지은
엥


표지훈
못생겼는데?


김여주
미쳤냐, 완전 내 꿈에 그리던 왕자님이신데


박지민
쟤보다 내가 낫다


이지은
음 그건 아닌듯


김여주
아닌데, 쟤가 더 잘생겼는데


표지훈
..박지민이 더 낫네


박지민
역시, 너밖에 없다 내 친구야


이지은
아니 그래서, 명찰 보여?


김여주
민, 민.. 윤기


박지민
민윤기? 이름도 내가 낫다


이지은
아 좀 닥쳐


박지민
(쭈글


김여주
민윤기, 그래 민윤기.


박지민
와, 지금 저 친구 소름 돋았을 듯.


이지은
그건 인정, 김여주 저러는 거 처음 봐.


박지민
야, 야 너가 말해봐. 김여주 저런 적 있어?


표지훈
...아니, 한 번도.


이지은
와, 찐이네 찐이야.


김여주
와, 밥 먹는 거도 잘생겼어.


박지민
너 스토커 같아서 슬슬 무서워지거든?


김여주
응, 내가 알아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