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에도 예보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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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 아, 안녕하세요. 먼저 연락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민윤기라고 합니다.

윤여주
📞 너무 늦은 시간에 전화한 건 아닐지···.


민윤기
📞 아니에요. 그··· 혹시 내일 소개팅 때문에 연락해 주신 거죠?

윤여주
📞 아, 네네.


민윤기
📞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윤여주
📞 네? 실례지만 어디 사세요?


민윤기
📞 가까워요. 여주 씨 집 근처 카페 주소 메시지로 찍어주세요.

윤여주
📞 아··· 알겠어요, 그러면. 내일 뵐게요.


민윤기
📞 고마워요, 여주 씨. 내일 봬요.

사실 떨려서 뭐라 제대로 말했는지 잘 모르겠다. 일단 집 근처에 분위기 좋은 카페가 있긴 해서 바로 주소를 남겨주었다.

목소리만 들어서 잘 모르겠는데 뭐··· 나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기대가 됐다고 표현해도 되나.

솔직히 김석진 작가님을 다시 만나면 난 이렇게 잘살고 있다. 이제 울보 아니다. 당신 기다리면서 울고만 있을 줄 알았냐. 이렇게 내가 잘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작가님이 말한 것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고. 오히려 이번에는 작가님을 그리워하는 쪽보다 분하고 짜증 나는 마음이 컸었기에 나름 초반만 힘들어했지, 지금은 아니다.

[ 다음 날 ]

사실 소개팅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나였기에 옷은 어떤 것을 입어야 하는지, 신발은 뭘 신어야 하는지 감이 안 왔다.

윤여주
그래. 이거야.

평소에는 입지도 않는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평소에 치마를 안 입어 너무나 어색했지만, 그래도 한껏 꾸몄다. 나름 소개팅이니까. 처음에 관심 없다고 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정말 오랜만에 공들여 꾸민 것 같다.

···



민윤기
혹시 윤여주 씨···?

윤여주
아, 안녕하세요. 민윤기 씨?


민윤기
네, 맞아요. 반가워요. 앉아요.

사실 조금은 작가님 생각이 났다. 아무 말도 안 하면 잘 못 알아보는 작가님만 만나다가 먼저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니까 기분이 묘했다. 이상했다.

윤여주
언제 와계셨어요?


민윤기
별로 안 됐어요. 라떼 좋아하신다고 해서 주문했는데.

윤여주
어, 감사해요. 어떻게 아셨어요?


민윤기
태형이 찬스 좀 썼어요.

윤여주
아ㅋㅋㅋ 선후배 사이라고 들었어요.


민윤기
맞아요. 태형이랑 알고 지낸 지 되게 오래됐죠.

윤여주
아··· 사실 좀 궁금했어요. 김 큐레이터 아, 죄송해요. 이게 너무 익숙해서···.


민윤기
아니에요ㅋㅋㅋ 괜찮아요.

윤여주
태형이라고 하는 게 입에 안 붙어서···. 그··· 태형이가 되게 괜찮은 분이라고 엄청 말했어요, 정말.


민윤기
아 그래요? ㅋㅋㅋ 그래서, 괜찮은 사람 같아요?

윤여주
네···? 엇, 네.


민윤기
어, 강요한 건 아니에요ㅋㅋㅋ 여주 씨도 정말 괜찮은 분인 거 같아요.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태형이가 그랬거든요.

윤여주
그래요···? 참···.

말이 되게 잘 통한다고 느껴졌다. 쉬지도 않고 대화가 계속 오간 거 같다. 사실은··· 김석진 작가님이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재밌었다. 작가님은 그냥 다정 그 자체라면, 윤기 씨는 약간 츤데레 느낌?

···

윤여주
혹시 술··· 좋아해요?

내가 먼저 술을 권했다. 친하지 않은 사람하고는 술 잘 안 마시고 먼저 권하지도 않는 편인데. 윤기 씨는 첫 만남 때부터 너무 편했다.


민윤기
좋아해요. 잘은 못 하지만. 여주 씨는 술 좋아해요?

윤여주
저도 좋아는 해요. 근처에 제가 좋아하는 와인바가 있거든요. 사장님도 좋으시고요. 갈래요···?


민윤기
그래요, 좋아요.

윤여주
여기예요. 사장님이 막 꼬치꼬치 캐물으시면 그냥 대답하지 마세요ㅋㅋㅋ


민윤기
네ㅋㅋㅋ 그럴게요. 아, 잠시만요.

윤여주
네?


민윤기
들어가기 전에 하나만 물어도 돼요? 맨정신으로 말하고 싶어서.

윤여주
어··· 네. 뭔데요?


민윤기
여주 씨가 먼저 애프터 요청했잖아요. 그럼, 우리 계속 만나보는 거예요? 아, 지금 대답하기 조금 그러면 지금 대답 안 해줘도 돼요.

윤여주
그래요···!

설렜다. 맨정신으로 먼저 말해준 것도 그렇고, 그냥 상황 자체가 너무 설렜다. 진짜 마음에도 없었던 상태에서 관계를 더 이어갈 거라고는 생각을 전혀 못 했는데, 정말 사람은 만나보고 얘기를 나눠야 하는 것 같다.


민윤기
좋네요. 여주 씨를 기다리는 게 맞았어요. 진짜 나 만나줘서 정말 고마워요.

윤여주
뭐가 계속 고마워요ㅋㅋㅋ 저도 고마워요.

계속 비교가 됐다. 맨날 누구한테는 미안하다는 말밖에 못 들은 거 같은데, 이제는 고맙다는 얘기만 들으니까 비교가 안 될 수가 없었다. 긍정적인 말만 들으니 기분도 좋아졌다.

윤여주
들어가요.

문을 밀고 들어갔다. 너무 놀라서 아니, 상상도 못 했던 일이 일어나서 정말 와인바로 들어오자마자 온몸이 굳었다. 지금, 여기 한국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 내 눈앞에 있다. 그 사람은 나를 못 알아봤을 거고 나는 알아봤다. 김석진 작가님이었다.

윤여주
···잠깐만, 잠깐만 우리 다시 나가요.


민윤기
네? 왜요?

이젠 정말 괜찮은 줄 알았는데 막상 이렇게 마주하니까 내가, 내가 아닌 것만 같았다. 상상도 못 한 일을 갑자기 마주해 놀랐을뿐더러, 그게 작가님이어서 어느새 건조하게 말라 있던 내 눈에는 눈물이 금방 고였다.


민윤기
괜찮아요···?! 왜 울어요. 무슨 일 있어요?

윤여주
하··· 미안해요. 진짜 미안해요.

‘딸랑-’

그때 와인바 문이 열리고 하필 그때, 작가님이 나왔다. 너무 놀라서 윤기 씨를 내 앞에 막아 세우고 조용히 소곤거렸다.

윤여주
그냥 잠깐만···! 조용히 잠깐만 이러고 있어 줘요···.

작가님은 못 알아봤는지 그냥 걸어갔다. 굉장히 비틀거렸다. 술에 많이 취한 사람처럼. 진짜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없었다.

지금은 피하고 싶었다. 아니, 그냥 두고 싶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지금 당장이라도 가서 말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작가님도 술을 많이 마신 상태고, 지금 제일 황당한 사람은 윤기 씨일 테니까. 많이 멀어진 상태에서 이제야 윤기 씨에게 말했다.

윤여주
미안해요···.


민윤기
아는 사람이에요?

윤여주
아니,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말아요. 미안해요, 정말.


민윤기
오늘은 그냥 들어가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윤여주
저 괜찮아요.


민윤기
아니요. 안 괜찮은 거 같아요.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웃는 얼굴로 다시 만나요. 괜찮죠?

윤여주
그래도···.


민윤기
난 괜찮으니까 나 배려한다고 안 그래도 돼요. 데려다줄게요, 가요.

···

윤여주
근데 왜 무슨 일인지 안 물어봐요?


민윤기
사정이 있었겠죠. 묻고 싶지 않았어요.

윤여주
고마워요. 안 물어봐 줘서. 오늘 덕분에 너무 즐거웠어요. 여기예요.


민윤기
저도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다음에 또 봐요. 연락할게요.

윤여주
조심히 들어가요!

애써 윤기 씨에게 웃음을 보이고, 뒤돌아서서 한숨을 푹 내쉬며 집으로 갔다. 그런데 또 한 번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내 집 문 앞에 작가님이 쪼그려 앉아있었다.

윤여주
작가님!!


MEY메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