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에도 예보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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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큐레이터
큐레이터님, 윤기 형 와있대요! 가요.

윤여주
어···, 그래. 가자. 이력은 어떻게 됐어?


김태형 큐레이터
아··· 그게, 일단 다 연락은 돌려놨고요. 답장은 아직입니다.

윤여주
그래, 이력 정리해서 이따가 보내놔.


김태형 큐레이터
아, 네···!


민윤기
어, 왔어요?

윤여주
많이 기다렸어요?


민윤기
아니에요. 뭐 먹을래요?


김태형 큐레이터
어? 작가님들 연락 폭주하는데요? 저 갑자기 바빠져서 둘이 맛있게 먹어줘요, 제 몫까지. 형 미안해, 다음에 봐!

윤여주
김 큐레이터!!

설마 가겠어 했는데 진짜로 그대로 가버렸다. 그래도 좀 먹다가 가겠거니 했지만, 너무 빨리 가버려서 왠지 모를 어색함이 확 몰려왔다.


민윤기
많이 바쁜가 봐요.

윤여주
아··· 그러게요. 아, 저번에는 너무 미안했어요.


민윤기
에이- 웃는 얼굴로 다시 보기로 했잖아요. 그만 미안해해요.

윤여주
아··· 네···!

사실 김 큐레이터랑 같이 와서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김 큐레이터가 없어지고 나서부터 왠지 모를 어색함이 계속 겉돌며 사라지지 않았다.

···


민윤기
에이, 제가 사준다고 부른 건데.

윤여주
아니에요. 저번에 같이 술 못 마신 거 이거로 퉁. 괜찮죠?


민윤기
다음에는 꼭 제가 살게요. 들어가 봐요.

윤여주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밥은 내가 샀다. 아무래도 미안함 때문에 계속 걸려서 내가 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김태형 큐레이터
금방 오셨네요?

윤여주
응. 너 그냥 가는 게 어디 있냐. 어색해 죽는 줄 알았어···.


김태형 큐레이터
아직도 어색한 사이예요?

윤여주
몰라···. 좀 어색하네.


김태형 큐레이터
그··· 작가님이요. 어차피 큐레이터님도 아셔야 하는 내용이니까 그냥 빨리 말씀드릴게요.

윤여주
뭔데? 설마 벌써 거절···?


김태형 큐레이터
그건 아닌데, 김석진··· 작가님도 계세요.

윤여주
···어? 왜···.


김태형 큐레이터
괜찮겠어요?

윤여주
답장은···?


김태형 큐레이터
아직이요. 다른 작가님들은 승인하셨는데 김석진 작가님 포함 두 분만 아직 답장 없으세요.

윤여주
하··· 이럴 수가 있나? 어떻게 작가님이 여기 포함되지···?


김태형 큐레이터
생각보다 많긴 했어요. 저도 놀랐습니다···.

윤여주
승인하실지 모르겠네. 난 괜찮아. 나는 마음 다 접었으니까···. 작가님이야말로 거절하면 나한테 마음 있는 거지.


김태형 큐레이터
정말 괜찮으신 거 맞아요?

윤여주
괜찮다니까? 답장 오면 바로 나한테 보고해.


김태형 큐레이터
네.

아무도 없는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혼자 생각할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오랜만에 김석진 작가님 인별을 둘러보았다. 그때 작가님이 떠난 이후로 알림은 전부 꺼뒀는데··· 최근 게시물을 누르고는 나는 무척 황당했다.

그림을 접는다는 내용이었다. 불과 게시물 업로드 30분 전이었다.


나는 당장 디엠을 열어 다짜고짜 메시지를 치기 바빴다. 그리고 전송 버튼만 남겨둔 채 망설이고 있다. 내가 먼저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며 버럭 소리 질렀는데 내가 먼저 연락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림을 접는다는 내용을 보고 나도 그만 마음이 약해버렸다. 정말 다시는 못 볼 수도 있는 상황이 생길 거 같아서···. 메시지를 싹 지우고 결심한 듯 나는 전화를 걸어버렸다.

그렇지만, 받을 리가 없었다.

윤여주
김 큐레이터 나 잠깐 나갔다 올게.


김태형 큐레이터
어디요?

윤여주
외근.


김태형 큐레이터
예···?

나도 이제는 나의 마음을 모르겠다. 작가님이 그림을 접는 이유가 왠지 모르게 나 때문인 거 같아서.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것과 같기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자존심, 그딴 거 다 버리고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띵동-’

윤여주
작가님, 윤여주예요. 문 좀 열어줘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띠띠띠띠··· 삐빅‘

바꿨다, 비밀번호를.

윤여주
하···.


김석진
누구세요.

윤여주
어···? 작가님···.


김석진
···왜 왔어요.

윤여주
우리 얘기 좀 해요.


김석진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면서요. 이건 무슨 의미예요?

윤여주
그림 왜 접어요.


김석진
그만 돌아가요. 이제 큐레이터님이랑 전혀 상관없는 일이에요.

윤여주
나 때문이에요?


김석진
···돌아가요.

‘띠띠띠띠띠띠’

윤여주
작가님.


김석진
나 때문이에요. 큐레이터님 말고 나 때문이니까 돌아가세요. 만난 김에 말로 거절할게요. 전시 같이 못 할 거 같습니다.

윤여주
나한테 왜 그래요···?! 나 이제 작가님한테 마음 없어요. 이제 사적인 일로 귀찮게도 안 할 거예요. 큐레이터 대 작가로. 그래도 할 마음 없어요?



김석진
···진심이에요?

윤여주
나···, 만나는 사람 있어요. 오늘도 정말 큐레이터로 찾아온 거예요. 작가님이 승인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김석진
···연락드릴게요. 오늘은 그만 돌아가요.

윤여주
기다릴게요.

내가 지금까지 무슨 말을 한 건지 모르겠다. 잘한 건지 모르겠다. 집에 돌아오는 길 또 한 번 횡단보도는 어김없이 마주했고, 나는 또 울고 있다. 나 정말 작가님한테 마음 없는 게 맞는 걸까···?


MEY메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