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에도 예보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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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아요?!!

나를 잡아준 손은 꽤나 따뜻했다. 눈물을 퍼붓느라 흐릿해진 시야로 얼굴을 들어보니 예상치 못한 인물이 서 있었다.

윤여주
작가님···?

작가님은 나를 제대로 일으켜 세우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김석진
지금 나 때문에 이러는 거예요? 고작 나 때문에 다 큰 어른이 울다가 쓰러지려고 해요?

윤여주
그냥 쓰러지게 놔두지. 왜 잡았어요? 그런 말 할 거면 가요. 아까처럼 냉정하게 그냥 가시라고요.


김석진
큐레이터님이 먼저 사적인 마음 안 섞는다고 했어요. 그 조건으로 저도 전시 승인한 거고. 그때랑 말이 다르잖아요.

윤여주
그게 내 마음대로 안 되는데 어떡해요. 만나는 사람이 있어서 작가님이 계속 생각나고 거슬리는데 어떡하냐고요.


김석진
내 잘못이에요. 처음부터 술 먹고 큐레이터님 찾아가는 게 아닌데. 내 실수예요···.

윤여주
대체 언제 말해줄 거예요? 왜 찾아왔는지, 왜 거기 있었는지, 한국에 언제 돌아온 건지, 왜 3개월도 안 돼서 온 건지. 이젠 말해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김석진
술··· 마실래요?

그의 말에 나는 조금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라며 다시 냉정해질 줄 알았는데 아까보다는 차가움이 조금 식었다.

.

작가님 차에 올라탔고, 가는 내내 우리는 서로 말이 없었지만, 서로의 마음은 조금 가까워진 듯했다. 혼자만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사장님
어서오··· 왜 둘이 같이 들어와?

윤여주
오늘은 알아서 마시고 갈게요···.

사장님
어···? 그래. 저쪽으로 앉아라.

.

윤여주
이제 말해봐요. 대체 뭔지.


김석진
후···.

작가님은 도수가 높은 술을 한 잔 따르더니,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넘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말을 꺼내기 전까지 기다렸다. 작가님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김석진
나 미국 안 갔어요.

윤여주
···네? 방금 뭐라고 했어요? 미국을 안 갔다니?


김석진
들은 그대로예요. 나 미국 안 갔어요. 거짓말이라고요.

윤여주
대체 왜···? 왜 나한테 그런 거짓말을 했어요? 아니, 언제까지 속일 셈이었어요?


김석진
큐레이터님이 좋은 사람 만나기를 바랐어요. 항상 얘기했듯이. 그런데 만나는 사람 있다고 했을 때는 생각보다 괜찮지 않았어요.

윤여주
지금 그 얘기를 하는 이유가 뭐예요?

작가님은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서 복잡한 감정들이 교차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김석진
나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어요.


김석진
큐레이터님이 행복해지길 바랐고, 나를 떠나는 게, 그게 좋은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윤여주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작가님이 내 옆에 있는 게 내가 행복한 거라고. 하지만 작가님은 그런데도 날 떠났어요.

윤여주
날 그렇게 비참하게 두고. 그럼 김 큐레이터도 알고 있었던 거네요? 맞죠?


김석진
김 큐레이터님은 상관없어요. 제가 그렇게 해달라고 한 거니까요.

윤여주
그래서··· 어쩌자고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건데요? 맨정신으로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



김석진
좋아해···.

또 술을 한잔 들이켜고는 나를 저런 말로 멈춰 세웠다. 술에 의지한 채로 나한테 지금 이런 말 하는 자체가 화가 났고 짜증이 났다.

윤여주
적당히 마셔요.

나는 작가님 손에 쥐어져 있는 술잔을 빼앗으려 했지만, 너무 단단히 쥐고 있었다. 취기가 올라오는지 그의 눈은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김석진
나도 많이 힘들었어요···.

윤여주
내가 작가님보다 훨씬 힘들었거든요? 거짓말을 할 거면 제대로 하든가. 왜 나타나서는···.


김석진
미안해요···.

윤여주
그만 마시고 들어가요. 지금 이 상태로 나는 할 얘기 없어요. 마음에도 없는 얘기나 하려고 술 마시자고 한 거예요?


김석진
진심이에요, 나는.

윤여주
술 깨고 다시 얘기해요.

나는 서둘러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밤바람이 나를 맞이하며 정신을 차리게 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깊은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 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도저히 잠은 오지 않았다. 술김에 말한 작가님의 좋아한다는 말부터 시작해 예전 생각이 계속 났다.

작가님이 누군지 얼굴도 모른 채, 팬이라며 댓글 달고, 그의 작품만 오롯이 좋아하던 그때가 너무 그립다.

작가님은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나 행복하기를 바랐지만, 작가님이 바라는 나의 행복과 내가 바라는 나의 행복은 전혀 달랐다.

이 오만가지의 생각들은 내가 잠자리에 들지 못하게 하였고, 겨우 잠에 들긴 했지만, 밤새 아픔에 시달렸다. 작가님 때문에 또 아프고 말았다.

윤여주
으···.


MEY메이
아예있 잘 즐기고 계신가요? 독자님들은 여주X석진이 이어졌으면 하는 거 같더라구요? 과연. 그럴지. 😋 오늘도 재밌었다면 손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