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에도 예보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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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전화는 아침부터 계속 울려댔고, 극심한 두통으로 전화도 받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조금만 움직여도 토할 것처럼 매우 어지러웠다.

주말이라 천만다행이다. 결국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다시 눈을 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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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30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한 3시간 더 잤나 조금 나아진 거 같기도 했다. 핸드폰을 들고 시간을 보니 오후 1시 30분이었다. 핸드폰 화면에는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들이 쌓여있었다.

전부··· 작가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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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45

💬 전화를 왜 이렇게 안 받아요. 무슨 일 있어요?

오전 11:57

💬 화난 거예요? 만나요. 우리 얘기 좀 해요.

오후 12:34

💬 큐레이터님, 만나서 얘기해요. 연락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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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주

왜 이렇게 많이 보냈어···.

윤여주

📞 네, 작가님. 연락 많이 하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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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 전화를 왜 이렇게 안 받아요?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윤여주

📞 아니···, 왜 화를 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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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 아무리 화가 났어도 연락을 무시하는 건 아니잖아요.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화부터 내는 작가님이었다. 그래도 화 한 번을 안 내던 사람인데,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윤여주

📞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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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 네.

윤여주

📞 내 말을 듣기도 전에 화를 내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아직 아픔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아서인지, 버럭 화로 맞받아 들이기에는 힘이 없었다. 작가님 때문에 겨우 가라앉은 머리가 다시 지끈거릴 거 같아 급히 마무리했다.

윤여주

📞 어제부터 머리가 너무 아파서 이제 겨우 정신 차렸어요. 그래서 이제 연락한 거고요.

윤여주

📞 그리고 작가님이 버럭 화를 낼 상황은 아닌 거 같아요. 전화 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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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 잠깐만요···! 미안해요···. 몰랐어요.

📞 당연히 몰랐겠죠. 이따가 다시 전화할게요. 먼저 끊을게요.

윤여주

하···.

작가님이 많이 변했다. 술 먹고 좋아한다고 하지를 않나, 먼저 연락도 하지를 않나, 이제는 버럭 화도 낸다.

작가님을 맨정신으로 만나려면 나에게도 시간이 조금 필요할 거 같다.

약을 먹고 가만히 앉아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올 사람이 없는데 힘든 몸을 이끌고 가보니 작가님이었다.

윤여주

작가님, 여긴 왜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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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아프다면서요. 죽 사 왔어요. 밥 먹었어요?

윤여주

작가님···! 왜 그래요,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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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이웃들 다 듣겠어요. 들어가도 돼요···?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마지못해 작가님을 안으로 들였고, 작가님은 자연스럽게 주방으로 들어가 죽을 테이블에 올려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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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밥은 먹었어요?

윤여주

안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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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앉아요. 바로 사 온 거라 먹기 좋을 거예요.

윤여주

작가님. 이제 와서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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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술김에 한 말 아니고, 진심이에요.

윤여주

이기적이라고 생각은 안 해요? 내가 그렇게 좋다고 할 때는, 아니 불과 하루 전이에요. 그렇게 차갑게 하더니만,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변해요?

윤여주

작가님만 이제 와서 좋다고 하면 다예요? 불쑥 집에 와서 죽이나 사 오면 내가 좋아할 줄 알았어요?

윤여주

나는 그동안 작가님 마음 얻으려고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울었는지 작가님은 모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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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진정해요···. 아프잖아요···. 미안해요, 내가. 내 생각만 해서 미안해요.

윤여주

작가님은··· 정말 이기적이에요.

작가님은 나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잠시 침묵했다. 나는 쌓였던 감정을 한꺼번에 쏟아내서인지 숨이 가빠지고, 눈가가 뜨거워졌다.

작가님은 눈을 내리깔고, 죄책감에 찬 얼굴로 나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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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정말 미안해요. 이제 와서 이러는 것도, 그동안 내가 힘들게 했던 것도 전부 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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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내 감정에 솔직해지려는 순간조차 큐레이터님에게 상처를 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내 생각이 짧았어요···.

윤여주

나는 이미 작가님에게 상처를 많이 받아서 그 상처가 좀 치유되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나도 이제 많이 지친 상태거든요.

윤여주

나··· 진짜 많이 지쳤어요···.

말하다가 목이 메어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작가님은 내 눈물을 보고는 다가오려고 했지만, 나는 손으로 제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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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요···? 어떻게 하면 큐레이터님 마음이 좀 나아질 수 있겠어요?

윤여주

오늘은 이만 가줬으면 좋겠어요. 나 작가님 얼굴 보기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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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알겠어요. 죽 따뜻할 때 먹어요. 연락 기다릴게요···.

그렇게 작가님은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집안이 다시 고요해졌다.

나는 눈물을 닦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작가님이 떠난 자리에는 복잡한 감정만이 남아 있었다.

지금의 나에게는 조금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상태로 작가님과 마주한다고 해도 나는 계속해서 내가 속상했던 얘기만 반복할 게 뻔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야만 이 모든 혼란스러운 감정들과 비로소 마주할 수 있게 되고, 작가님의 마음마저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이틀 뒤 ]

처음으로 연차를 써봤다. 좋지 않은 몸 상태와 더불어 혼자 충분히 마음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틀이면 그래도 몸도 마음도 회복하기 충분했다.

물론, 윤기 씨한테도 솔직하게 말해서 다 정리했다. 그를 계속 만나는 것도 예의를 떠나서 또 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작가님에 대한 내 마음도 정리가 이미 끝난 상태다.

💬 작가님, 오늘 시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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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 오랜만이네요. 오늘 시간 아무 때나 괜찮아요.

윤여주

💬 그러면 이따가 7시에 바 맞은편 카페에서 잠깐 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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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 네, 좋아요. 이따 봐요.

작가님은 지금 무슨 심정일까 궁금했다. 혹여나 괜히 설레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혹시나 상처받을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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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Y메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