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에도 예보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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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주

그래서요? 그래서 나 알아봐서 어떡하라고요?

그만 작가님에게 화를 내버렸다. 장애가 나았다는 말에 놀라기보다 무턱대고 화를 내버리고 말았다. 동시에 멈추었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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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네···? 왜, 왜 울어요···.

윤여주

우리 서로 잊기로 했잖아요···. 나는 작가님하고 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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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나 큐레이터님 만나려고 열심히 치료했어요. 내가 먼저 알아보려고. 좋아할 줄 알았는데···.

윤여주

미안해요···. 나 좀 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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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연락···! 해도 돼요···?

윤여주

···하지 마세요. 매니저님한테 전했는데 못 들으셨어요? 나 알아봐도 찾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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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들었어요. 들었는데···.

윤여주

그럼 좀 가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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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좋아해···. 여전히 좋아한다고···.

작가님의 고백에 내 발이 땅에 붙어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는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했다.

윤여주

작가님··· 이제 정말 그만해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을 뱉었다. 눈물을 멈추려고 애를 썼지만, 내 감정은 이미 통제 불가능한 상태였다.

윤여주

그렇게 말해도 내 마음은 안 변해요···.

작가님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슬픔과 간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몇 초간의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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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나는··· 다시 큐레이터님을 보내줄 수 없을 것 같아요.

나는 고개를 흔들며 뒷걸음질 쳤다.

윤여주

작가님··· 우리는 다시 시작해도 또 똑같을 거예요. 더 상처받고 더 아프고··· 그러다 결국엔 더 멀어질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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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아니요.

작가님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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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이번에는 달라요. 내가 변했으니까. 나 이제 큐레이터님 단번에 알아볼 수 있고, 내가 당신을 지킬 수 있다고요.

그의 진심이 느껴지는 말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동안 내가 알던 작가님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얼마나 나를 알아보기 위해 간절히 노력했는지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겁이 났다. 예전의 나는 작가님이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것에 헤어짐을 바랐던 것이 아닌, 내가 너무나도 작가님을 힘들게 했기 때문에 내가 이 관계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윤여주

미안해요. 나 아직··· 누군가를 좋아할 준비가 안 됐어요.

윤여주

작가님이 아무리 달라졌다고 해도··· 나는 아직 그때의 나와 같아요. 더는 작가님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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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나 괜찮아요. 큐레이터님은 왜 힘들게 할 거라고만 생각해요? 왜 걱정부터 앞서냐고요. 천천히 돌아와도 되니까 나 계속 봐주면 안 돼요?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뒤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았지만, 나는 그 길로 집까지 도망치듯 걸어갔다. 문을 닫고 벽에 기대자마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내가 왜 이렇게 아픈 선택을 해야만 하는지, 왜 우리의 사랑은 늘 이렇게 엇갈리는지 모르겠다.

.

[일주일 후]

나는 여전히 그날의 일을 곱씹으며 시간을 보냈다. 작가님의 목소리와 표정, 그의 간절한 고백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이, 그는 어떤 방법으로든 나와 연락하려 애썼다. 매니저를 통해, 이메일로, 온갖 연락 수단은 다 사용해서.

그러던 어느 날, 우편함에 작가님이 보낸 편지가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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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 윤여주 큐레이터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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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큐레이터님을 다시 만난 이후로 하루도 당신 생각 없이 지낸 적이 없습니다. 큐레이터님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더 힘들게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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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이제 먼저 큐레이터님을 알아봐 인사도 먼저 하고, 평범한 커플처럼 아니, 우리 어렸을 때처럼만이라도 그렇게라도 지낼 수만 있다면 그거라도 만족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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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나 지금까지 큐레이터님 만날 생각으로 진짜 열심히 치료했어요. 이제 당신 얼굴 평생 기억하고 알아볼 수 있으니까 우리 예전의 힘들었던 시간은 잊고 다시 시작하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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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큐레이터님이 정말로 괜찮아졌을 때, 그때 다시 물어볼게요. 내가 당신 곁에 있어도 되는지. 연락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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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여전히···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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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김석진-

편지를 손에 쥔 채로 나는 한참 동안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의 진심이 고스란히 담긴 글자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두드렸다.

그를 다시 마주할 용기가 아직 생기지 않았지만, 그의 진심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다시는 나도 작가님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의 내 행동이 결코 그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씩 마음을 열어보기로 했다.

.

..

윤여주

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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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큐레이터

네, 큐레이터님.

윤여주

나랑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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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큐레이터

엇···, 혹시 제가 뭐 실수했나요?

윤여주

아니ㅋㅋㅋ 개인적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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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큐레이터

아···, 식겁했습니다. 가시죠.

.

윤여주

나··· 작가님 만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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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큐레이터

작가님이요? 무슨 작가님이요?

말없이 나는 김 큐레이터를 쳐다보았다.

김 큐레이터는 내 표정을 읽으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감을 잡은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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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큐레이터

아··· 김석진 작가님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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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큐레이터

작가님이랑 무슨 대화를 하셨길래 그렇게 또 고민 한가득이에요?

윤여주

그냥··· 나한테 여전히 좋아한다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했어. 나 생각하면서 안면인식장애 치료도 열심히 해서 다 나았대. 이제 본인이 먼저 알아봐 주고 그러고 싶대.

김 큐레이터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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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큐레이터

정말요?! 그럼··· 큐레이터님은 어떻게 하고 싶으신데요?

그 질문에 나는 쉽게 답할 수 없었다. 그동안의 내 고민과 혼란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속으로는 결심했지만, 또 막상 시작하려니 겁이 나는 건 맞다.

윤여주

모르겠어. 그냥··· 내가 또 그를 힘들게 하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

윤여주

내가 그를 다시 받아들이면, 우리 관계가 또 실패로 끝날까 봐 겁나고. 이제는 힘든 거··· 하기 싫어.

김 큐레이터는 잠시 말을 잇지 않았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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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큐레이터

왜 겁부터 먹으세요. 다시 시작하면 다를 수도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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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큐레이터

예전의 작가님은 본인이 장애를 갖다 보니까 큐레이터님이 힘든 게 싫었던 거고,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잖아요.

윤여주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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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큐레이터

큐레이터님···, 아직 작가님한테 마음 있잖아요.

윤여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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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큐레이터

상황이 어찌 됐든 큐레이터님이 마음이 있다면, 그냥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보세요. 나중부터 생각하지 마시고.

윤여주

작가님이 없는 동안··· 작가님 생각이 한 번도 안 났다면 거짓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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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큐레이터

답은 나왔네요.

윤여주

넌 왜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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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큐레이터

복잡하게 생각하면 뭐가 해결되나요? 때로는 너무 많은 생각보다 마음이 끌리는 대로 하는 게 좋을 때도 있어요. 그럼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그러고는 김 큐레이터가 미소를 지으며 나갔다. 그의 말을 곱씹으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지난 나를 되돌아보면 생각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정말 그 복잡하던 생각들 때문에 우리의 마음과는 달리 더 멀어졌던 것은 사실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기에 선택한 그동안의 결정들은 도리여 우리를 더 아프게 했다. 이제는 정말 결심한 듯 핸드폰을 들었다.

💬 작가님, 시간 괜찮아요?

보내버렸다. 하지만···, 보낸 지 30분, 1시간, 3시간, 그리고 5시간이 지나 하루가 다 끝날 때쯤에도 답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답장이 안 올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기에 또 많은 생각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너무 늦은 건지, 나를 포기한 건지···. 우리는 다시 엇갈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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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Y메이

다음 편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