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에도 예보가 있다면

~ 위에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나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하지만 여전히 답장은 오지 않았다. 답장이 없는 대화창을 바라보며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억지로 하루를 시작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작가님의 얼굴과 그의 편지가 떠나질 않았다. 그의 진심을 이제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데, 그가 떠나버린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나를 짓눌렀다.

윤여주

일단 출근하자. 그래, 일하면 괜찮아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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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생각이 많으면 그랬던 것처럼 오늘은 평소보다 일을 심하게 더 했다. 또 밥도 안 먹고 하루 종일 일에만 미쳐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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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큐레이터

큐레이터님···, 잘 안됐어요? 또 왜 그러세요···.

윤여주

빨리 퇴근해. 퇴근 시간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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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큐레이터

큐레이터님.

김 큐레이터가 열심히 타이핑만 하던 내 손을 잡아 멈추게 하였다. 그제야 이성이 돌아와 순간, 눈물이 차올랐지만 애써 참으려 입술을 꽉 물었다.

윤여주

작가님한테··· 연락했는데 하루가 지나도록 답장이 없어.

윤여주

이건··· 무슨 의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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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큐레이터

어··· 무슨 일이 있으신 거겠죠. 작가님이 답장 안 할 사람이 아니잖아요.

윤여주

아니···. 내가 너무 늦은 것 같아···. 왜 바보같이 망설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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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큐레이터

왜 자책해요. 아니에요.

윤여주

끝인 것 같아···. 얼른 가. 나도 이제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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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큐레이터

큐레이터님···.

윤여주

얼른. 조심히 가고···.

굳이 이런 나 때문에 김 큐레이터가 또 퇴근도 못 하고 있고 잡아두는 게 싫었다. 일단은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어서 먼저 나왔다.

윤여주

하···.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푹 내쉬었고, 집에 돌아오는 내내 한숨은 멈추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지쳐 눈물도 메말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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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말 아침]

나는 김 큐레이터의 강권으로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켜 공원 산책을 나섰다. 새벽에 눈이 내렸는지 눈 덮인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고, 그 덕분인지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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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큐레이터···님?

마주치고 싶을 때는 그렇게 안 보이더만, 요즘 들어 우연히 겹치는 일이 다시 생겼다. 그토록 기다려서 그런지 오늘은 나의 마음이 좀 남달랐다. 또 한 번 작가님이 먼저 나를 알아봐 주었다.

윤여주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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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오랜만이네요···. 잘 지냈어요?

‘내 연락을 씹고 이렇게 태연할 수가 있나···.’

윤여주

잘 지냈을 리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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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네···?! 무슨 일 있어요?

윤여주

진짜 몰라서 묻는 거예요?

작가님은 진짜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의 영문 모를 반응에 답답함과 억울함이 뒤섞인 채 목소리가 높아졌다.

윤여주

제가 연락했잖아요! 그런데 답장은커녕 읽지도 않은 게 누군데요!!

작가님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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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네?! 제가··· 연락을 못 봤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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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아···, 제가 얼마 전에 핸드폰을 바꿨는데 하필 타이밍이 그랬나 봐요···. 메시지가 전부 날아가서···.

윤여주

뭐라고요···?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그럼 작가님은 일부러 피한 게 아니라 몰랐던 거였다. 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추운 공기 속에 안도의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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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어··· 왜 울어요···. 내가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윤여주

나 진짜··· 작가님이 나한테 마음이 떠난 줄 알았어요···. 나 정말 힘들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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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진짜 미안해요···. 그··· 메시지로 한 말 나한테 말해줄 수 있어요?

윤여주

···좋아해요···.

메시지로 보낸 말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은 이 말을 너무 하고 싶었다. 다시는 이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밀어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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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네···?

윤여주

좋아한다고요···. 작가님을···.

그제야 작가님은 활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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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내가 먼저 물어본다고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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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나 큐레이터님 곁에 평생 있어도 될까요?

윤여주

네! 완전요!

돌고 돌아 결국 우리는 만날 사이였다. 그 지난날들의 아픔은 이제 잊고 새롭게 시작될 날들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의 따뜻한 미소와 내 대답에 망설임은 사라졌고, 공원에는 어느새 아침 햇살이 녹아들고 있었다.

윤여주

그럼 이제부터는··· 저희 둘 사이에 오해는 없기로 해요. 서로 솔직하게, 숨기지 않고요.

내 말에 작가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고, 그 순간 차가웠던 내 손끝이 그의 온기로 따뜻해졌다.

윤여주

우리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걸어가 봐요. 지금 이 순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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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좋아요. 앞으로는 큐레이터님이 미안해하는 일 없도록 내가 더 잘할게요.

윤여주

나도. 내가 더 잘할게요.

우리는 손을 맞잡은 채 천천히 공원 길을 걸었다. 하얀 눈 위에 우리의 발자국이 나란히 남았다. 그 발자국은 마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선명한 흔적 같았다.

한때는 서로의 마음을 몰라 언제나 엇갈리기 마련이었지만, 이제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가는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믿는 관계로 더 단단해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었다. 우리 사이에 쌓인 모든 아픔은 녹아내렸고, 그 자리를 따뜻한 믿음이 채웠다.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향해 이어지고 있었다.

아픔에도 예보가 있었다면, 우리는 조금 빨리 관계가 나아질 수도 있었겠지만, 그 모든 기다림과 오해도 결국 우리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서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더 단단한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었으니까.

사랑에도 예보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확신한다. 어떠한 날씨가 우리에게 닥치더라도 우리는 서로의 우산이 되어줄 수 있을 거라고.

윤여주

작가님, 저희 이렇게 걸어가면 어디로 도착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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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글쎄요. 어디든 좋아요. 당신이 곁에 있다면.

지금까지 ‘아픔에도 예보가 있다면’을 좋아해 주신 모든 독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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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Y메이

아마 이 작품을 끝으로 마무리가 될 것 같아요. 언젠가 또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부족한 저의 글을 좋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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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Y메이

그동안의 작품들은 계속 열어둘 것이니 언제나 와서 즐겨주세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