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의 고양이가 접니다

01. 고양이가 하는 짓

어제 본 달빛 때문에 내 몸이 이상하게 변한 건지,

화끈 거리는 몸은 좀 처럼 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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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림

" .....천하의 배여주가 아프다니.. "

소림이의 말이 맞다. 나도 아까전 부터 계속 끙끙 앓는 내가 그저 웃길 뿐이었다

한번도 이렇게 심하게 아픈 적이 없었는데

어제 너무 늦게 들어가서 그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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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평생 예뻐 해줄 테니까 "

그 자식 때문에

얼굴을 책상에 묻고, 두 손으로 귀를 세게 막았다

열 때문에 귀가 자꾸만 울려서

드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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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재

"야! 배여주! 너 돈 언제 갚을 거..., "

땀으로 젖은 후드를 대충 걸친 채, 문을 열고 들어 오는 내 10년지기 남사친,

오늘 따라 그가 더 귀찮아 보인다

배여주

" .....꺼져,...나 아파... "

현재 상황으로써는 그냥 모든 것들이 다 내 신경을 박박 긋는 느낌이었다

내 다리를 조금씩 건들이는 차가운 에어컨 바람 마저도 나를 화나게 만들었으니 그럴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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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재

" 아프다고? 네가? "

어떻게 저 새끼는 하루도 예뻐 보인 적이 없을까

나를 매번 귀찮게 만드는 장본인. 그 덕분에 하루가 참 빨리 지나 가지만

무튼, 너무 시끄럽다

배여주

" ...아 좀....나가라고... "

결국 눈치 빠른 소림이가 민재를 데리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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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재

"..ㅇ..어! 야! 너 내 돈 언제 갚을 건지는 얘기를, "

내 귀를 울리게 했던 시끄러운 소리들이 교실 문이 닫히는 동시에 사라졌다. 내 귀도 편안함을 되찾는 시간이었다

고요한 정적을 방해하는 내 신음 소리만 없었어도 완벽했을 텐데

배여주

" ..아흐...배는 또 왜 아픈 거야... "

아랫배를 타고 찌릿 찌릿하게 올라오는 고통에, 눈살이 저절로 구겨졌다

아주 잠시 동안 조퇴를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부모님에게 혼나는 장면을 떠올리자, 그 생각도 금방 사라졌다

욱씬

순간 갑작스럽게 조여 오는 참을 수 엾는 고통에, 눈물이 조금 눈 밖으로 흘러 나왔다

점점 눈이 풀리며 시야가 흐릿 해지자, 난 다시 한번 이를 악 물고 버텨 내려고 노력 했다

뜨거운 눈물이 내 눈을 말끔하게 다 덮었을 때, 내 이름이 메아리 처럼 들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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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여주, "

번뜩

덕분에 놓고 있었던 정신줄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

붉어진 눈을 살며시 뜨자,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지민 선배였다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는데

후회와 조금의 억울함이 내 마음속을 헤집어 놨다

배여주

" ...선...,배.... 어떻, 게..여기 오셨어.요..? "

입술을 너무 세게 물었는지, 비릿한 피 맛이 내 입 안, 곳곳에서 느껴졌다

복잡한 내 마음과는 달리, 평혼한 표정으로 그저 내 피부에 선명하게 남은 눈물 자국과 배를 부여 잡은 내 손만 부담스러울 정도로 빤히 쳐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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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일로 와 "

유혹적인 말투로 내게 그의 품을 내주었다

단순한 말이 아닌, 마치 '올 테면 와 봐라', 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내가 그것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냥 너무 아팠던 나머지,

폭-

살며시 그의 품에 안겼다

미친 짓이었다

어제 처음 말을 섞은 사람이랑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인지

그러나, 지금 만큼은 선배에게 의지하고 싶었다

어차피 내 부모님도 이제 나를 못 도와 주니까

차가울 것만 같았던 그의 품은 오히려 내 자신 보다 더 따뜻했다

남자와 스킨쉽 하는 것을 싫어하고, 또 많이 안 해본 나였기애, 당연히 떨려 오는 마음에 재대로 안기지도 못 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어야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난 이미 길드려진 길고양이나 마찬가지였다

즉, 지금의 나는, 영락 없는 그의 애완 동물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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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여주야 "

배여주

"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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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이렇게 안겨 있으니까 더 고양이 같아 "

배여주

" 무..슨 뜻이에요? "

픽-

박지민 image

박지민

" 아니야. 아무 것도 "

저벅, 저벅

공허함과 어색함이 뒤섞인 분위기 속에서는 고작 돌맹이 건드리는 소리 밖엔 나질 않았다

뜨거워진 내 몸을 한번 잡아 보더니, 조퇴를 하라며 내 허락은 받지도 않고 조퇴증을 끊어 버린 선배였다

그러고는 벙 쩌진 내 얼굴을 한번 스윽 쳐다 보더니, 감동 했냐며 웃기 시작했다

감동 하기는 개뿔,

지금 집에 가자 마자 엄마한테 쳐맞을 상황인데

얼마나 걸었을까, 바로 앞에 선배 집이 보였다

자취 하는 구나

좋겠다

적어도 '자유'가 있는 그가 너무 부러워 보이는 순간이었다

나는 집에 가면 또 혼날 텐데

가방 끈을 만지작 거리며, 땅 꺼져라, 한숨을 푹 쉬자, 도어락 키를 누르던 그의 고개가 돌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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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집에 안 가? "

'집' 이라는 말에 몸이 저절로 반응 했다

물론 내 표정, 행동, 말투, 하나 하나 다

배여주

"...아...아뇨! 지금 갈 거에요...!! "

배여주

"..아..파서 그런 거에요!....가기가 좀..그래서....하하... "

그러자 선배가 나를 지긋히 쳐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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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우리 집에 있다 갈래? "

생각치도 못한 제안에,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 했다

배여주

" ... 미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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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아니. 멀쩡한데 "

한참 동안 그의 집 문 앞에서 서성 거렸다

역시. 그냥 집에 가는 게 좋겠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시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엄 마

딱 그 두 글자가 써있었다

이미 늦은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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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뭐해. 아프다며 "

마른침이 입술을 거의 촉촉하게 적셨다

배여주

" ......저....선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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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응? "

배여주

" 괜찮으시다면.. 저..조금만 있다 갈게요.... "

배여주

" 아..주 조금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