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의 고양이가 접니다

05. 내 순정은 끝났다 2

툭!

힘이 잔뜩 들어간 몸으로 내 볼에 차갑게 닿아 버린 그의 손을 뿌리쳤다.

배여주

" 적당히 좀 하세요, 선배 "

배여주

" 참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

이제 더 이상 붉어진 눈시울도 보여주기가 싫어졌다. 선배에게서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도망 뿐이라는 것을 알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미 너덜 너덜 해질때로 약해진 무릎을 또 한번 딱딱한 바닥에 닿게 할 수 없으니.

거칠게 날 잡는 그를 할 수 있는 만큼 밀어 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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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뭘 그만 해 "

움찔.

내 귓가를 간지럽히는 특유의 음성에, 내 얼굴을 무의식 적으로 다시 붉어졌다.

시X.

배여주

"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요. 전 더 이상 그 쪽의 사랑스러운 냥이가 아니 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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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누구 마음대로 "

그가 고개를 약간 틀며 말했다.

배여주

" ...제 마음대로 할 거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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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안 되는데 "

배여주

" 아뇨. 돼요, 제가 된다고 하면 되는 거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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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그건 내가 용납 못 해 "

배여주

" 아니. 그런 게 아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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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말을 못 알아 듣는 건가 "

다시 한번 그와 나의 거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배여주

" ...그만 하라고요. 진짜 그만 하라고. "

선배의 긴 옷자락을 잡고 늘어졌다. 작고 어린 양처럼.

결국 강했던 나의 모습을 뒤에 떨군 것이었다.

배여주

" 지쳐요. 선배 때문에 학교도 가기 싫어지고. 선배 때문에 그냥 하루 하루가 지옥이나 다름 없어요. 상처 줄 수도 있는 말인 거 잘 아는데, "

신호흡을 한번 크게 쉬어준 채,

배여주

" 전 선, 배가. 너무 싫어, 요. 진짜. 너무, 싫. 어 "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버벅 거리며 나 혼자 지껄렸다.

차라리 차갑게라도 변해, 그가 나를 증오하게 만드는 것이 훨씬 효율 적이라는 생각들이 지금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배여주

" ..그럼 저 가보겠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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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가지 말고 여기 있어 "

욕망으로 가득찬 그의 타락한 눈동자가 눈물에 젖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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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왜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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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또 나만 애타게 하려는 거면 그만 해 "

나만 괴롭다고 생각한게.

뚝.

더럽혀진 그의 눈에서 눈물이 한방울 떨어지는 순간

다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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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나도 괴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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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괴로워 배여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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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다 네 때문이야 "

툭. 힘 없는 손이 다시 한번 나를 잡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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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그러니까 책임 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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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한번 건들었으면 끝까지 책임을 지라고 "

눈물이 나오는 동시에, 새까맣던 그의 눈동자가 다시 맑아졌다.

곱게 하얀 깃털로 치장 된, 맑고 순수한 천사가 악마를 만나 타락한 천사로 변했다면.

매혹 적인 눈동자에, 이미 타락해 버린 악마는 천사를 만나. 예전의 깨끗하고 맑았던 영혼으로 돌아 갔다.

이게 우리의 관계이자, 약속이었다.

-

알파벳..

영어 책 코너를 계속 돌며, 알파벳들을 하나 하나 읽으며 책을 찾고 있었다.

배여주

" ..F...j......아..찾았다. "

알파벳을 순서대로 차근 차근 확인하자, 금장 내가 최근에 즐겨 보던 작가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이거 되게 재밌었는데.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책 2권을 집어 빌렸다.

띡.

띡.

치지직.

중딩 1

" 야, 야! 너 어디가! 아직 공부 안 끝났어 ! "

중딩 2

" 아. 안 돼! 나 나인틴 보러 가야 한단 말이야! 어제 이미 마지막 화 나왔었, "

툭!

어느 두 고딩이 시끄럽게 떠들며 뛰어가다, 그만 나와 부딪혔다.

덕분에 힘들게 쌓아놨던 책들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중딩 1

" ..아....죄..죄송해요.. ㅇ..야..! 빨리 사과 해! "

중딩 2

" ..내가 왜! 네가 나 쳤잖아.;; "

내 앞에서 우물쭈물 뻘쭘하게 서 있기만 하다가, 내가 아무말 없이 묵묵히 책을 다시 정리하는 것을 보고, 조용히 그 자리를 빠져 나갔다.

아무말 없다고 사과도 안 하고 가냐 중2병 새끼들아.

마음속으로 그들을 곱씹으며 터져 나오려는 분노를 꾹꾹 쓸어 담았다

책들이 떨어지며, 빨개진 손으로 열심히 줍고 있었을까.

" 여기요 "

어딘가 많이 들어본 목소리가 내 시선을 빼았아 갔다.

그저 단순히 익숙한 게 아니라.

쎄한 느낌이 맴도는 그런 음성이었다.

이권빈

" 대답 안 해? "

" 울어 봐. 걸레X아 "

똑같은 음성이 내 머릿속에 곂쳐졌다.

소름 돋는 목소리.

다시는 듣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가 다시 흘러 들어왔다.

배여주

" ..너...너가 어떻게.... "

분명히 기억 난다.

너의 부모님에게서 온 짧은 이별 통보.

- 우리 아들. 사고로 죽었어.

난 지금까지 네가 죽은 줄만 알았는데.

어째서 지금 내 앞에 다시 나타난 걸까.

이권빈

" 만나서 반갑지 꽃뱀아? 나도 너무 좋다 "

덜덜. 마치 얼음 위를 맨발로 걷고 있는 것처럼 창백해진 얼굴로 몸을 미친 듯이 떨었다.

" 울어 보라고 시X!! "

좀 처럼 사라지지가 않는 기억의 울림에, 두 귀를 피가 안 통할 정도로 세게 막았다.

이권빈

" 얘기 좀 하자. 우리 그래도 서로 사랑하던 사이였잖아. 안 그래? 설마 그 사이에 마음이 식은 건 아니지? "

나를 끊임 없이 괴롭혀 왔어도. 밀어낼 수 없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그를 정말 미친 듯이 좋아했었기 때문이다. 사랑에 눈이 멀어. 나를 향해 오는 독화살들을 의식하지 못 한 채, 오직 그를 위해 달렸다.

배여주

" ..나 바빠. 나중에 전화 해. "

이권빈

" 전화번호 안 줄 거잖아. 그냥 잠깐이면 된다니까 "

배여주

" ..싫다고. "

이권빈

" 아니. 그냥 잠깐이면, "

배여주

" 싫다고 개새끼야! "

놀란 듯한 표정도 잠시.

유유히 다시 그전의 표정을 되찾는 그에 몸이 흠칫 떨렸다.

이권빈

" 시X. "

그의 커다란 손이 내 턱을 잡아 세웠다.

숨이 턱턱 막히고, 조금씩 느껴지는 고통에 몸 부림 치기 시작했다.

으읍!

자꾸만 나를 도서관 코너 쪽으로 점점 몰아 갔다.

어떡하면 좋을까.

아무리 손을 뻗어 봐도 벗어나지를 못 하겠다.

배여주

" 으윽. "

내 볼을 조금 세게 치더니, 머리카락을 한번 쓸어 넘겼다.

이권빈

" 원래 개는 말 잘 들을 때까지 맞는 거야 "

비릿한 조소와 함께 그의 붉은 손이 내 뺨을 향해 높혀졌다.

곧 있으면 느껴질 통증에 겁을 먹어 두 주먹을 세게 쥐고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휘익.

바람 소리가 들려 오며, 가까워지는 그의 손이 눈을 감았는데도 생생하게 보였다. 아. 진짜 어떡하지.

벌써 아픈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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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고양아 "

번뜩.

깜깜했던 시야가 밝아지며, 눈이 떠졌다.

나를 향해 움직이던 이권빈의 팔도 서서히 아래로 다시 네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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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거기서 뭐해. 일로 와 "

어느 정도 싸늘해진 눈빛으로 나와 이권빈을 한번씩 쳐다 봤다.

푸흐.

곧 이어 이권빈은 나의 어깨를 잡더니 배를 잡으며 웃기 시작했다.

이권빈

" 내가 없는 동안 그새 새로운 이름이 생긴 거야? 저 새끼가 네 주인이고? ㅋㅋㅋㅋ 고양이가 뭐야 고양이가. 걸레짓을 아직도 하고 다니는 줄은 몰랐다ㅋㅋㅋ "

핏줄이 보일 정도로 내 손에 힘이 들어 갔다. 고양이라니. 왜 하필 이 새끼 앞에서 그런 말을.

스윽. 날 향해 의미 있어 보이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뭐지. 뭘 얘기하는 거야.

나와 이권빈을 갈라 놓듯이 자기가 중간에 가볍게 들어 와 서 있었다. 계속해서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 듯한 눈빛에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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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아저씨 "

목이 쉰 듯한 목소리가 선배의 입에서 흘러 나올 때. 내 머릿속에 무언가가 확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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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나랑 어디 좀 가자. "

손을 내 쪽으로 흔들며, 인사를 하는 선배에 내 심장이 조금씩 뛰었다.

" 얼른 가 "

손으로 귀엽고 조그만한 동그라미를 보여준 채, 날 도와준 것이 뿌듯한지 살짝 웃어 보이는 그가.

우리의 만남과 순정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고. 끝나지 않았음을 뼈저리게 증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