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의 고양이가 접니다
09. 꼬임 1


어쩌지.

어찌할까.

아니, 어찌하면 좋을까.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저절로 손톱을 물어 뜯게 되었다.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앞당겨진 수능 날짜에, 좀 여유를 가지려던 내 마음도 다시 일에 나섰고,

할 수 없이 이번주 토요일 스케줄에 잡혀 있던 선배와의 데이트를 포기 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양심은 조금이라도 있기에,

차마 안 된다는 문자를 보낼 수도, 보낼 용기도 없어지게 되어 나를 지속 적으로 괴롭혔다

어차피 집에 가도 반겨줄 사람은 없었고, 수능 공부도 그득 그득 쌓여있을 것 같아,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 보기 위해 근처 편의점에 들려 비타음료를 사, 바로 앞에 있던 벤치에 앉아 속을 풀었다.

딸깍.

단단하게 잠궈져 있는 뚜껑을 딴 후, 목구멍에 탈탈탈 털어 넣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 재빠른 속도로 나타났다.

푸흐.

너무 허접하게 나를 놀래 키려고 했었던지라 조금의 웃음이 입 밖으로 흘러 나왔다.


이소림
" ..에..뭐야 놀라지는 않고. "

결국엔 포기를 한 건지, 뒤에 숨어 있던 소림이가 추욱 늘어지며 나왔다.

배여주
" 수능 준비는. "


이소림
" ..하, 하고 있지- "

거짓말 하다 걸린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 봤다. 말 더듬기는.

배여주
"..... "

웬지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 마음이 조금씩 출렁 거렸다. 출렁임이라고 표현 하는 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금 뭉클하게 느껴졌다고 해야하나.

내가 잠시동안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올려다 보자, 갑자기 표정을 구겼다.


이소림
" ..소름 돋게 왜 안 하던 짓을 해.. "


이소림
" 무슨 일 있어? "

그녀의 물음에 조금 감동했지만,

그냥 웃으며 넘어갔다.

배여주
" 뭐래..그런 거 없어 "

고민 거리 만들지 말자, 배여주.

배여주
" 수능 준비 땜에 잠을 잘 못 잤더니. "

그냥 하던대로 하자.

티는 안 내려고 했다. 원래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어서.

하지만 감추려고 해도 어두운 내 얼굴이 다 보이는지, 손을 저으며 부정하는 나를 소림이가 막아 세웠다.


이소림
" 왜- "


이소림
" 연애 때문에 집중을 못 하겠어? "

그것도 아주 콕 집어서 말이다.

배여주
" 여, 연애는 무슨-..! "

연애라는 말에 조금, 아니 아주 많이 찔렸다. 이렇게 되면 곤란한데.

연애라.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는, 한창 순정 만화에 빠졌던 때라 아주 좋고 설렜지만,

수능을 앞둔 고3, 즉 지금의 나에게는 그저 밝고 지나가야 하는 걸림돌이 되어 버렸다.

겉으로는 소림이가 있었기 때문에 애써 태연한 척 굴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또 다른 내가 머리카락을 잡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소림
" 수능 때문에 자꾸 약속 밀리지. "


이소림
" 얼굴 못 보는데 연락도 자주 못 하지. "


이소림
" 어쩌려고 그래 "


이소림
" 나중에 밥이라도 크게 쏠 거야? "

그녀의 돌직구 같은 말에 달싹 거리던 입도 잠잠해졌다.

입술을 삐죽 내민 채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자, 소림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까지 기운 빠지게 하는 한숨이었다.


이소림
" 이렇게 서먹한데, "


이소림
" 수능 볼 때까지, 그러니까 21일을 어떻게 버텨. "


이소림
" 너는 주위 눈치 보느라 지쳐서 쓰러질 거고, 박지민 선배는 너 기다리다 짜증나서 현기증 날 거고 "


이소림
" 두쪽 다 이득 될 거 없잖아 "

가끔은,


이소림
" 그러니까, 이럴 때는 그냥 이별을, "

좀 이기적이어도 괜찮다.

그러나 문제는.

배여주
" 닥쳐. "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여주
" 너도 지금 땅이랑 이별하고 싶어? "

배여주
"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

내가 찍, 소리를 지르자, 커다랗게 변한 눈동자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 보더니, 입을 땠다


이소림
" ..내가 너 이럴 줄 알았다..."


이소림
" 끝까지 포기 못 하지-. 그러다 둘다 마음만 넘쳐날 때까지 주고 끝난다니까.. 이 언니 말 좀 들어라. "

이해한다. 지금 소림이가 나에게 해주는 말들은 모두 옳다. 내가 어떻게든 이별을 피하고 싶어서 만들어낸 변명들 보다 훨씬 일리가 있는 조언이자 가르침이었다.

그러나 수능 하나 때문에 처참히 끈을 놓아 버리기가 싫어서 쉽게 보내지 못 하고 계속 징징 대는 것이었다.

배여주
" .....후우....머리는 아픈데..공부는 해야 되고,... "

배여주
" ..시간도 폭풍 지나가 듯 쓸려 나가는데,...연애는 해야겠고.. "

머리를 쥐어 짜며 뜨거워진 몸을 뒤로 기대었다.


이소림
" 잘 생각해...괜히 또 나중에 슬퍼져서 치킨 사달라고 조르지 말고....몸 관리 잘 하고.. "

알아 나도.

나도 안다고.

눈을 살며시 감아보자,

처음과는 멀어진 하얗고 푸르스름한 줄이 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보였고,

멀리서만 보던 빨간색 줄이 나에개 더 가까히 다가와 인사했다.

지이잉-

지잉

- 여주야.

-

-

불과 몇일 전에 그가 내게 보내던 문자들이 눈에 안 들어왔던 것은 기분 탓이었을까

" 오. 그래서,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나

" 야 시X 그딴 걸 왜 물어봐

불과 몇일전에 친구들끼리 나에게 다가와 물어보던 질문들이 기억 안 났던 것은 기분 탓이었을까.

배여주
" ...미치겠다 진짜... "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벽에 박고 마른 세수를 해봐도 좀처럼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빨간색 줄은 사라지지 않았다.

짹각, 짹각.


이소림
" 야..12시 넘었어..얼른 일어나..집 안 갈 거야? "

고작 수능 보기 20일 전이었다.

'내 욕심 때문에 줄을 잡았지만, 실수로 꼬이게 만들어 이 지경까지 온 것에 대한 책임은 아무래도 내가 받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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