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줄게, 나쁘게.
Episode 175 ˚ 뜻밖의 의도된 만남




정여주
누구세요?

여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열리는 문, 그리고 그 뒤로 나타나는 검정 가죽 재킷을 입은 익숙한 모습의 사람.




박지민
아이고, 서우 아파서 어떡해요.


어, 지민 씨? 여주가 놀란 듯이 태형에게서 자연스레 멀어지며 지민에게로 다가갔다. 어떻게 알고…


박지민
소문이 생각보다 빠르더라고요.


박지민
정형외과 김태형 아들 병원에 입원한 거 우리 병원 의사들 다 알던데?

난 내 와이프 병실에 있다가, 소식 듣고 내려와 봤어요. 지민의 말에, 여주가 물었다. 그럼 오늘 출근은 안 하신 거예요?


박지민
네, 오늘은 외래 쉬는 날.


박지민
김태형은 오후에 외래 있지 않나?


김태형
어, 가야지.


정여주
그럼 오늘은 아내분이랑 같이 계시는 거예요?


박지민
아뇨, 저도 그러고 싶은데 내일 민규 어린이집 보내야 해서….


박지민
좀 더 있다가 가려고요.


민규 보고 자주 오라 해야 겠네, 서우랑 같이 놀 수 있겠다. 지민이가 말하자, 태형이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김태형
둘이 지금 냉전 상태 아닌가?


박지민
? 웬 냉전.


김태형
말했잖아, 내가. 박민규 김서우랑 여자애 하나, 셋이서 삼각관계였다가 결국에 민규가 사귄다고.


박지민
아… 그래서 둘이 같이 안 놀아?


김태형
그럴 걸. 김서우 요즘 민규 얘기 안 하던데.

피식, 잠든 서우 보고 동시에 웃은 세 사람. 지민이 입을 먼저 열었다. 궁금하긴 하다, 두 남자의 마음을 동시에 받는 여자애가 대체 누굴지.


정여주
그러게요- 얼마나 많은 매력을 가진 여자아이길래-ㅎ

나란히 한 베개를 베고 누운 서림이와 서우가 덮고 있던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올려 덮어준 여주가 말했다.


김태형
몰래 어린이집 한 번 가야겠네.


박지민
날 잡자. 내 아들이 누구랑 그렇게 예쁜 연애를 하는지 봐야겠다.


김태형
다음 주 어때, 다음 주 상담 기간이라 들었는데.


박지민
좋지. 너 외래 언제 비어.


김태형
잠깐 확인 좀.

(그 누구보다 진심인 아버님 둘.)


정여주
아ㅎ 진짜 똑같아 둘 다.


정여주
여보, 여보는 얼른 가. 시간 다 됐어.

그러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아쉬운 표정을 지은 태형이는 서우 서림이에게로 다가가 한 번씩 이마에 뽀뽀해 줬다.


정여주
다녀와, 이따 퇴근하고 같이 밥 먹자.


김태형
먹고 싶은 거 없어? 시켜둘게 미리.


정여주
그때 가서 생각하는 걸로 하고-

문을 향해 태형이 등 떠민 여주는 얼른 다녀오라며 손짓했다. 서우 병원비 내려면 열심히 일하셔야죠, 남편님-


김태형
알죠, 알지….



김태형
보고 싶을 거야, 자기야.

응, 나도. 형식적인 대답으로 대화를 매듭지으려 애쓴 여주. 결국에 태형이를 내보내고…



정여주
지민 씨-


박지민
네, 여주 씨.


정여주
잠깐… 밖으로…….

태형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할 말이 있다는 듯이 지민이를 밖으로 안내하는 여주였다.




정여주
다름이 아니라…


정여주
제가 오늘 중으로 지수 씨 보러 갈까 봐요.

제 와이프의 이름이 나올 줄 예상치 못했다는 듯, 두 눈이 미세한 차이로 커진 지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여주
오늘 지민 씨 가면, 지수 씨 혼자 남으실 테니까….


정여주
잠깐이나마 가서 인사드리고 싶은데… 오지랖인가 싶어서.


박지민
지수가 많이 놀라겠네요-ㅎ


정여주
…아무래도 그렇겠죠?


정여주
기다리면 되는 거 아는ㄷ……



박지민
많이 좋아할 거예요, 지수.

제가 말했잖아요, 지수도 여주 씨 보고 싶어 한다고. 두 사람 빨리 만나서 친해지면 저야 좋죠.


···



그렇게 지민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두 사람. 병실 안으로 들어온 여주는 깨어 있는 서림이를 보고 식사하는 시간이구나 했다.

서림이가 울음을 터뜨리기 전에, 재빠른 손놀림으로 미적지근한 온도에 맞춰 분유를 타서 제 품에 안아 꼭지를 물렸다.


정여주
서림아- 오빠 자니까 울면 안 돼요- 알았지?


정여주
아이 잘 먹네-

큰 눈으로 멀뚱멀뚱 여주 쳐다보고만 있는 서림이에, 여주가 절로 웃음을 지었다. 그러다 서우 수액 잔여량 한 번 확인해 주고.


정여주
쉬이- 쉬이-

그때 다시 들려오는 노크 소리, 그리고 열리는 문에 여주가 고개를 돌렸다.

"밥 나왔어요-"


정여주
아, 점심이요?

서우 깨워야 겠다 다짐한 여주가 서림이 안아들고 분유 먹이고 있는 모습을 본 아주머니. 친절하게 직접 병상 탁자까지 펴고 그 위에 밥 놓아주셨다.


정여주
…아, 감사합니다…!

"고생이 많네, 엄마가~"

"쉬엄쉬엄 자기 몸 살피면서 아기들 돌봐요~"

눈가에 주름까지 지으며 웃음을 지은 아주머니를 향해 순간 뭉클한 감정을 억누른 채 환히 웃은 여주가 대답했다. 감사해요-


···



해열제를 복용한 탓인지, 여주가 깨워서 점심을 먹은 서우는 머지않아 곧바로 다시 잠들었다.

그런 서우 옆에서 장난치던 서림이도 잠든 오빠 보고 졸렸던 모양인지 덩달아 꿈나라 여행 중.

이때를 틈타 병실 불까지 끄고 커튼까지 쳐준 여주는 조심스레 나와서 어디론가로 향했다.


병원 안에 있던 카페로 가, 따뜻한 유자차 하나랑 따뜻한 녹차 라테 하나 산 여주는 야무지게 일회용 캐리어에 끼워 넣고 엘리베이터로 걸음을 옮겼고.

올라가는 버튼을 누르고 올 때까지 기다리는가 싶더니, 타자마자 서우와 서림이가 있는 5층이 아닌 8층을 누르는 여주.

어째 심히 긴장한 듯했다. 계속해서 제 팔목을 만지작거리는 걸 보면.


그리고 마침내 8층에서 내린 여주. 808호를 곱씹더니 주변을 살피며 병실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내 복도 끝에 다다랐을 때, 병실 문틈 새로 살짝 보이는 제 나이와 비슷해 보이는 여성의 실루엣에 여주가 괜히 뒷걸음질 쳤다.


정여주
…뭐라고, 인사 드려야 하지.


떨리는 심장 부여잡고, 심호흡 한 여주는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다 결국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그리고 여주를 향해 돌아보는 환자복 차림의 여성, 여주는 그녀에게 인사했다.



정여주
안녕하세요, 지수 씨-




++ 드디어 두 여자의 만남... 정말 오래전부터 깔아왔던 떡밥이었죠 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