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뱀파이어와 동거중

14. 작은 날개짓(1)

문이 열리고 비에 푸욱 젖은 여주 뒤로 얼굴이 붉게 물든 정국이가 들어왔다. 정국이는 잠시 머리에서 비가 뚝뚝 떨어지는 상태로 여주를 바라보았다가 신발을 벗고 다급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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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왔어?

윤기의 말을 무시한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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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주

뭐야, 술드시고 있었어요? 태형씨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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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너도 먹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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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마침 얘가 골아떨어져서 재미가 없던 참이거든요. 어때 한잔 할래?

윤기의 말에 여주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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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주

반말 하거나 존댓말하거나 둘중에 하나만 하세요. 사실 존댓말 불편하죠?

여주의 말을 들은 윤기는 여주의 제안을 냉큼 받아들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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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그럼 감사히 반말을 쓰지. 몇천년을 살았더니 존댓말보다는 반말이 더 편해서

윤기는 여주에게 잔을 건냈고 여주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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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주

비에 홀딱 젖어버려서요. 씻고 같이 한잔해도 될까요?

여주의 말을 들은 윤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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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기다리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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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주

네네~

여주는 윤기에게 대답을 하고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여주가 계단을 다 올라가자 갑자기 태형이가 고개를 벌떡 들고 윤기를 반쯤 풀린 눈을 하고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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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여듀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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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아... 나 여주찌 보후시픈데...

윤기는 그런 태형이를 바라보다가 태형이의 머리를 쾅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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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그냥 자

정국이는 문을 닫았다. 혹시라도 문을 쾅 닫는 순간 그 소리를 듣고 예를들어 장난을 치고 싶은 윤기라던가 누군가를 놀리고 싶은 윤기라던가 그냥 윤기가 문을 부수고 들어올 것만 같아서 아주 살살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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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후.....

그리고 문을 타고 주르륵 주저앉았다. 정국이는 자신의 심장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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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기분이상해.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정국이는 이 감정의 이름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사랑. 그래 사랑이라는 감정이겠지. 자신이 그동안 갈구했던 감정이기에 그 감정의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그 감정을 받고싶은거였지 주고싶지는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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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미쳤나봐 진짜...

자신의 얼굴을 무릎에 파 묻고 있던 정국이가 고개를 들은건 순전히 재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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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엣취...

방안 가득 정국이의 재채기 소리가 매웠다가 사라지고 정국이는 코를 훌쩍이며 샤워를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지민이는 멍하니 비를 바라만 보다가 손을 뻗어 자신의 손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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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그때도 비가 왔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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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심술궂은 도깨비가 내린 그 비가.

지민이가 멍하니 비를 바라보고 있을때 석진이와 호석이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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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민윤기 짓이지?

지민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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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어, 술이 땡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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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또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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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그 형은 막걸리 좋아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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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나 먼저 들어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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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먼저 들어가요 형

호석이는 그렇게 말하더니 지민이가 서있는 곳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민이가 호석이를 바라보다가 자신도 앉았고 그런 둘의 모습을 보던 석진이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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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또 지훈이 생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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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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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비만 오면 생각에 잠기는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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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기억이 돌아온거야?

호석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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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다는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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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내가 죽기전 내 옆에서 기도하던 너가 생각이 나서

호석이는 그러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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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믿지도 않는 신에게 동생이 살아만 있어달라거 비는 너가 선명하게 기억이 나더라

지민이는 씁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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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다신 그런건 안믿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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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너가 인간을 싫어하는 이유도 그거지?

지민이는 아무말 없이 미소만 지었지만 그걸로 충분히 호석이에게 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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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들어가. 감기걸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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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어? 난 괜찮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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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비에 홀딱 다 젖어놓고선 괜찮대

호석이는 머쓱하게 웃다가 자리에 일어났다. 그리고 지민이의 어깨를 톡톡 두들겨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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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너도 추워지면 빨리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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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물론 이미 추운 상태였지만 지민이는 아닌척 답을 했다.

어느새 씻고 나온 여주는 윤기 앞자리에 자리를 잡고 술을 한잔 두잔 마시고 있었고 그런 여주 옆에는 석진이가 앉아 윤기의 잔에 막걸리를 따라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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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뭐야

석진이는 방 안으로 들어오는 호석이에게 시선이 옮겨졌고 윤기의 잔은 넘치기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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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주

어어?

윤기는 빠르게 잔에 입을 대고 술이 넘치지 않게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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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지민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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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더 있다가 들어온대요

여주는 창밖에 있던 지민이를 보다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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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주

감기걸릴텐데...

뭐, 자신과는 상관 없는 일이겠지라고 생각하며 잔에 남은 막걸리를 모두 마셨다. 그리고 자리에 살짝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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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다 드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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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주

바람쐬러 갈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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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주

술기운이 훅 올라오는 기분인지라

석진이는 그런 여주에게 담요를 건내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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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추울거에요

여주는 거절하기 뭐해서 석진이가 건낸 담요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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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주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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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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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지민이는 밖으로 나온 여주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휙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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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주

.....아침엔 죄송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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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지민이는 여전히 아무말도 없었다. 그런 지민이를 보고 여주는 머쓱하게 웃다가 그가 살짝 떠는 것을 보고 담요를 덮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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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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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뭐하는 짓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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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주

추울까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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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주

인간 냄새라도 나요?

지민이는 여주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휙 돌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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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그럴리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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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주

근데 아침엔 왜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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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너가 누가봐도 인간이길래

여주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지민이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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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주

그럼 이거 받아줄래요?

지민이는 추웠는지 여주가 건낸 담요를 받았고 자신의 어깨에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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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주

왜 인간을 싫어하는지 들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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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내 모든걸 뺏어갔는데 내가 그들을 좋아할 수 있을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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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주

그쵸... 모든걸 뺏어간 사람을 미워할 수 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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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주

죄송해요. 저 이제 돌아갈 집도 없고 가족도 없어요. 진짜 집이 구해지는 대로 나갈게요... 그때까지만 실레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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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딱 50년만이야. 더도 덜도 안돼

지민이의 말에 여주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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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주

50년이면 전 70대 인걸요?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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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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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주

그 전에 나가도록 노력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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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됐어. 알아서 있어

여주는 머뭇거리다가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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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주

저는요... 비오는 날이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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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주

제 모든걸 뺏어간 날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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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사고라도 당했나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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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주

...뺑소니요

여주는 그때 일이 생각이 났는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지민이는 그런 여주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알고있던 탐욕스러운 인간들과는 달랐다. 아주 많이. 오히려 상처받은 자신의 모습이 겹쳐보이기까지 했다.

그날 여주의 술에 취해한 그 말로인해 지민이가 여주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