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이 아니야!
사라진 시간


그날 오후, 설레는 마음으로 조기 퇴근한 교은은 거울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하교은
“우지 씨랑 데이트라니... 헤헤.”

퇴근 후 예쁘게 꾸밀 생각에 한껏 들떠 걷고 있었던 교은.

그러다 무심코 지나던 평소의 골목길, 그 길목에서 갑자기 등 뒤에서 무언가가 강하게 후두부를 가격했다.

쾅-.

하교은
"...?!"

순간 눈앞이 빙글 돌았고, 손에 들고 있던 핸드백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
"하, 진짜 주제도 모르고...."

하교은
'낯 익은 목소린데....'

그렇게 모든 시야가 어둠으로 감겼다.

***

하교은
"아으..."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교은은 욱신거리는 머리와 함께 흐릿한 의식 속에서 눈을 떴다.

쇠창살 같은 냄새, 축축한 바닥, 한기 도는 공기. 그리고—

???
“그렇게 세게 안 쳤는데, 연기 그만하는 게 어때?”

차가운 목소리. 비웃음.

익숙한 듯 섬뜩한 그 음성에 교은은 서서히 초점을 맞췄다.

하교은
"...이 주연...?

서늘한 폐창고, 눈앞엔 오랜 시간 알고 지냈던 동생이 비틀린 미소로 서 있었다.

주연
“내가 그랬지? 경고 무시하지 말라고.”

믿기지 않는 현실 속, 교은은 두려움에 입술이 바짝 마르는 걸 느꼈다.

주연
“넌 그냥 조용히 있었으면 됐어. 우지 오빠 곁엔 내가 있을 거였고, 넌 조용히 사라졌어야 됐다고.”

하교은
“너… 미쳤어.”

주연
“응~ 미쳤어. 사랑 때문에.”

미소는 점점 광기에 물들었고, 주연은 창고 구석에 두었던 휘발유통을 들어왔다.

주연
“그래도 언니라 좀 아꼈는데, 뭐 어쩔 수 없네. 이제 다 끝낼 거야.”

교은은 온몸이 묶인 채 몸부림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 순간

삐삐삐삐— 전자음이 울렸다.

주연
“뭐야?”

주연은 놀라며 소리가 난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주연
“폰 다 껐는데 무슨 소리야?!!!"

초조해진 주연은 교은의 몸을 다시 더듬어 확인하더니, 겉옷 안쪽에서 작은 휴대폰 하나를 더 꺼낸다.

커플폰. 우지가 선물했던 그 폰이었다.

화면엔 위치 어플이 실행 중이었고, 알림음은 거리의 접근을 알리고 있었다.

주연
"...씨X!!!"

주연은 발작하듯 욕설을 내뱉으며 그 휴대폰을 바닥에 내던졌다.

그러고는 분노에 차 휘발유통을 집어 들고 교은에게로 달려갔다.

주연
"죽어!!!"

그 순간

???
“멈추세요!! 경찰입니다!!”

폐창고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렸다. 수 명의 경찰이 테이저건을 겨누며 들이닥쳤다.

???
“휘발유 내려놓고 움직이지 마세요!"

주연
“안 돼—!!”

주연은 뭔가 저지르기 직전이었지만, 경찰은 재빨랐다. 휘발유통을 빼앗고 주연을 바닥에 제압했다.

???
“납치 및 상해 혐의로 현행 체포합니다. 얘기는 서에서 하시죠.”

주연
“오빠는 내 거야!! 저년이 아니라고!!”

주연은 마지막까지 울부짖었고, 끌려나가며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그제야 교은은 그 자리에 고꾸라지듯 주저앉았고, 경찰관 한 명이 다가와 그녀를 조심스레 풀어줬다.

???
“괜찮으세요? 병원부터 가시죠.”

그녀는 고개를 젓고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경찰은 일단 알겠다며 자리를 나섰다.

‘상대방이 10m 이내에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확인한 휴대폰 알림


우지(지훈)
“교은아!!!"

멀리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문이 다시 열리며 달려오는 익숙한 실루엣. 우지였다.

그는 숨도 고르지 못한 채 교은에게 달려와 온 힘을 다해 그녀를 끌어안았다.


우지(지훈)
“교은아… 괜찮아? 다친 데 없어?”

하교은
"와줘서 고마워요...."


우지(지훈)
“느낌이 이상해서 네 집 가던 길에 위치 알림이 떴어…


우지(지훈)
너, 말하고 싶었던 거지?"

하교은
“응… 믿었어요…”


우지(지훈)
“진짜… 얼마나 무서웠을까…”

우지는 입술을 깨물며 교은을 더 세게 안았다.

교은은 우지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그의 뜨거운 체온에 숨을 고르며 속삭였다.

하교은
“…이제… 괜찮아요. 지훈씨가 왔으니까."

그 순간, 어둠 속에서 오직 두 사람만이 숨 쉬는 듯한 긴 밤이 끝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