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

25

늦은 밤, 월과 태형은 동궁을 나섰다.

하루의 절반을 붙어다니는 둘이었지만 헤어지려고만 하면 아쉬워졌다.

그래도 매번 서로의 마음이 같음을 잘 알았기에 티를 내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태형의 명령에 따라 정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말인즉슨 언제든지 윤대성이 정국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월의 정체까지 알아낼수 있다는 뜻이다.

해야만 하는 일이었지만 월에겐 너무 위험한 상황이었다.

김태형

시간이 너무 늦었소. 내가 데려다 줘도...

허 월

괜찮사옵니다, 저하. 소첩이 어린애도 아니고, 궐 내인데 무엇이 위험하겠습니까??

월은 웃으며 태형의 제안을 거절했다.

사실 그녀 입장에서는 일분 일초라도 태형과 함께있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위험했다. 궐 안이라도 전혀 안전하지 않다는것은 그녀도 잘 알고있었고

가는길에 자객을 만나도 태형까지 위험해질 바에는 자신만 목숨을 위협당하는것이 백배 천배는 더 나았다.

그래서 월은 애써 웃으며 발걸음을 뗐다.

보름달이 자신의 방으로 가는 길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덕분에 월은 달을 친구삼아 길을 걷고있었다.

그 때,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소리는 점점 월에게 가까워졌다.

직감적으로 자신을 노리고 있음을 알아챈 월은 순간 몸에 소름이 끼쳤다.

몇번이고 생각해보았고, 예상했던 상황이었지만 밀려오는 공포감은 어쩔수없었다.

월이 걸음을 재촉하자 뒤따르던 사람의 발소리 또한 빨라졌다.

등뒤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월은 뛰기 시작했다.

조용하고 어두운 밤에 월의 발소리와 그뒤를 따르는 자의 걸음소리만 빠르게 울려퍼졌다.

당장이라도 소리지르고 싶었지만 목에 뭐라도 걸린것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뒤를 돌아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최대한 따돌려야된다는 생각에 갈림길이 나오자 바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갔다.

허 월

하아...하...

거친 숨을 몰아쉬며 월은 뜀박질을 멈췄다.

그리고 믿을수없다는 듯이 자신의 앞에 놓인 높은 담벼락을 쳐다보았다.

곧이어 뒤따라오는 소리가 들려오자 그녀는 아주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하나가 아니었다.

검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칼을 든 자들이 무려 다섯이었다.

월은 넘어가지 않는 침을 억지로 꿀꺽 삼켰다.

허 월

원하는것이 무엇이냐?

목소리가 떨릴줄 알았건만, 생각보다 크고 당찬 소리였다.

월의 갑작스런 물음에 자객들은 당황한듯 했지만 이내 한놈이 입을 열었다.

"그저 네년의 목을 가져오라는 명을 따를 뿐이다."

월은 등꼴이 오싹해졌다.

그래도 밀리면 안된다는 생각에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허 월

하..하하하 고작 여인의 목 하나 따려고 다섯이나 떼거지로 몰려왔느냐? 한심하기 짝이 없구나

"이..이 썅년이 지금 뚤린 입이라고!!"

허 월

원하는것이 내 목이라 하지 않았느냐. 어서 베어가거라! 더 이상의 소란은 용납하지 않겠다.

"네년의 용납 따위는 필요없다."

그 말을 끝으로 다섯개의 칼이 월을 향해 날카롭게 날아왔다.

월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 때

챙하고 칼날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칼날이 자신을 파고들줄 알았던 월은 깜짝놀라 서서히 눈을 떴다.

눈앞에는 온통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이 자신을 가로막고 서있었다.

"벽에 붙어계십시오. 등을 보이시면 방어하기 어려워집니다."

익숙한 목소리.

정국이었다.

정국은 자신의 검과 별운검을 양손에 쥐고 있었다.

그가 세자의 명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소리였다.

자객들은 갑자기 나타난 훼방꾼의 얼굴을 확인하고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 별운검.. 별운검이다"

정국의 엄청난 기세에 그들은 느슨하게 잡았던 검을 고쳐쥐었다.

서로 노려보기만 하던 그때

다섯이서 동시에 정국을 향해 달려들었다.

정국은 가볍게 날아올라 마치 춤을 추듯 파고드는 검을 피하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새에 그들과의 거리가 좁혀졌다.

전정국

...하나....

오른손에 들려있는 검이 한 놈의 복부를 정확히 관통했다.

전정국

둘.

왼손의 검은 두번째놈의 목을 베었다.

전정국

....셋

두번째 놈의 목을 베고 칼을 빼냄과 동시에 달려드는 세번째 놈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순식간에 세명이 바닥에 쓰러졌다.

목숨이 아직 붙어있는 놈은 둘뿐이었다.

그들은 바닥에 쓰러진 자들을 보며 쉽사리 다가서지 못하고 거리를 유지했다.

두 눈으로 보고서도 믿을수 없는 실력이었다.

소문으로만 들었지 직접 본적은 없었는데..

세 놈의 검 모두 그의 별운검과 닿아보는 영광도 누리지 못하고 바닥에 챙그랑하고 떨어졌다.

정국은 살짝 짜증난 듯 인상을 찡그렸다.

전정국

야.. 최선을 다하고 있는건 맞아? 좀 실망스러운데..

전정국

이러면.. 재미가 없잖아...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