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내가 널 사랑하게 해줘
26화 | 완벽함 뒤의 허당미




김태형
사랑해_

나지막한 중저음으로 속삭인 그는, 여주의 입가에 미소가 스며드는 걸 보고선 다시 한 번 가까이 다가가지.

물론 이번에는 이마가 아닌, 입술로.



"그냥 내가 널 사랑하게 해줘"_26화



두 사람이 서서히 멀어졌을 때에는_ 여주의 입술에 있던 분홍빛 립스틱이 입가 주변으로 번진 지 오래.

자국을 손가락으로 닦아준 태형은, 옅은 미소를 띤다.



김태형
···누나가 보기엔, 나 많이 변한 것 같아? 어때_?

차여주
...글쎄_

차여주
거의... 7년 전이랑 똑같은데?

차여주
키 하나 변한 것 말고는.

정말 그대로였다.

항상 내 모습이 담겨있는 너의 눈, 그리고 오똑한 코에_ 붉은 기가 도는 입술. 안길 때마다 느껴지는 체향까지.

너는 그대로였다. 날 바라보는 마음까지도.


김태형
나 키 많이 컸지?

차여주
응_ㅎ

차여주
얼마나 큰 거야?


김태형
어...


김태형
단위로 따지면 많이 크지는... 않았는데

너도 말하면서, 그 말이 웃긴지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김태형
느낌상...?ㅎ

그런 네 웃는 모습에, 나 또한 절로 웃음이 나왔지.

차여주
맞아, 결혼식장에서 너 처음 봤을 때-

차여주
···분명 얼굴은 맞는데, 키는 조금 달라진 것 같았어.

차여주
그럼 이번엔 내가 물어볼래.

차여주
나는... 많이 변한 것 같아?


김태형
···응, 많이 변했어.

예상과는 달랐던 말에, 흠칫 했다.

혹시 나를 안 좋게... 바라보는 건 아닐까 싶었거든.


김태형
많이 변한 줄 알았었어, 어제까지만 해도.


김태형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안 느껴_


김태형
누나도 7년 전이랑 같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야.

그래도 끝 말이 달달했던 지라...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몰라.

차여주
···놀랬잖아-


김태형
아, 변한 게 있긴 있지

차여주
응?


김태형
머리카락 길이.

제법 진지해보이는 그의 표정에,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차여주
아ㅎ 틀린 말은 아니지_ 그치.ㅎ


김태형
그리고...


김태형
입술 색.

차여주
땡! 틀렸어_

차여주
나 7년 전부터 똑같은 립 쓰는데?


김태형
아아이...ㅎ 찔러봤는데 틀렸네.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 너.


김태형
···쓰읍


김태형
같은 립이라고 했지?

차여주
응_


김태형
아, 근데 맛이 달랐던 것 같은데.

차여주
네가 립스틱 맛을 어떻게 알ㅇ···

잠깐.

저 발언.

상당히 위험한 발언인 것 같은데.


김태형
7년 전이랑 다른 것 같은데?

차여주
같은 거 쓴다니깐...

화끈화끈 달아오르는 내 얼굴을 뒤로 하고, 애꿎은 손으로 부채질만 해댔다.


···



김태형
누나는 앉아있어-


김태형
내가 오늘 저녁 다- 해줄게

차여주
믿어도 되는 거야?ㅎ


김태형
어허- 당연하지

너를 따라, 이 넓은 미로같은 집안을 돌고 돌아 부엌으로 온 지금.

너는 나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겠다며, 손수 허리에 앞치마까지 두른 상태다.

그런 너를 보며 웃기도 잠시,

차여주
히이- 잠깐만.

차여주
이거 뭐야...?

무언가가 잔뜩 쌓여있는 싱크대를 향해 차츰 발걸음을 옮겨보면...


김태형
ㅎ하하...그러니까, 그거는-

밀린 설거지 접시들이 가득 놓여져있다.


김태형
어음...

차여주
이거 몇 일동안 밀린 거야...?


김태형
한... 삼 일...?

3일이라 말하며, 멋쩍은 웃음을 띠는 너.

차여주
그... 요리 전에,

차여주
설거지부터 먼저 해야할 것 같은데?


김태형
···그런 거야?

뭐가 잘못된 건지 하나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그런 너를 보자, 나오는 건 헛웃음뿐이지.

차여주
이렇게 계속 두면 벌레 꼬이는 거 몰라-?


김태형
진짜?!

어렸을 때부터 벌레를 끔찍이 싫어...를 넘어 혐오하던 너는, 온몸을 부르르 떤다.

차여주
내가 못 살아...ㅎ

차여주
고무장갑 어디있어?


김태형
어... 그게 어디있더라.


김태형
한 번 찾아보고 올게!

허리에 두른 앞치마는 풀 생각이 없는 건지, 그대로 어디론가로 뛰어가는 너였지.


아니, 근데 보통 고무장갑은... 싱크대에 있을텐데.

예나 지금이나, 멀쩡한 사람같아도 한 구석 모자란 건 여전하단 말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