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의 김운학
12

“나는… 이제는 잃을 각오라도 하고 말하려고 해.”
순간 모든 소리가 사라진 것 같았다.
펜 굴러가는 소리도, 도서관의 기침 소리도, 시계 초침 소리도.
오직 그녀의 목소리만 또렷했다.
운학은 손끝을 꽉 쥐었다. 그리고 마침내 답했다.

김운학
“누나. 나도 그래요. 이제는 말해야만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운학
"나는 DJ가 아니라, 누나를 좋아해요.”
짧지만 강렬한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았다.
도서관 창밖의 가로등 불빛이 서로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익명도, 스크린 너머도 필요 없었다.
우리는 처음으로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사람으로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뒤, 모든 게 조금씩 달라졌다. 우리는 더 이상 숨지 않았다.
더는 두려움에 말을 삼키지 않았고, 눈을 마주치는 일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가 함께 있는 시간은 더 단단해졌고, 장난스러운 웃음 뒤에 숨어 있던 진심이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익숙함을 넘어, 서로의 마음 깊숙이 스며드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었다.
밤 11시, 방 안은 늘 그렇듯 고요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책상 위 마이크 앞에 앉아 있는 건 나 혼자가 아니었다.
바로 옆에서, 김운학이 웃으며 앉아 있었다.
곰돌이 스티커가 붙은 텀블러를 내려놓는 소리가 마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처럼 또렷했다.

김운학
“어색하네요.”
운학이 웃으며 말했다.
“맞아. 이렇게 둘이 앉아 방송하는 건 처음이니까.”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이 시작되자, 댓글창은 곧 활기를 띠었다.
늘 보이던 익숙한 아이디들이 한 줄씩 인사를 남겼다.
— springletter: 어? 오늘은 목소리가 두 개네요?!
— mintblue: 설마 게스트? 아니, 분위기가 뭔가 다르다!
운학은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대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김운학
“안녕하세요, 오늘은 DJ님 혼자가 아니죠."

김운학
"저… 그냥 곰돌이라고 할게요.”"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네, 오늘은 특별히 곰돌이님과 함께합니다.”
댓글창이 순식간에 반응으로 가득 찼다.
— 🧸: 세상에, bearwith_u?!
— lightnight: 와 드디어 밝혀졌다, 곰돌이의 정체!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이제 숨길 게 없었다.
DJ와 팬, 청취자와 진행자가 아니라, 그냥 나와 운학으로 마주 앉아 있었다.
“오늘은요,” 내가 말을 이었다.
“사실 이 자리까지 오는 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서로 눈치만 보다가, 결국 용기를 내야만 했거든요.”
운학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이어받았다.

김운학
“맞아요. 근데 결국, 말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다는 걸 알았죠.”
순간, 댓글창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곧, 따뜻한 말들이 줄지어 올라왔다.
— cloudsea: 용기 내줘서 고마워요. 듣는 우리도 덕분에 위로 받아요.
— leafnote: 두 분 목소리 너무 잘 어울린다. 진짜 DJ 듀오 같아요.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여러분,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이에요. 이 방송을 시작할 때는 혼자였는데, 이제는 곁에 함께할 사람이 생겼습니다.”
운학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김운학
“곰돌이 듀오, 기대해주세요.”
방송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웃음과 노래, 서로의 진심이 스며든 대화.
그리고 마지막 인사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마이크를 잡고 조용히 말했다.
“밤 11시의 라디오를 들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서, 이 시간들을 지켜가고 싶습니다.”
운학은 옆에서 덧붙였다.

김운학
“그리고 한 가지, 오늘은 꼭 말하고 싶었어요. 누나, 이제는 방송 밖에서도, 그냥 내 옆에 있어주세요.”
그 순간, 내 심장은 크게 뛰었다. 그러나 도망치지 않았다.
“그래, 나도 네 옆에 있을게.”
마이크 불빛이 꺼지는 순간에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마음으로 마주 앉아 있었다.
그리고 불이 꺼진 뒤, 운학이 내 쪽을 보며 장난스레 속삭였다.
“다음엔 내가 준비한 이야기 해줄게요. 누나도 아마 깜짝 놀랄 걸요.”
나는 고개를 돌려 그의 눈을 바라봤다. 웃으면서도 묘하게 설레는 긴장감이 스쳤다.
방송은 끝났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