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의 김운학
3

강의가 끝난 늦은 오후, 나는 카페 창가에 앉아 조별 과제를 위한 노트북을 펼쳐놓고 있었다.
날씨가 흐린 탓에 창밖은 잔잔한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유리창 너머로 가는 빗줄기가 미묘한 리듬을 만들었다
과제를 해야 하는데 집중이 되지 않아, 나는 습관처럼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인스타 피드에는 내가 올린 라방 스토리에 남겨진 몇 개의 댓글이 눈에 띄었다.
bearwith_u
오늘은 비 오는 소리랑 같이 듣고 싶네요. DJ님 목소리랑 어울릴 것 같아요.
그 말이 머릿속에 잔잔히 남았다.
문득, 도서관 벤치에서 본 운학의 텀블러가 떠올랐다.
곰돌이 스티커를 보며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하던 그 표정이 묘하게 겹쳤다.

김운학
“누나 여기 있었네요.”
고개를 들자,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온 김운학이 우산을 털며 다가오고 있었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참 자주 마주친다 싶었다.
그는 내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컵에 담긴 아이스라떼를 내려놓았다.

김운학
“공강 끝나고 그냥 앉아 있었어요?”
“응, 과제 좀 하려고.”

김운학
“과제보단 날씨 구경하는 게 더 재밌어 보이는데요?”
운학은 장난스럽게 눈썹을 살짝 올렸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운학이와 마주 앉아 있으면 대화가 길지 않아도 공간이 금세 편해진다.
운학은 음료 속 빨대를 빙글빙글 저으면서 말을 꺼냈다.

김운학
“근데 누나는 혼자 있을 때 뭐해요? 음악 들어요?”
“가끔은, 그냥 조용히 라디오 들어요.”

김운학
“라디오요?”
그는 잠깐 흥미로운 듯 고개를 기울였다.

김운학
“요즘 누가 라디오 들어요? 아니, 혹시 직접 하거나 그런 건 아니죠?”
“설마, 내가 왜 라디오를 해.”
나는 재빨리 웃어 넘겼다.
하지만 그 눈빛은, 마치 뭔가를 아는 듯 미묘했다.
운학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김운학
“그냥 누나 목소리가 딱 밤에 듣기 좋을 것 같아서요. 예전에도 말했죠? 진짜 DJ 같아요.”
잠깐 멈칫했다. 라디오 이야기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올 줄은 몰랐다.
저 농담일까, 아니면 짐작일까. 괜히 숨이 막혀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

김운학
“아무튼, 오늘 비 진짜 많이 오네요.”
운학이 우산을 정리하며 말했다.

김운학
“누나는 이런 날 뭐해요? 따뜻한 차라도 마시면서 음악 듣는 거 어울릴 것 같은데.”
그 말이 묘하게 내 라방을 떠올리게 했다.
밤 11시, 커피잔을 들고 마이크 앞에 앉아있던 내 모습이 스쳐갔다.
비가 그치기 전에 우리는 카페 앞에서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오늘은 라방을 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괜히 설렜다. 마이크 앞에 앉아 작은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비 오는 밤이네요. 제목은 ‘비가 그치는 자리에서’예요.”
댓글창엔 어김없이 🧸 이모티콘이 먼저 올라왔다.
bearwith_u
오늘 카페에 있었는데, 비가 참 좋더라고요. 혹시 DJ님도 어딘가에서 보고 계셨나요?
나는 한 박자 늦게 숨을 고르며 웃었다.
‘카페?’ 그 타이밍은 우연일까. 아니면… 뭔가 더 가까운 힌트일까.
“혹시… 오늘 비를 본 사람이 있다면, 그 기억이 오래 남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조용히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마음속에선 계속 운학의 웃음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