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의 김운학
4

비가 잦아든 다음 날, 캠퍼스 공기는 한결 차분해져 있었다.
나는 강의가 끝나자마자 도서관으로 향했다. 시험 기간이 다가오고 있어서 그런지 도서관 안은 유난히 조용했다.
자리를 찾던 중,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김운학
“누나, 여기 자리 있어요.”
고개를 들자 김운학이 창가 쪽을 가리키며 손을 흔들었다.
그는 곰돌이 스티커가 붙은 텀블러를 옆에 두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김운학
“여동생이 아침에 또 떼지 말라고 했어요. 곰돌이 텀블러는 제 마스코트인가 봐요.”
나는 웃으며 맞은편에 앉았다.
각자 공부를 시작했지만, 가끔 눈이 마주칠 때마다 운학은 작은 메모지를 건넸다.

김운학
‘이 문제 답이 뭐였죠?’

김운학
‘졸리면 커피 마실래요?’
손글씨로 적힌 메모를 주고받다 보니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잠시 쉬는 시간, 운학의 필기를 보던 나는 새삼 놀라 이야기했다.
“우와, 너 진짜 필기 깔끔하다.”

김운학
“그런가?”
운학이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글씨가 사람 성격을 반영한다고 하잖아. 너가 바른 사람이라 글씨도 이렇게 바른가 봐.”
그 말에 운학은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하며 받아쳤다.

김운학
“그럼 누나는 마음이 예뻐서 목소리도 예쁜가 보다.”
“나 진짜 진심이야! 넌 정말 장점이 많은 것 같아."
“그런 칭찬 들으면 계속 메모 남기고 싶잖아.”
우리는 그렇게 작은 메모와 웃음으로 더 가까워졌다.
도서관을 나올 때는 다시 빗방울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운학은 우산을 펴서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다가왔다.

김운학
“같이 가자. 감기 걸리지 마.”
우산 아래 좁은 거리에서 빗소리와 함께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잠시 후 운학이 나를 슬쩍 보며 말했다.

김운학
“누나는 목소리만 좋은 게 아니고,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 그게 진짜 장점 같아.”
나는 잠깐 멈춰 웃으며 대꾸했다.
“넌 웃을 때 진짜 사람 기분 좋게 만들잖아. 그래서 더 많이 웃어.”
그 말에 그는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했다.

김운학
“그럼 앞으로 계속 웃어야겠다. 누나 칭찬은 다 저장할 거야.”
집에 돌아온 뒤, 나는 그날따라 라방을 켜고 싶어졌다.
밤 11시 정각, 방송을 열며 나는 마이크를 살짝 만졌다.
“오늘은 우산 아래에서 들었던 대화를 이야기할게요. 빗소리가 사람을 조금 더 솔직하게 만들죠.”
그 말이 끝나자 댓글창엔 🧸 이모티콘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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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산 위로 톡톡 떨어지는 빗소리도 함께 들으면 좋겠어요.
방송을 하며 나는 도서관에서 웃던 운학의 얼굴과, 우산 아래 함께 걸었던 그 짧은 순간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