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의 김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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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저녁, 캠퍼스 잔디밭 위로 노을이 길게 늘어졌다.

오랜만에 과제도 끝내고, 나는 평소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기숙사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고, 라디오에서 틀어놓은 잔잔한 음악이 귀에 스며들었다.

문득, 지난 며칠 동안 함께 웃던 운학의 얼굴이 떠올랐다.

도서관에서 나눴던 작은 메모, 우산 아래의 짧은 대화들..

휴대폰 화면을 켜자, 인스타 DM 창에 bearwith_u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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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rwith_u

오늘은 유난히 하늘이 예쁘네요. DJ님도 보고 있나요?

나는 답장을 쓸까 말까 망설였다.

곰돌이 스티커가 붙은 텀블러가 떠올랐다.

그 스티커를 건네던 운학의 장난기 어린 눈빛이 bearwith_u의 글귀와 겹쳐 보였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내가 잘못 연결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정말 같은 사람일까.

그때, 내 앞을 지나던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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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학

“누나, 혼자 있으면 심심하죠?”

고개를 들자 김운학이 음료 두 잔을 들고 서 있었다.

그는 마치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옆자리에 앉아 한 잔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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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학

“아이스라떼 좋아하잖아요. 그냥 생각나서.”

“나 아이스라떼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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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학

“지난번 도서관에서 메모했잖아요. 내가 몰래 기록했지.”

운학은 웃으며 눈을 찡긋했다.

순간, 마음이 조금 간질거렸다.

우리는 벤치에 나란히 앉아 음료를 마시며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강의에서 있었던 소소한 에피소드, 시험에 대한 부담, 그리고 그냥 별 의미 없는 농담들.

대화가 이어질수록 나는 운학이와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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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학

“누나 글씨 예쁘다 했잖아요. 근데 웃는 것도 참 예쁘네요.”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나는 잠깐 말을 잃었다.

“뭐야, 그런 얘기 갑자기 하면 어색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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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학

“진짜예요. 누나는… 그냥, 옆에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DJ가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주듯이.”

그 말에 심장이 쿵 하고 울렸다.

‘DJ’라는 단어가 묘하게 마음을 찔렀다.

집에 돌아온 뒤, 나는 괜히 방송을 켜고 싶어졌다.

“오늘은 잔디밭에서 들었던 바람 소리를 이야기할게요. 어떤 사람은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죠.”

댓글창에 🧸 이모티콘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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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rwith_u

DJ님 말이 참 따뜻하네요. 오늘 같은 밤, 그냥 같이 웃어주고 싶어요.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살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참 행운이에요. 혹시 지금 듣고 있는 누군가도 그런 사람을 떠올렸으면 좋겠어요.”

방송을 끝내고도 한동안 운학의 얼굴과 bearwith_u의 메시지가 번갈아 떠올랐다.

정답은 아직 모르지만, 오늘 밤만큼은 그 따뜻한 혼란을 그대로 느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