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의 김운학
6

그날 이후에도 우리는 도서관에서 자주 마주쳤다.
시험 기간이라 공부에 집중하려 했지만, 운학과의 대화는 어느새 나에게 또 다른 일상이 되어버렸다.
작은 메모를 주고받고, 커피 한 잔을 건네며 잠깐씩 웃음을 나누는 시간들이 쌓여갔다.
익숙했다.
그의 목소리도, 그가 웃는 습관도, 메모지에 적힌 둥글고 반듯한 글씨도.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말해도 되지 않을까?’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운학의 곁에 앉아 문제를 풀다 잠시 고개를 들었고, 운학은 익숙하게 메모 한 장을 건넸다.

김운학
‘오늘 DJ 목소리, 왠지 더 차분했어요.’
나는 순간 멈칫했다.
"DJ?" 무심코 되물었지만, 운학은 장난스럽게 웃기만 했다.

김운학
"그냥… 어제 들은 라디오 이야기요. 요즘 매일 듣고 있어서요."
그의 눈길이 어딘가 머뭇거리는 듯했다.
나는 그저 웃으며 넘겼지만, 속에서는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혹시 운학이도 알까? 이미 알고 있는 걸까?
그날 밤, 라방에서 나는 공지를 올리려다 말고 잠깐 고민에 빠졌다.
이 사진을 올리면, 그 사람이 좋아하겠지—곰돌이 스티커가 붙은 물병.
그리고 그 순간, ‘bearwith_u’라는 아이디가 떠올랐다.
bearwith_u
‘오늘 우산 위로 톡톡 떨어지는 소리도 함께 들으면 좋겠어요.’
bearwith_u
‘비 오는 날, DJ님 목소리 들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곰돌이 프사에 조심스러운 말투. 그렇게 익숙하고 따뜻한 댓글들.
한 번도 빠진 적 없이 내 방송을 들었던 그 아이디.
그가 떠오르면… 자꾸만 운학의 얼굴이 스쳐갔다.
며칠 후, 우리는 또 도서관에서 마주쳤다.
운학은 평소처럼 텀블러를 들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표정이 밝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일 있어?”

김운학
“아니요, 그냥… 오늘은 집중이 잘 안 돼서요.”
운학은 음료 속 빨대를 빙글빙글 저으면서 말을 꺼냈다. 어딘가 모르게 어색한 말투였다.
나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운학아. 예전에 라디오 자주 듣는다고 했잖아. 혹시… DJ 누군지 궁금하지 않아?”
운학은 잠깐 고개를 돌리더니, 내 눈을 피하지 않은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운학
“…사실은. 가끔 궁금했어요.

김운학
밤에 조용히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그냥…

김운학
그런데 그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되면, 지금처럼 편하게 들을 수 있을까 싶어요.”
나는 그 말이 반가우면서도 어딘가 찜찜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운학은 내가 말을 꺼내주길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작 나는 웃기만 했다.
'곧 말할 수 있겠지'라는, 어쩌면 이기적인 여유로.
도서관을 나설 때, 우리는 함께 걸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나란히 걷는 그 거리에서조차 어딘가 미묘한 공기가 감돌았다.
운학은 자꾸만 말을 삼키고, 나는 자꾸만 마음을 들키는 것 같았다.
말 한마디에도, 눈빛 하나에도 뜻을 부여하게 되는 순간들.
가까워질수록 더 조심스러워졌다.
그날 밤, 라방을 켜며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누군가를 오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을 다르게 보게 될 때가 있어요.
그리고 그게 익숙함인지, 좋아함인지 헷갈릴 때가 있죠.”
하지만 댓글창엔 오늘따라 bearwith_u의 말이 없었다.
마치 무언가를 앞두고 조용해진 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