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의 김운학

9

“운학아.”

그가 고개를 돌렸다.

빗물이 이마에 맺혀 있었고, 가로등 불빛이 그 위에서 작은 빛점처럼 흔들렸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사실… DJ가 나야."

"예전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타이밍을 놓쳤어.”

말을 뱉는 순간, 비가 조금 더 세차게 내렸다.

운학의 표정이 잠깐 굳더니, 놀람과 안도가 동시에 스치는 듯한 기묘한 변화가 보였다.

그는 숨을 짧게 내쉬고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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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학

“알아요. 아니,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잠시 웃다가, 조용히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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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학

“그래도… 듣고 싶었어요. 누나 입으로.”

그 말에 마음이 묘하게 풀렸다.

오래 누르고 있던 숨을 내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고백이 우리 관계를 바꿔놓을 거라는 걸 직감했다.

이제는 DJ와 청취자가 아니라, 그저 학교 친구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알아버린 사람으로 남게 될 테니까.

그렇게 우리는 같은 우산 아래를 걸었다.

빗소리가 귓가를 타고 흐르고, 어딘가 달라진 공기가 피부를 스쳤다.

내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지만, 동시에 앞으로의 시간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두려움이 함께 따라왔다.

운학 역시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 속엔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무언가가 숨어 있는 것 같았다.

비가 그친 다음 날, 도서관의 창가 자리에 다시 마주 앉았다.

전날의 고백 이후라 그런지, 운학을 보는 눈빛이 자꾸 달라졌다.

그는 여전히 곰돌이 스티커가 붙은 텀블러를 옆에 두었지만, 표정은 조금 더 진지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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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학

“어제… 솔직히, 놀랐어요. 그런데 싫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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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학

"누나가 나한테 솔직해줘서,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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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학

"고마워요 누나"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끝에 묘한 여운이 걸려 있었다.

나는 그 말에 안도하면서도, 속을 다 읽히는 기분에 괜히 시선을 피했다.

며칠 후 라방에서 새로운 아이디 하나가 자주 눈에 띄었다.

‘스프링레터’.

댓글마다 밝고 재치 있는 반응을 남겼고, 심지어 DM로는 사연까지 보냈다.

방송이 끝난 뒤, 운학과 카페에서 마주 앉아 있을 때 그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 springletter가 보내준 사연 진짜 귀엽더라.”

"너도 들었지? 어땠어?"

내 말에 운학이 잠깐 멈추더니, 웃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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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학

"... 재밌었어요."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고개를 돌리며 말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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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학

"새로운 팬이 또 생겨서 다행이에요."

그의 말은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시선은 살짝 옆으로 흘렀다.

나는 그 눈빛이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우리가 함께 쌓아온 공간에 다른 누군가의 그림자가 스며든 걸 바라보는 사람 같았다.

밤 11시, 라방을 켜자 springletter가 가장 먼저 댓글을 남겼다.

— springletter: 오늘 목소리, 더 다정해진 것 같아요.

그 순간, 운학이의 시선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서 작은 파문이 일었다.

그 파문은, 곧 운학의 마음속에서도 번져가고 있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