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치정[찬백/새준/BL]
15.



박찬열
.........

머리 위로 비가 쏟아졌다.

검은 우산이 투둑, 툭, 빗방울을 튕겨냈지만 머리 위로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운동화를 지익, 바닥에 한번 끌자 모래와 자갈들이 붉은돌이 깔린 바닥에서 긁히는 소리를 냈다.

고개를 한번 들었다가, 다시 땅을 봤다.

비가 내렸다.

창문으로 달겨들어 온 몸을 묻히고는 주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텅 빈 눈. 생기없는 피부. 지나치게 많은 생각.

비내리는 고요한 밤은 죽고싶게 만들었다.

몇시간 전부터 주변을 배회하는 검은 우산도.

뜻대로 되지 않는 고작 18년의 인생도.

짜증이 났다. 거슬렸다. 진저리가 났다.

버거웠다.

그래. 이 감정은 버거움이었다.

책임과 의무라는 하나의 죄책감이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저기 저 검은우산은 무슨 생각으로 저리 서있을까.

기다리는 이가 나오지 않아 섭섭하지는 않을까.

추운날 감기걸릴지도 모르면서 나오지 않을걸 아는 사람을 기다리는데.

그 사람 안나올걸 알면서도 서있는 미련함이 미웠다.

그러면서도 본인 몸 챙길줄 모르고 그저 있는게 싫었다.

그게 죽도록 그랬다.

창문이 닫혀있다.

커튼도 쳐져있다.

불빛도 켜져있다.

무거운 그 애의 죄책감에 더 하려고 몇시간이고 서있었다. 발소리가 들리면 고개를 들었고, 아니면 숙였다.

그게 다섯시간에 접어들었다.

밤새 내릴 비조차도 버거워할 그 애에게 지쳤을까.

아니. 내가 아니라 그 애가 지쳐있었다. 모든게 무거웠고 힘들었고 모든게 시험과 시련과 고난의 연속된 고개였다.

그 애가 아플줄을 알고 그랬다.

그 애가 아프기를 바래서 그랬다.

더 가서는 그 애가 약이라도 먹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딱 그랬다.

창틀 밑에 기대서 커튼 사이로 그 애를 훔쳐봤다.

나가지 않을거고 나갈 생각조차 없었다.

확신이었다.

그 애가 돌아갈거라는 확신.

내가 이번에도 이 싸움에서 이길거라는 확신.

나는 이곳에서 걸어서는 나가지 않을거란 확신.

언제나 나는 확신을 했고, 틀리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것만 확신했기에.

팍, 우산이 떨어졌다.

그 애가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검은 우산이 바닥에 뒤집어진채로 누워있다.

그 애가 떠난다.

발자국을 잠시 냈다가도, 금방 빗속에 물려졌다.

미련조차 없는것 같았다.

이겼다. 결국엔 이겼다.

그래서 창틀에서 떨어졌다. 침대에 풀썩 앉았다가 내려와 서랍을 열었다.

그게 다였다.

난 내 확신이 언제나 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