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치정[찬백/새준/BL]
8.


6월 14일.

평범하지만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결혼기념일.

1년에 한번. 결혼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

안타깝게도, 워커홀릭 변백현 변호사는.

그 중요한 날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박찬열
오셨어요?


변백현
네.


박찬열
늦었네요? 오늘 일찍 오라고 했는데..


변백현
일이 많아서.


박찬열
아.. 밥은 먹었어요?


변백현
별로 생각 없어요.


박찬열
굶는거 안좋은데. 뭐라도 먹어요. 같이.


변백현
아직 저녁 안먹었어요?


박찬열
기다리느라.


변백현
미안한데 혼자 먹어요. 너무 피곤해서 입맛이 없네요.

피곤한게 사실인지 눈 주변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는 백현에 찬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왼손 약지 손가락에서 조명을 받아 반짝거리는 반지가 오늘따라 처량했다.

온 몸을 저미는듯한 피로감과 머리를 묵직하게 짓누르는 만성 두통. 백현이 습관적으로 두통약을 찾았다.

재판 전이 되면 신경이 예민해지다 못해 잘 벼려진 칼날처럼 날카로워진 탓이다.

여기저기서 시기와 질투심을 곁들인 열등감덩어리 동기들 선배들이 시비를 걸어오느라 사무실에서 조차 밥 한술 잠 한쪽 청하기가 힘이 들었다.

의뢰인은 전혀 협조적이지 않았고 무슨 이유에선지 계속해서 본인 전담 변호사와 함께 해달라고 졸랐다.

그럴거면 나 말고 전담 변호사와 재판하라고 하면 또 불같이 화를 내며 난동을 부리는 것이다.


박찬열
많이 피곤한가봐요.

입술을 씹으며 눈을 삐뚜름이 뜨는 백현에게 찬열이 다정하게 물었다.

극심한 스트레스는 정상적 사고를 하기 힘들게 한다.

그저 짜증만 났다. 피곤했고 힘들었고 머리까지 아팠다. 거기에 말까지 걸어오는 찬열이 솔직히 말하면 귀찮고 성가셨다.

부부침실임에도 한기가 돌았다.

대답없는 백현의 신경이 상당히 날카로워졌고 몸상태가 좋지 않다는걸 찬열은 눈치를 채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날이 날인만큼. 찬열은 출근 전 분명 간곡히 부탁했다. 오늘은, 일찍 들어와요.

하지만 백현이 들어온 시간은 오늘이 한시간도 채 남지않은 늦은 시간이었다.

6월 14일보다는 15일에 가까워졌고, 백현은 그걸 눈치채긴 커녕 전혀 관심조차 없었다.

집에 달력이라곤 화장대와 티비 탁상에 올려진 작은 캘린더 뿐인데. 그마저도 재판일과 접견일, 서로의 생일과 월급날 정도만 적혀있을뿐 부부라고 할만한 것들은 전혀 없었다.


박찬열
오늘 무슨날인지 알아요?


변백현
찬열씨.


박찬열
나는 알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