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치정[찬백/새준/BL]
9.


박찬열은 당황스러웠다.

그래, 솔직히 남편은 너무 유능했다.

너무나 바빴고, 영민했고, 무슨일이 있어도 누구에게도 등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 등을 보이지 않는다는게.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변백현은 먼저 돌아서는 법이 없었다.

물러나지만, 돌아서지는 않는 변백현.

끝이 나지 않을것만 같던 언쟁을 단 한마디로 종결시켰다.


변백현
내가 어떻게 해줘.

그 한마디에 찬열은 할 말을 잃었다.

생각보다 언쟁은 길어졌고 한껏 예민하게 날이 선 변백현이 침실내의 컵이라도 집어던지지 않은건 본인도 본인의 잘못을 알고 있어서였다.

박찬열이 오늘이 무슨날인지 아냐고 물었던건 최후의 라인이자 백현이 오늘이 무슨날인지 상기시킬, 방금 털어넣은 두통약의 효과가 돌기까지의 마지막 카운트였다.


박찬열
잊을 수 있어. 바쁘니까. 잊을수 있고, 힘들 수 있어. 지금 아프잖아. 그래도 나한테, 지금이라도.

백현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박찬열
미안하다고, 밥먹기엔 시간이 늦었으니 영화라도 보자고. 한강이라도 돌자고. 하다못해 같이 손이라도 잡고자자고. 그러자고 해야하는거 아니니?

백현은 찬열에게 사과 한마디 건내지 않았다는것을.

인정해야겠다.

찬열은 지금 너무나 지쳤고, 상처받았고, 이자리를 뜨고싶었다. 더이상 백현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박찬열
재판전까지는, 우리 보지 않기로 해요.

우리 부부잖아, 라는 말은 꾹 눌러삼켰다. 더이상의 첨언은 백현에게도 본인에게도 위험했다.

이제서야 두통약의 효과가 돌기시작하며 뻐근한 눈에서 렌즈가 저절로 빠질지경이 된 백현과 기대와 사랑으로 물들었던 마음이 썰물빠지듯 빠지고 지침과 피곤으로 지금 이상황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밀물 들어오듯 들어오는 찬열은 밥조인이니 만큼

그만해야할 때와, 선을 알았다.

아마 변백현도 알거다.

감정에 밀려 제 남편에게 말실수를 해버린것을.

찬열은 그와중에도 빈틈없는 그가 저에게 내보인 빈틈에 감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