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사람 친구
04. 짝사랑은 처음이라



남자 사람 친구,


제 4화. 짝사랑은 처음이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따라 골목을 빠져나온 박지민은 지금, 내 옆에서 길을 따라 걷고 있다.

윤여주
넌 집에 안 가?


박지민
학원 가.

오…? 네가 학원을? 이라는 눈빛으로 얘를 쳐다보자, 어이 없다는 듯이 웃는 너.


박지민
뭔데, 그 눈빛.

윤여주
…아니 그냥 뭐, 신기해서.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학교 대표 문제아랑 내가 사적인 시간에 발을 맞춰 걷고 있는 것조차도 떨떠름한 거 있지.

1학기 때는 말 한 번을 한 적 없는 애랑, 늘 봤던 친구 마냥 이렇게 스스럼없이 같이 있는다는 게.

윤여주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물어 봐. 고민도 없이 대답하길래, 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있잖아.

윤여주
…….

윤여주
……아니다.

그런 내 반응에, 정면을 보고 있던 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무슨 말을 하다 말아.

사실 물어볼 건 없었다. 이제서야 겨우 말 튼 마당에, 내가 얘한테 무슨 관심을 가지겠어.

그냥… 이 적막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가고 싶어서 꺼낸 말이었는데, 도무지 뭐라 질문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렇게 나도 모르게, 길을 걷고 있는 동안 얘만 쳐다봤나 보다. 새삼 옆태가 장난 아니네, 연예인 해도 되겠다… 생각에 빠져 있었을까.

그 시선이 부담스럽다는 듯 입을 떼는 그였으니.



박지민
내 얼굴 뚫리겠다, 아주.

그제서야 정신 차린 나는 할 말 없어지고.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는데, 정말 내가 얘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걸까... 싶었다.

…분명 심장이 뛰는 것 같긴 한데, 이게 무슨 감정인지를 모르겠다. 짝사랑이라는 것도 해봤어야 알지.

윤여주
…아 참!

우선 말을 돌리자.

윤여주
근데 너는 학교에서 누구랑 같이 다녀?

우선… 조만간 아무래도 넌 내 짝사랑의 상대가 될 것 같으니, 네가 나쁜 놈인지 착한 놈인지 알아둬야 했다.

선한 애들이랑 어울려 다니는 착한 놈이면 합격, 질 안 좋은 애들이랑 어울리는 나쁜 놈이면…

고민 좀 해볼 것 같다.



박지민
…글쎄, 혼자 다닐 때가 많은데.

윤여주
친구는 있을 거 아니야.


박지민
너.

윤여주
…나?

저기 이 봐, 우리 말 튼 지 겨우 이틀인걸.

윤여주
나 말고…!


박지민
보통은 혼자 다니는 편이야.

하긴, 누구랑 같이 다니는 걸 본 적이 없긴 해. 나쁜 놈은 아닐 거야.

윤여주
근데 너… 혹시 고양이 키워?


박지민
아니.

윤여주
아… 그래?

분명 아까 꼬맹이 만지는 손길이… 되게 익숙해 보이던데. 홀로 생각하고 있다가 문득 깨달은 건데,

아까는 무슨 질문할지 모르겠다면서 지금 질문 남발하는 중이네. 자제하자, 윤여주.


박지민
넌 어디 가는데.

윤여주
나…? 나는 집 가고 있ㅈ,

어라? 여기가 어디지.

그제서야 정신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까, 낯선 빌딩들이 나를 반기던 중. 집을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구나-를 깨달았다.

윤여주
…아. 지나쳤다.

윤여주
과외 늦는데…….

시계를 잠깐 보던 여주. 일단 뛰어야 겠다 싶었는지, 지민에게는 대충 인사하고 돌아섰는데…



박지민
잠깐만.

손목 붙잡으며 잠깐만 멈춰 보라는 지민이에, 뒤도는 여주였다.

윤여주
할 얘기 있으면 따로 연ㄹ…

여주 말 끝나기도 전에, 앞으로 한 발짝 더 다가선 지민이는 여주가 등에 멘 가방의 활짝 열린 지퍼를 잠가줬다. 칠칠맞게 이게 뭐냐.

그 덕에 마주 보고 있던 두 사람은 얼핏 안는 자세로 보이기도 했고.


끝까지 잠군 후에야 여주로부터 다시 멀어진 지민이는, 여주의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박지민
잘 가. 내일 봐.


그 말을 끝으로 유유히 돌아서서 제 갈 길을 가는 지민이었다. 물론 여주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했고.


···


다음 날.


일찍 오기에 맛 들린 나는 오늘도 출석 1등 찍었다. 나름의 봉사도 해볼까 싶어 교실 문 활짝 열어두고 환기도 했다지.

그리고서는 냅다 책상에 엎드렸다. 일찍 오면, 혼자 있는 조용한 교실이 좋기도 한데- 얼마 안 가 심심해지거든.

엎드린 채로 눈 감고 암흑 속 걸어 다니는 하얀 양들을 세기 시작했다. 이런 걸… 시간 낭비라고들 하는 거고.


그렇게 시간 낭비하면서 아침을 보내고 있었을까. 앞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양을 100마리 가까이 세어갈 때 즈음, 내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설마… 하며 고개를 드는데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것처럼… 박지민이었다.

윤여주
…일찍 왔네?

너 원래 안 그랬잖아. 책상에서 상체를 일으키며 묻는데 글쎄, 그가 하는 대답이




박지민
네가 일찍 오길래.


그 눈빛이었다.

네가 얼마 전 고양이를 바라볼 때의 눈빛을 하고서, 날 향해 웃고 있는 너였다.





++ 하루아침에 와버린 글태기. 재미없어서 울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