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사람 친구

07. 변수

남자 사람 친구,

제 7화. 변수

점심시간. 점심을 먹고 교실로 돌아온 두 사람은 나란히 자리에 앉았다. 여주는 여전히 설레임 먹느라 바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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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하루종일 먹게?

윤여주

…얘가 안 녹는 걸 어떡해.

급기야 오랫동안 물고 있던 탓에, 혓바닥에 딱 붙어버린 설레임 입구. 여주가 허둥지둥 헤매면서 겨우 떼어내니까, 바로 가져가 버리는 지민.

그리고선 양손에 쥐고 주물러준다. 설레임의 딱딱하게 굳은 부분을 손에 힘줄까지 세워가며 누르는 지민이에, 여주 여기서 또 심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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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이제 좀 녹았을 것 같은데?

선뜻 여주에게 내미는 지민. 그 와중에 차가워서 붉어진 그의 손바닥 보고선 여주는 알게 모르게 속으로 생각하지. 왜 이렇게 사람이 다정하고 난리야˃ᴗ˂

윤여주

오…!

전과는 다르게 딱 먹기 좋게 입안으로 들어오는 달달한 아이스크림에, 여주가 두 눈을 크게 뜨고서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런 여주를 제 딸 보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덩달아 웃는 지민이었고.

윤여주

오늘 학교 끝나고 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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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과외.

윤여주

그럼 바로 가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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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아니. 시간 조금 남아, 왜?

잘 됐다. 무의식적으로 여주가 내뱉은 말에, 영문 모르는 눈빛의 지민이 여주에게 물었다. 뭐가?

윤여주

……아니이.

윤여주

학교 끝나고 같이… 가자구.

힐끗힐끗, 지민이 눈치 살피던 여주가 말했다. 그를 짝사랑하는 입장에서는, 큰 결심과 제안이었다.

이런 말을 꺼내기까지, 머릿속에서 얼마나 많은 문장들이 떠올랐는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 끝내 여주가 내뱉은 말은 일종의 데이트 제안이었다.

3초 정도 지났을까. 가만히 여주 보고서 표정 변화 1도 없는 지민이에, 이 어색한 분위기를 직감한 여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윤여주

…아이, 그니까 내 말은 그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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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좋아. 같이 가.

윤여주

…엇. 진짜?

윤여주

나 진짜 그냥 해본 말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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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꼬맹이 잘 있는지 봐야지.

윤여주

…나보다 꼬맹이를 더 챙기네, 이제?

선은 엄연하게 지켜. 네 꼬맹이 아니고, 내 꼬맹이야. 설레임 잘만 먹다가도 단호하게 외치는 여주를 본 지민이 피식, 웃는다.

윤여주

…뭐야, 왜 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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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안 웃었는데.

윤여주

허, 내가 다 봤거든?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지 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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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안 그랬어.

윤여주

…다 봤다는데 끝까지 아니래.

뾰로통한 표정으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여주에, 지민이는 거기서 또 웃음 터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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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삐졌어?

윤여주

헐, 무슨. 나 그렇게 속 좁은 인간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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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삐졌는데, 지금.

이제는 대꾸도 안 하는 여주 태도에, 지민이는 그런 여주를 가만 바라보다 의자를 가까이 끌고 가 앉았다.

그러고는 삐진 거 풀어주라고 몇 번 달래주다가, 이걸로는 안되겠다 싶으면 귀에다 대고 속삭이겠지.

지금 삐진 거 안 풀어주면, 이따가 같이 하교 안 하겠다고.

윤여주

그건 이미 약속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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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나랑 말 안 해주면 그 약속 없었던 걸로.

윤여주

……완전 치사빵꾸.

윤여주

…지금 너랑 말해주고 있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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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응, 이제 됐어.

지민이 특유의 말간 눈웃음에, 여주 마음은 사르르 녹아서 애꿎은 다 먹은 설레임만 만지작만지작.

윤여주

……그리고,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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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응-.

윤여주

…ㅈ, 자꾸 이렇게 가까이서 나 보지 마.

윤여주

이럴 때마다 내가 얼마나 당황스러운ㄷ,

쾅. 그때 마침 이 둘 근처에 있던 뒷문이 세게 열리더니 문이 부서질 법한 큰 소리가 들렸다. 둘의 한창 달달한 시간을 끝내려는 듯한 소리였다.

심장 떨어질 뻔한 여주는 가슴 부여잡는 시늉하며 한숨 내쉬니까, 지민이는 괜찮냐며 물어봐 주고.

자연스레 뒷문으로 향한 두 사람의 시선. 뒷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의 시선은 여주의 옆을 향했다.

"지민이~ 여자애 하나랑 노닥거릴 시간은 있나 보네."

목 언저리에 거미줄 문신을 박아 넣은 덩치 큰 남자. 교복의 ㄱ자도 보이지 않는 생 날라리 차림을 한 녀석이었다.

첫인상으로 보아선, 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그의 세상 불량한 옷차림이었다. 근데 또 박지민이 그를 향해 말을 놓으며 뭐라 하는 걸 보니 학생인데….

내가 정신 못 차리는 틈을 타 내 시야 안으로 파고든 박지민. 자세를 낮춘 채로 잠깐 어디 좀 다녀오겠다는 말을 끝으로 뒷문을 빠져나가는 그였다.

이내 박지민을 부른 그 녀석도 박지민을 뒤따라 가는가 싶더니… 잠시 멈춰 서서 내 눈을 한동안 마주치다가 이곳을 뜨더라.

뒷문이 닫기기 무섭게, 얼어있던 분위기가 녹듯이 저마다 무리 지어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반 친구들.

뒷문에서 시선을 거두고 똑바로 앉아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는데…

어째, 저 녀석 어디서 본 것만 같다.

그렇게 몇 교시가 거듭되는 동안… 박지민은 교실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들의 관심사에서 이미 제외된 지 오래인 박지민인지라, 행방을 묻는 사람은 없었다.

수업 내내 옆의 빈 자리가 거슬려서, 집중 하나도 못하고 있다가 정신 차리니까 종례 시간.

늘 같은 선생님의 당부 말씀 듣는 종례가 끝나고… 얼른 박지민 찾아보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다름이 아닌 전정국이 말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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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박지민 안 보이네. 얘 어디 갔대?

윤여주

…모르겠어. 점심시간 이후로부터 안 보여.

윤여주

엄청 키 큰 애가 불러서 가더니….

상심에 잠긴 여주의 목소리에, 정국이 순간적으로 잠시 미간을 찌푸리더니 보던 핸드폰을 끄고 여주에게 다시금 물었다. 뭐라고?

윤여주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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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누가 박지민을 불렀어?

윤여주

…어? 어.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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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설마.

윤여주

…설마라니?

정국의 표정은 점차 일그러지더니, 이내 그의 입에서는 욕지거리가 작게나마 들렸다. 비속어에 면역 없는 여주는 속으로 흠칫했고.

뭐 때문에 그러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이미 교실 밖을 향해 뛰어나가는 정국이. 타이밍을 놓친 여주도 덩달아 의문을 한가득 품고 교실을 나갔다.

학교 복도를 아무리 둘러봐도… 행방불명인 지민이에 여주 속만 타들어가고 있었을까.

마침내 1층에 다다랐을 때, 보건실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익숙한 남자 실루엣을 본 여주가 조심스레 그를 향해 다가갔다.

다가가는 내내, 수상하게 여겨지던 뒷모습. 마침내 여주가 그의 바로 뒤에 섰을 때 우연적으로 뒤도는 남자였음을.

윤여주

…?

윤여주

…!

윤여주

야, 박지민…!

다름 아닌, 곱던 얼굴 여러 군데 붉은 생채기가 새겨져있는 지민이었다. 심지어 입술은 이미 피딱지가 생긴 지 오래인.

볼, 코, 턱 제외할 것 하나 없이 작고 큰 상처들로 가득한 지민의 모습에 적잖이 놀란 여주가 그의 양볼을 부여잡았다.

윤여주

얼굴이 왜 이래…!

윤여주

아까 그 자식 때문이야…?!

여주의 손이 닿은 곳에 상처가 있던 지민이 시름시름 앓는 소리를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주는 놓아줄 생각이 없다.

불과 오전만 해도 세상 예쁘고 하얗기만 했던 얼굴이 만신창이가 되어있으니까.

윤여주

…지금 당장 경찰서 갈까, 나랑?

윤여주

따라 와, 지금 바로 가ㅈ

제 힘으로 지민을 끌고 가려던 여주. 턱도 없었다. 오히려 자기가 지민에게 붙잡힌 꼴이 됐지.

당황한 여주가 지민이만 빤히 올려다보고 있으면, 세상 맑은 눈을 하고서 여주와 눈높이를 맞추는 지민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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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미안해, 많이 기다렸지.

++ 그렇게 다치고 와서도, 처음 내뱉은 말이 여주 걱정인 당신은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