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사람 친구

08. 풋풋함

남자 사람 친구,

제 8화. 풋풋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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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꼬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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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잘 있었어?

낯가리기는커녕, 몇 번 봤다고 익숙해졌는지 바로 지민의 무릎 위에 안착한 고양이는 자세를 잡더니 이내 눈을 스르륵 감았다.

그런 고양이를 세상 다정하게 바라보던 지민은 연이어 쓰다듬어주다, 문득 아려오는 상처에 핸드폰 액정으로 제 모습을 확인했다.

아무 말 없이 군데군데 살피다, 다시금 핸드폰을 내려놓고서 잠 드려는 꼬맹이 애타게 불러 보고.

그렇게 몇 분이 더 지나자, 좁은 골목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여주였음을.

윤여주

박지민!

다 풀어진 머리에, 급한 발걸음. 지민이를 외치며 지민이를 향해 뛰어온 여주가 바닥에 주저앉자마자 화들짝 놀란 고양이가 지민이 품에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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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뭘 이렇게 사 왔어.

윤여주

아, 몰라…. 그냥 보이는 거 아무거나 챙겨왔어.

여주가 챙겨온 검은 비닐봉지에서는 다름 아닌, 각종 연고와 깜찍한 무늬가 새겨진 밴드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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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약국 차리게?

윤여주

일찍 차리면 좋지, 내 꿈이 약사거든.

아무렇지 않게 지민의 말을 받아친 여주. 지민이를 돌담 계단에 앉힌 뒤 자신은 그 밑 칸에 주저앉아 약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윤여주

이건 소독약… 이거는… 화상 연고.

윤여주

뭐지, 이거는?

실눈을 뜨고 글자를 읽는 여주에, 궁금해진 지민이도 고개를 내밀어 들여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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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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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두통약은 왜….

윤여주

헙, 아~ 이거 타이레놀이네?

진심으로 여주가 이해 안 된다는 눈빛의 지민. 멋쩍었던 여주는 괜히 다른 약을 짚어보며 상황을 모면했다. 아니이~ 보건쌤은 하필이면 오늘 출장을 가셔서어~

윤여주

뭐야, 너 자꾸 웃네.

윤여주

지금 네 모습을 보고도 웃음이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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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아니. 안 나오지.

억지로 애써 웃음을 누른 지민이는, 눈 감고 있으라는 여주의 말에 순순히 눈을 감았다.

윤여주

조금 따가울 수도 있으니까, 말해줘.

지민의 반응 살피면서 조심스레 소독약을 상처 부위에 얹어주는 동안, 여주의 손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최대한 그런 티를 안 내려고, 심호흡을 크게 해보기도 했지만… 그땐 이미 지민이 눈치챈 뒤였고.

윤여주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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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난 괜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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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네가 안 괜찮은 것 같아서.

윤여주

……무슨 소리!

윤여주

으음... 절대 아니야. 노노.

볼만 홍당무 돼서 연고 찾기 바쁜 여주. 아무 말 없이 연고를 꺼내들더니 새끼손가락으로 펴 발라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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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너 은근 내 눈 피하네.

윤여주

…그래 보여? 아닌데.

그러다 지민이 또 웃으면, 움직이지 말라고 괜히 큰 소리 치고. 아아잇. 야, 가만히 좀 있어- 하면서.

윤여주

밴드는… 여기 큰 상처에만 붙일까?

윤여주

입술 아래 여기가… 좀 심하게 쓸린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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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응. 거기가 제일 아파.

윤여주

…오케이, 그럼 여기서 골라봐.

여주 품 안에 있던 밴드 몇 개를 지민이에게 보여줌과 동시에, 다시금 터지고 마는 지민이의 웃음이었다.

윤여주

아니…ㅋㅋㅋㅋ 왜 웃는데.

윤여주

쓰읍, 나 지금 진지해. 얼른 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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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진심이야?

윤여주

어... 진심.

뽀로로 밴드인데, 색상 종류가 네 가지별로 다 있어서 싹 쓸어 온 여주.

윤여주

어쩔 수 없었어…. 무난한 밴드는 다 팔리고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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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미치겠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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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이거 꼭 붙여야 해?

윤여주

응. 꼭.

고르기 어려우면, 내가 골라주지 뭐. 짠, 이거 어때. 냅다 분홍색 뽀로로 원형 밴드를 개봉한 여주가 하나 뜯더니 정말로 지민이에게 붙여줄 기세.

지민은 당연히 붙이려는 여주 팔목 붙잡았지. 진짜 이걸 붙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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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야, 아무리 그래도 내가

윤여주

넣어둬, 넣어둬. 얼른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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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솔직히 너도 어이 없지?

윤여주

아니? ㅋㅋㅋㅋ 나는 지금 너 걱정되니까…

그때, 지민이 고의적으로 여주의 팔목에 주고 있던 힘을 풀자, 마냥 지민을 향해 힘을 주고 있던 여주가 앞으로 쏠렸다.

윤여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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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붙이고 싶으면 붙여줘.

윤여주

…정말?

한껏 당황한 여주. 이 와중에도 놓지 않고 있던 분홍색 밴드를 조심스레 지민의 입술 아래 붙여줬다.

떨어지지 않게 지그시- 눌러준 후에, 멀어지려는데 제 손목을 놓아주지 않는 지민이에 여주 순간 얼음.

그 다음으론, 아무 말 없는 정적이 흘렀다. 아이컨택만 1분 가까이 하는 설렘의 정적.

그리고 그 무드를 깬 사람은…

아니,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

미야오옹! 한 번도 날카롭게 울부짖은 적이 없던 고양이가, 울며 살포시 두 사람의 무릎 위로 뛰어올라 가까운 사이를 파고들었다.

윤여주

…깜짝아.

뒤늦게 정신 차린 여주는 고양이를 안아들기도 잠시, 지민에게 넘겨주고 쓰레기들을 봉투에 담기 시작했다.

가만히 그런 여주를 보고 있던 지민도, 이내 고양이를 내려주더니 여주 옆에서 도와줬고.

···

윤여주

…….

윤여주

……웃기다,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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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조금이 아닌 것 같은데.

윤여주

솔직히 말하면, 많이.

계속해서 힐끔거리며, 밴드를 보던 여주가 쿡쿡 웃는 탓에 은근히 그런 반응이 신경 쓰이던 지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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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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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근데, 더 안 물어봐?

윤여주

응? 뭐를?

지민의 표정에서 난감함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여주는 정면이 아닌,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앞으로 걸어가는 중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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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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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나 왜 다쳤는지.

윤여주

……아.

궁금한 것들이 여주에게는 많을 수밖에 없었다. 무시무시한 남학생에게 불려간 이후로 이러한 모습이 되어 나타났으니.

당장 백 가지 질문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주가 입을 다문 이유는…

윤여주

…네가 직접 말하지 않은 거라면,

윤여주

내가 몰랐으면 좋겠다 싶은 일이거나……

나한테 말하기에는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일 수도 있으니까…!

++ 마냥 해맑은 윤여주가 건넨 말로 인해 박지민이 윤여주만 보게 되는 계기 생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