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사람 친구

09. 소소한 일상

남자 사람 친구,

제 9화. 소소한 일상

부제; 너와 함께하는 순간이 곧, 소소했던 나날이 특별함으로 물드는 순간.

윤여주

하이요!

"하이~ 마이 도터~"

윤여주

뭐야, 오늘 컨디션 좋네?

"응 좋지. 엄마가 오늘 뭘 했게~"

윤여주

글쎄, 뭘 하셨을까나.

탁자에 놓여진 생수를 채로 들이킨 여주는 엄마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며 말했다.

"바로바로~ 우리 딸 옷을 샀지!"

윤여주

내 옷?

의아했던 여주가 거실로 들어서자, 다름 아닌 두둑이 쌓인 쇼핑백들이 눈에 들어왔다.

윤여주

…헐, 갑자기?

"네가 사고 싶다 했던 거 맞지? 짜잔, 엄마가 사 왔지."

윤여주

…좋긴 한데,

윤여주

뭐지. 엄마 나한테 바라는 거 있나?

"아 뭐래 ㅋㅋㅋㅋ 오늘 월급날이야. 월급날."

한순간에 납득한 여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쇼핑백에서 꺼낸 옷가지들을 하나하나 펼쳐보며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있는 가운데…

그때 갑자기 요란하게 울린 핸드폰의 벨소리가 거실 안을 채웠다.

"전화 왔다, 여주."

윤여주

엉~ 내 폰인가?

그대로 핸드폰 화면을 확인하는데… 발신자 보고 까무러칠 뻔한 여주. 우선 표정 관리에 돌입했다.

윤여주

……?

"뭐야, 누군데 그래?"

윤여주

…엉?

어, 그게 음… 같은 반 친구? 어… 별로 안 친한데 전화가 왔네. 음, 받는 게 좋으려나. 그런 것 같지 엄마? 아- 그러면 나 잠깐 방에 좀 들어갔다 올게. 금방 와, 금방.

아무도 뭐라 하진 않았지만, 혼자서 뜨끔한 여주는… 애꿎은 핸드폰만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총총총 방으로 들어갔다. 야무지게 문까지 잠가주고.

조심스레 문을 닫은 여주가 발걸음 소리도 나지 않게 사뿐사뿐 걸어가 침대에 안착하는 동안, 벨 소리는 끝내 끊어졌다.

개의치 않고, 다시 발신자에게로 전화를 건 여주.

- 여보세요.

문득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은 듯한 지민의 무뚝뚝한 어조에, 장난기 시동을 건 여주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윤여주

여보 아닌데요!

그 이후로 이어진 정적. 하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익숙한 웃음 소리에 여주가 마음을 한 시름 놓았다. 사람 기분 좋아지게 하는 말간 웃음이라.

그것도 잠시, 머지 않아 끊긴 통화. 여주가 진심으로 당황해서 어영부영하고 있으면 다시금 액정에 비치는 발신자의 이름이었으니.

왜 끊냐고 투덜댈 계획이었는데, 오히려 먼저 치고 들어온 건 상대방 쪽이었음을.

- 어, 여보.

너무나도 또렷하게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얼음된 여주가 눈만 꿈뻑거렸다. 뭐라고?

윤여주

………네?

그런 여주 반응 듣더니 또다시 들려오는 웃음 소리. 당황해 있던 여주도 소리 듣고 멈췄던 숨을 쉬기 시작했다.

윤여주

…왜 전화했어?

- 내일 학교 같이 가자고 말을 안 했더라고, 아까.

윤여주

……아.

윤여주

내일 어디서 만날래?

여전히 여주는 '여보'의 늪에서 못 헤어나오는 중. 메아리 울리듯이 제 머릿속에 떠도는 단어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

- 집 앞으로 갈게.

윤여주

…내 집?

눈알만 데구르르- 굴리던 여주. 대답을 하기도 전에, 다시금 들려오는 지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 그리고 부탁 하나만.

윤여주

뭔데?

- 이번 주말에 시간 어때.

윤여주

……나는, 남는 게 시간이긴 한데

윤여주

그건 왜…?

- 비밀.

윤여주

에이, 김 빠져…….

- 아무튼 내일 갈게. 늦잠 자지 말고.

윤여주

너나 자지 마. 내가 얼마나 착실한 학생인데!

……

그리고 다음 날 :)

07:55 AM

으르르르르르.

유난히 평화로운 아침. 그때 울리는 전화음에, 놀란 여주가 눈을 비비며 겨우 눈을 떴다.

윤여주

아우…… 엽보세여.

- 여보, 늦잠 잤지.

윤여주

여보는 누가 당신 여보………

아 미친

그제서야 시계 확인한 우리의 지각 요정 윤여주 씨.

윤여주

…미친, 지금 몇 시야.

- 글쎄, 몇 시려나.

……

윤여주

헥… 헥….

윤여주

아 조금만 천천히…!

명찰도 아직 못 달은 여주가 지민의 빠른 걸음을 따라잡느라 숨을 헥헥거리자, 그제서야 뒤 돈 지민은 그런 여주를 가만히 바라보는 중.

박지민 image

박지민

그러니까 누가 늦잠 자래.

윤여주

아니 그건…!

정말 우연의 일치였어.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주저리주저리 변명하면서 겨우 지민의 옆에 다다른 여주.

아무 말 없이 제게 손을 내미는 지민이에, 망설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여주는 덥석 잡았다. 꽤 많이 힘들었거든.

그리고 곧이어 속도를 줄인 채로 뛰기 시작하는 지민. 앞길과 제 손을 잡았음에도 뒤처지는 여주를 번갈아 보며 결국에는 아슬아슬하게 교문을 통과했다.

"무슨 사람이 왜 이렇게 빨라!"

"네가 느린 거야."

"오케이, 납득."

어째 아침부터 순탄치 않은 하루일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수업 시간, 짝남을 옆에 두고 수업이 눈에 들어올 리 없는 여주는 어김없이 은근하게 지민으로부터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난데없이 교과서 표지 앞에 주문 제작한 이름표, 그것도 디자인에 최선을 다해 정성 들인 네임 스티커를 붙이더니 곧이어 필통에도 붙였다.

옆에서 사부작사부작 거리는 여주에게 자연스레 눈길이 향한 지민은 그 시점 이후로 다시 칠판으로 고개를 돌리는 일은 없었다지.

그런 지민의 태도를 눈치챈 여주는, 당돌하게 이름표 하나 떼어 그의 손등에 꾹 눌러 붙여주었고.

둘만 아는 의미가 담긴 눈빛을 주고받더니, 이내 동시에 둘의 입가에는 사르르 녹는 듯한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점심시간,

반 대항전 축구를 한다는 소식에 우르르 운동장으로 몰려와 하나둘 앉기 시작하는 친구들.

그 속에서는 역시 여주와 지민도 함께였다. 매점에서 사 들고온 몇몇의 간식거리들을 꼭 품에 안고서.

윤여주

오늘 누구랑 누구랑 붙는다더라?

박지민 image

박지민

우리 반이랑 1반.

야무지게 봉지 안에 든 과자 조각들을 씹고 있던 여주. 1반이라는 소식에 두 눈을 크게 뜨고선 지민을 쳐다봤다.

윤여주

…걔네 완전 축구 짱이라며.

박지민 image

박지민

잘 모르겠던데.

윤여주

앗. 그래?

머쓱타드된 여주는 가만히 과자만 집어먹는 중. 그렇게 여주의 시선은 자연스레 경기 준비 중인 같은 반 학생들에게로 향했는데…

그런 여주와 눈이 마주친 정국이. 아무 말 없이 여주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제 카디건을 무릎에 얹었다.

전정국 image

전정국

경기 동안만 부탁할게.

윤여주

응? 어- 그래!

차라리 잘 됐다 싶었던 여주는 자기가 잘 가지고 있을 테니 얼른 가 보라며 손을 휘저었다. 이따 가지러 와.

그렇게 다시 시작된 과자 먹방. 몇 개 집어먹다가 문득 지민이가 생각난 여주가 물었다. 근데 넌 왜 축구 안 해? 잘할 것 같은데 네가 하는 걸 본 적이 없단 말이지.

박지민 image

박지민

축구 잘 못해, 나.

윤여주

…네가?

그런 피지컬을 가지고 운동을 못 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윤여주

거짓말.

윤여주

저번에 농구도 잘 하더만…!

농구. 말 꺼내자마자 괜히 지난 체육시간의 제 모습이 떠오른 여주가 입을 꾹 다물었다.

홍당무 되고 난리도 아니었지, 윤여주.

그러다 우연찮게 시선이 향한 지민의 손등. 손등 위에 여전히 몇 시간이 넘게 붙어있는 제 이름 스티커를 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윤여주

이걸 아직도 안 뗐네…?

윤여주

안 떼고 뭐 했어 ㅋㅋㅋ

그럼 그런 여주의 반응 보던 지민이가 제 손등으로 시선을 옮기겠지. 그리곤 귀여운 글씨체로 '윤여주'가 새겨진 스티커를 아무 말 없이 뗄 듯.

지민이가 뭘 할지 여주가 유심히 보고 있으면… 이내 스티커는 지민의 핸드폰 케이스로 향했다.

윤여주

뭐야…ㅋㅋㅋ 뭐해?

여주의 질문에 대답도 못할 정도로, 꼼꼼하게 수평에 맞게 붙인 지민이 다시금 제 핸드폰을 뒷주머니 안으로 넣었다.

윤여주

내가 보는 앞에서 내 이름을 도난당할 줄이야….

여주 혼자 웅얼거리고 있으면,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여주를 보는 지민이었음을.

마침내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리면, 그 누구 하나 먼저 피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터.

여주는 수줍어하지만 최대한 그런 티 내지 않으려, 지민이는 단순히 여주 보려고. 서로의 눈을 한동안 보던 두 사람이었다.

++밀당 따위는 없는 파워 직진남 박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