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사람 친구

13. 흑발의 정석

지민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구희진 벌써 신났다. 볼 붉어져서… 자기가 더 행복해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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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희진

…아하하하. 나는. 약속이. 있었지 뭐야?

연기라곤 1도 적성 안 맞는 우리 희진이. 다 티 나는 거짓말을 하고서 게걸음으로 이곳을 벗어났다.

그나저나… 여전히 박지민 팔 아래에 있는 나는, 조심스레 몸을 틀어 그를 바라봤다.

윤여주

야….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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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꼬맹이 안 보고 싶어?

어쭈, 말 돌리는 것 좀 봐라. 몇 초 전의 저돌적이던 걔 어디갔대. 지금은 완전 순딩이 됐네.

윤여주

…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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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왜 웃지?

윤여주

비~밀.

나도 볼이 화끈거리긴 하지만, 박지민도 만만치 않다. 토마토가 됐어. 이런 애 내버려두고 혼자 도망가려다가… 손목이 붙잡혀버렸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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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왜.

윤여주

아니…ㅋㅋㅋ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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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아니긴 뭐가. 혼자만 웃네.

하여튼 진짜 의도치 않게 사람 웃기는 구석이 있어. 이내 목소리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귀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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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누가. 내가?

네~ 여기에 너 말고 누가 더 있어. 내 말에 수긍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여주

큼큼. 여튼, 아까 그 말은 못 들은 걸로 하는 거지?

상황을 모면하려던 빈말이었던 거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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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진심이었는데.

윤여주

그래, 진심이었다는 거 알ㅇ…

윤여주

…?

…?

윤여주

…!

윤여주

ㅁ, 뭐?

어버버- 할 말도 못하고 이리저리 눈알 굴리면, 갑작스레 내 머리 위에 손 얹는 박지민. 이 대유죄 인간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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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가자, 꼬맹이 주인.

유죄 땅땅땅. 그 이후에 더 귀여운 건 나라면서 중얼거리더니 앞장 서서 걸어가는 그였다. 내 심장 살아있니? 무사하긴 해?ㅠㅠㅠ

박지민이랑 같이 가까운 편의점 들러서 꼬맹이 밥 사고… 슬슬 출출해지니까 우리 먹이(?) 비슷한 것도 한아름 사들고 골목길 걸어 올라가는 중.

윤여주

우리 젤리 하나만 까자!

내 말 한 마디에, 아무 말 없이 멈춰 서더니 비닐봉지 입구 열어서 보여주는 박지민.

이리저리 휘저으니까, 내가 샀던 젤리 봉지가 보였다. 오예~ 달달구리한 거! 신나서 꺼내들었지.

나 먼저 한 입, 장바구니같은 비닐봉지 들고 오느라 수고하는 박지민한테도 한 입 줬다.

윤여주

맛있지~? 내 최애 젤리야.

곰돌이 젤리. 난 이 중에서 초록색 제일 좋아해. 혼잣말 남발해놓고 뒤늦게 민망해서, 아 응응 그냥 그렇다구-. 무안했다.

그러던 참에, 우리 앞으로 나타난 아기 고양. 울 꼬맹이~ 언니 안 보고 싶어써? 꼬맹이 한정 혀 절단되는 마술.

내가 한창 가족 상봉(?)에 감격해 눈물 흘리기 직전까지 갔을 때즈음, 캔을 까서 꼬맹이에게 내미는 지민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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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맛있게 먹어.

말투는 조금 차가워보여도, 어루만지는 손길은 어찌나 다정한지. 누가 보면 자기 자식인 줄.

그렇게 몇 분은 꼬맹이가 밥 핥아먹는 거 보면서, 물도 주다가… 쪼그려 앉은 탓인지 둘 다 발에 쥐나서 그냥 바닥에 주저앉았다.

윤여주

…아야야. 다리야.

윤여주

우리 물 사왔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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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물… 응.

봉지 안을 뒤적이던 박지민은, 머지 않아 생수병 뚜껑을 따서 내게 내밀었다. 매너 있는 척하려던 나는 입 떼고 마셨는데…

윤여주

큷. 켁-

한 번도 입 떼고 마셔본 적이 없어서, 턱에 구멍 뚫린 사람 마냥 줄줄 다 흘리고 자빠졌다. 어우 수치스러워

그걸 지켜보던 얘는 또 어디서 구한 휴지로 내 옷 소매 닦아누기 바ㅃ… 아니 잠시만, 박지민이 왜 닦아줘?

윤여주

…아 미안. 내가 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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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여기. 입에도.

윤여주

…어? 어.

내가 다급하게 휴지로 물기 닦기 바쁘면… 그런 나를 가만 지켜보다 입을 여는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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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입 대고 마셔도 돼. 뭐라 안 하니까.

윤여주

…앗.

윤여주

알았어.

그제서야 마음 놓고 편하게 물 마셨다. 키햐 꿀맛이네.

꿀꺽꿀꺽, 그러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면서 경치를 감상하고 있는데… 시야 안에 들어온 하나가 있었으니.

윤여주

…근데,

윤여주

넌 머리 왜 탈색했어?

문득이었다. 그냥 별 이질감 없었던 그의 톡 튀는 머리 색이 지금에야 눈에 띄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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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그냥. 흑발은 안 어울려서.

윤여주

엥. 네 얼굴에 안 어울리는 것도 있어?

툭하면 본심 나와버리는 윤여주.

쓸데없이 너무 솔직해서 그런가, 박지민이 피식피식 웃는 이유도 나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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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왜, 나 흑발할까?

윤여주

응, 해줘!

흑발 보고싶당. 곰돌이 한 알 입에 집어 넣으며 말했다. 제 머리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시선을 내게로 두고서 대답하는 그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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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싫다면.

윤여주

헐 뭐야. 김 빠져-

살풋, 웃더니 그가 말을 보탰다. 언제 한 번 흑발은 해야 하는데.

윤여주

그래 좋네. 그게 지금이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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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그럴 생각 없는데.

윤여주

…쳇.

윤여주

그럴 거면 나한테 의견은 왜 물어봤대.

진짜 어이없어. 한꺼번에 곰돌이 한움큼 집어 입 안으로 넣었다. 아니나 다를까, 목에 걸려서 켁켁거리기 시작.

…짝남 앞에서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윤여주 진짜.

그에 놀랐는지 다급히 내 등 두드려주는 박지민. ㅋㅋㅋㅋ아 이 상황이 왜 이렇게 웃기지. 대략 여섯 알 정도 되어보리는 곰돌이들이 툭툭 입에서 도로 나왔다.

진짜 이 상황이 말 그대로 더 어이없어서 서로 웃겨 죽고.

“켁…. 이제 그만 두드려도 되거등.”

“괜찮아?”

“컥…. 아퍼 아파. 고만 때려. 나 괜찮으니까!”

“안 뺏어 먹을 테니까 천천히 먹어.”

“아 그런 게 아니라…”

다음 날. 그렇게 안 할거라는 둥, 싫다는 둥, 오만 가지 생색을 다 내던 애가…

다짜고짜 흑발을 하고 나타난 상황.

윤여주

헐. 뭐야. 이게 누구야!

윤여주

진짜 이 정도면 흑발하려고 태어난 사ㄹ… 아니.

윤여주

…그건 됐고, 너 흑발 안 한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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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네가 하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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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그래서 했는데.

++ 박지민 윤여주 당장 사귀어. 당장. 반박은 안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