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별 유치원 [라벤더반] 크미
7월 31일 숙제. 통증의학/Give quarter


여주는 땀에 범벅인 채로 병원을 찾았다.

도대체 얼마나 이런 삶을 계속 살아내야하는 것일까....?


여주
너무 아파.. 아프다고...!!!!

의사
일단 시술 부터 해드릴 께요...


여주
악! 건들지마... ! 아프잖아!


여주
아 그냥 죽여주세요... ㅜ 부탁이에요

여주는 결국 치료실에서 다시 발작을 일으키듯 난리를 부렸다.

의사
석진씨, 좀 도와줘요!

의사는 여주가 난동을 부리자 석진을 불렀다.

석진은 최근 병원에 들어온 신입 의사였다.


석진
자자, 혼자분 숨을 크게 들이쉬고....


석진
자 따라해보세요... 후....


여주
후...


석진
다시 숨 들어마시고 후....


여주
후....

여주는 석진을 보고 따라서 심호흡을 했다

석진이 여주를 달래기 시작하자 여주는 조금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석진
잠깐만 쉬었다 갈까요...?? 어때요? 그러면 괜찮을 것 같아요?

여주는 석진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석진은 복도를 지나가다가 여주를 다시 만났다.


석진
치료는 잘 받으셨어요....?


여주
네.... 아깐 고마웠어요...

아까 일이 생각나 약간 창피해진 여주는 조용히 대답했다.


석진
아이 뭘요.. 그게 제 일인걸요..


석진
차트보니까 최근에 통증이 심해지셨나봐요... 한동안 꾸준히 오셔야겠네요. 앞으로 치료 받는 기간동안 종종 뵈어요!


여주
네에....

여주의 불이 살짝 붉었다.

퇴근 후, 석진은 맥주 바에 들렸다.

외과 같은 곳에 비하면 제법 평화로운 통증의학과였지만, 아까 만난 환자처럼 아파서 괴로워하는 환자들을 보는 것은 마음이 불편했다.

불편한 마음만큼 나아지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아까 만난 환자는 20대 초반의 어린 환자였다.

그리고 낯이 꽤 익는데...

친구 1.
아 진짜, 그 선수 너무 아까워... 몇 없는 해외 리그 진출 여자 축구선수 였는데....


석진
아 그래...?

친구 1.
너도 그 쪽 일하니까 알겠다..?


석진
뭘...?

친구 1.
류마티즘 말이야, 그게 그렇게 아프다며?


석진
아프지... 엄청... 관절이 다 부으니까...


석진
근데 그 선수 이름이 뭐라고...?

친구 1.
김여주라고 있어.. A군 선수 된지 얼마 안 됬는데.. 갑자기 류마티즘이 발병했다던데?.... 지금은 국내에서 쉬고 있을껄?

친구 1.
거의 은퇴 각이야 너무 안타까워...

여자 축구 해외 리그에 관심있어하던 그 친구는 선수 이야기를 하며 얕은 한숨을 쉬었다.


석진
'김 여주....'

석진은 자신을 보며 심호흡하던 여주의 모습을 떠올렸다.

다음날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난 석진은 김여주에 대해 찾아보있다.


석진
'차트를 좀 볼까...?'


석진
'김여주'


석진
'발병한 지는 얼마 안 되었군... '


석진
휴..


석진
'내과 협진... 자가면역질환 치료 병행.."


석진
'20대의 류마티즘 환자라.. '

석진은 조용히 차트를 덮었다.


석진
오늘은 좀 어떠세요? 괜찮아요...?


여주
아뇨, 전 인생이 이제 끝난 것 같아요.. 너무 힘들어요..

여주의 주치의는 어느새 석진으로 바뀌어 있었고 둘은 주기적으로 치료를 위해 만나고 있었다.


석진
마음이 힘든 거라면, 차라리 상담을 받아보면 어때요?


여주
싫어요. 모두 절 위로하려고 할 뿐이에요. 정말 짜증나요.


여주
전 위로가 필요한 게 아니에요... 살아갈 이유가 필요한 거죠...

어느새 석진이 익숙해진 여주는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었다.


석진
저.. 축구 선수 였다면서요....?


석진
미안해요. 우연히 알게되었어요....

석진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여주
괜찮아요.. 사실인걸요...저를 알아보는 사람도 많은데, 선생님은 처음에는 모르셨나봐요..


석진
아.. 네.. ㅎㅎ


석진
미안해요.. 바로 못 알아봐서..

석진은 여주를 못 알아본 것이 쑥스러운 듯 웃었다.


여주
그래서 좋았어요..


석진
네..?


여주
다른 사람들은 너무 아깝다, 어쩌냐, 힘내라 하는데


여주
샘은 그렇지 않으시잖아요.


여주
앞으로 나아질 기미가 보여야 힘을 내죠.. 안그래요?


석진
...

석진은 뭐라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여주
아픈 게 멈춰야 재활이라도 하고.. 뭐라도 하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여주
전 이제 모든 게 끝났어요.


여주
나한테는 운동이 내 삶의 전부였는데, 이젠 없어졌어요..

잠시 생각하던 석진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석진
그럼 저.... 작은 것 부터 찾으면 어때요...?


여주
...


석진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하나 둘 찾아보면 뭔가 나오겠죠..


석진
그리고 할 수 있는 일들이 하나 둘 모이면, 그게 점점 모여서 나중에는 살아갈 이유도 되지 않을 까요?

이번에는 여주가 생각하는 듯 말없이 석진을 바라보았다.


여주
... 한번 생각해볼께요....

시술이 끝날 무렵이 되서야 여주는 석진의 말에 겨우 대답 했다.

석진이 다시 여주를 만난 것은 병원 내 공원이었다.

통증이 다시 심해진 여주는 결국 입원을 하게 되었다.


석진
여주씨~ 입원하고 지금은 좀 어때요?


여주
죽다 살아났죠, 뭐..

여주는 쓴 웃음을 지었다.


석진
그래도 지금은 좀 나아진 것 같아보이네요...


여주
좀 살아났으니까요... ㅎㅎㅎ


여주
샘 덕분에 조금 나아져서 재활도 하려고 해요..

여주의 표정이 그동안 보던 중 가장 밝아보였다.


석진
오... 축하해요!

석진은 진심을 담아 축하했다.


석진
그럼.. 작은 일도 찾아보고 있어요...?


여주
어..? 음.... 잘 모르겠어요...


여주
찾지 않은 건 아닌데... 아직 뭘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석진
음... 그럼 퇴원한 뒤에, 소아병동에서 봉사활동 한 번 할래요..?


석진
저 이번 분기에 프로그램 진행하러 가는데 보조 진행자가 필요하거든요...

여주는 석진의 제안에 잠시 생각하는 듯 했다.


여주
... 좋아요... 갈께요..!

아이들이라... 여주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왠지 석진샘의 권유를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봉사활동에 동참하기로 한 여주는 병원 프로그램실에 왔다.


석진
여기, 이거 나눠주고 잘 못하는 애들 같이 해주면 되요..


여주
네... ㅎㅎ

생각보다 봉사활동은 나쁘지 않았다. 아이들은 열심히 했고 여주도 아이들이 이뻐보였다.


여주
샘이 이거 도와줄까..?

아이 1
네~~~

아이가 활동지를 미치고 좋아하자 여주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여주는 이후에도 꾸준히 봉사활동에 나왔다. 매주 한번씩 석달 정도 진행된 봉사활동이 끝나는 마지막 날이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병동 복도에서 석진은 여주에게 말을 걸었다.


석진
여주씨, 그동안 어땠어요??


여주
생각보단 괜찮았어요..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친해진 애들도 있고....


여주
장기입원하는 아이들도 함께하면서 밝아지는 거 보니까 뿌듯하네요...


석진
애들이 귀엽죠....?

석진의 미소에 여주도 웃는 얼굴로 화답했다.


여주
네.. ㅎㅎㅎ


여주
(사실은 애들보다도 샘이랑 같이 해서 좋았어요)

여주는 진심을 전하지 못한 채 말을 삼켰다.


석진
같이 밥 먹을래요? 여주씨가 그동안 열심히 와줬으니까 제가 살께요.


여주
네.. ㅎㅎ 좋아요..!

이후 둘이 만난 곳은 파스타 집이었다.


석진
여주씨 이런 거 좋아하세요? 제가 메뉴를 잘 골랐는지...


여주
그동안 몸관리하느라 잘 안 먹던 거라 오히려 좋아요...


여주
아마 시즌 중이었으면 지금 못 먹었겠죠~

여주는 씩씩하게 웃었다.


석진
비록 힘든 상황이긴 하지만, 소소하게 얻는 것도 있네요.. ㅎㅎ


여주
그렇죠... ㅎㅎ


여주
(샘을 만난 것두요..ㅎㅎ)

여주는 이번에도 말을 삼켰다.


석진
원래 애들 좋아했었어요? 여주씨 생각보다 넘 잘하시더라고요.. ㅎㅎ


여주
아뇨..


여주
그냥 어릴 때 생각도 나고 좋았어요. 초등학교 고 학년 때부터는 유스팀에 들어가서 운동만 했거든요..


여주
이젠는 운동아닌 다른 걸 찾아봐야할 때인 것 같지만...


여주
앞으로 어떻게 지낼지 생각해보려구요...


여주
샘 말대로 작은 것들을 찾아가다보면.....


여주
뭔가 찾아질까요...?

여주의 말에 석진은 뭔가 마음이 뭉클했다.


석진
찾아지겠죠...? 거창할 필요는 없어요... 조금씩 천천히 찾아가봐요.. ㅎㅎ


석진
우리, 식기 전에 얼른 먹어요..

둘은 이후 맛있게 식사를 했다.


여주
커피는 제가 살께요!


석진
아 여주씨.. 제가 내야하는데, 절 그동안 도와주신 거잖아요..


여주
거절하지 마세요.. ㅎㅎ 저 이래봬도 올해 초까지 잘 나가는 축구선수였다구요..


여주
커피 정도는 제가 내게 해주세요..

석진은 여주와 마주 앉자 문득 여주가 많이 바뀌었음이 느껴졌다. 처음 만났을 때만해도 울고불고 힘들어하던 여주였는데...


석진
사람이 회복해가는 과정은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지금 여주씨가 처음 만났을 때랑 얼마나 달라졌는지 여주씨는 모르죠..?



여주
왜 모르겠어요... 저 지금은 그때만큼 힘들진 않아요...


여주
샘 말대로 작은 것부터 찾고 있어요..


여주
날씨는 어떨지, 오늘은 어떤 일이 있을지 기대하면서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그런 것들요..


석진
잘하고 계시네요... 요즘 사실 병원에 자주 안오셔서.. 예전처럼 많이 아프지 않은 가봐요...


여주
네.... ㅎㅎㅎ 잘 맞는 약도 찾았구요.


석진
처음에 막 아프던 고비를 지금 넘긴 것 같아요. 어느정도 증상에도 익숙해지셔서 조절도 하시는 것 같고.. 여러모로 잘 되었어요...

여주는 침을 꿀꺽 삼켰다.

여주는 지금 이야기해야할 것 같았다. 앞으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니까..


여주
선생님..


석진
네..?


여주
샘도 제 소소한 삶의 이유 중 하나였어요..


여주
고마웠어요ㅎㅎㅎ

여주는 쑥스럽게 웃었다..


석진
어...? 왜 과거형이에요...?


여주
아... 저, 봉사활동이 끝났잖아요.. 이제.. 또.. 만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여주의 표정에는 아쉬움도 묻어났다.


석진
그럼... 우리 만날래요? 여주씨만 괜찮다면요..


여주
어... 엇... 좋아요..


석진
같이 소소한 것들.. 계속 찾고 채우며 다녀요..

그동안 성실히 맡은 일을 하는 여주를 보며 호감을 느낀 건 사실이었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에게도 늘 친절하고, 아이들을 썩 잘 다루진 못해도 성심성의껏 대한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주
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작은 일을 찾다보면 조금씩 그런 것들이 모여서 살아갈 힘을 주는 것 같아요.. 고마워요..


여주
우리 그럼 앞으로도 잘 만나봐요..

여주는 씩씩하게 손을 내밀었다

가만히 손을 잡으며 미소로 화답하는 석진이었다.

와... 정말 오랜만에 미리별 숙제 덕분에 비주얼 팬픽을 쓰네요..

다시 쓰니 넘나 새롭고 좋아여.. ㅎㅎㅎㅎ

2023. 8. 31제출.

글자수 4643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