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별 유치원 [라벤더반] 크미

5월 5일 숙제. 어린이날 "놀이공원 그남자"

"아지작가"님의 작에서 이어집니다.

그렇게 속시원해 하던 순간...!

나는 그 말을 듣고야 말았다..

석진 image

석진

현서야, 괜찮니..? 우선, 엄마아빠한테 연락해보자...

엥... 뭐시라..? 엄마 아빠...? 아내에게 전화하는게 아니고.....?? 아, 혹시 아내가 없나...?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알바 동료 image

알바 동료

빨리 가시죠?? 퍼레이드 밀려요...

앗차...? 상황판단을 하려는 순간 다른 인형들에게 밀려서 앞을 떠나게 되었다.

살짝 뒤돌아보니 벤치에 현서를 앉히고 안절부절하는 그 남자에게 뭔가 무척이나 미안해지기 시작하는데...

잠시 뒤, 알바가 끝나자마자 나는 남자가 넘어졌던 곳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시간이 이삼십분 흐른 뒤였고, 당연하게도 남자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렇게 터덜터덜 돌아가는데 인적이 한적한 곳에 그 남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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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

어어, 누나 현서 괜찮아...? 형부랑 시간보내라고 내가 현서 봐준 건데.. 괜히 미안하게 되었네...

뭐라고...???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우고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현서는 누나의 아이였던 것 같았다.

날티나는 외모와 달리 건실한 청년인 듯한 이 남자는 맞벌이를 하는 누나 부부를 대신해서 종종 조카를 봐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이고.... 내가 무슨 오해를 한거야....?? 아 진짜 너무 창피해..ㅡㅡ

그래서 들키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쿵...!

그만 누군가와 부딧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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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

저기 괜찮으세....어? 여주씨..?

그만 그 남자랑 부딧쳐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이 남자가 나를 돌아보는데 그 모습이 갑자기 슬로우모션으로 보였다.

그런데 볼 때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이 남자 참 잘생겼다. 정말이다.

그..그나저나, 나 그럼, 이제 넘어가도 되는 거지....? 유부남 아니라는 게 확실하잖아, 그치? 괜찮은 거지?

머릿 속이 순간 복잡해지면서 나는 얼어버렸다.

내가 어버버하고 있자, 남자는 다가와서 괜찮냐며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그 눈을 바라보는 순간 가지고 있던 경계심이 탁 깨져버리면서 결심했다.

플러팅이면 어때, 만나보지 뭐...

그리고 그 다음엔 어떻게 됬냐고...?

우린 폐장할 때까지 잠시 놀이공원을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을 했다.

이야기 나눠본 이 남자는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조카에게도 관심이 많았고 내가 카페에서 현서를 챙겨주는 모습도 좋았다고 했다.

그래서 연락처를 줬다나... 뭐라나...

생각해보면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어린이날 인형탈 알바를 했던 그날 아이들을 챙기며 팬스 밖으로 돌아가던 모습이 무척 다정해보이고 좋았다.

물론 그 아이가 이 남자의 아이인줄 알고 잠시 방황하긴 했지만... ㅎㅎㅎ

그래서 그렇게 우리는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또 하루는 영화를 보고

또 하루는 나들이도 가고...

그렇게 만나다보니 어느새 우린 같이 살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좋아하던 우리답게 허니문 베이비도 생겼다.

만난지 10년째 되는 날, 우리는 어린이 날을 맞아 놀이공원에 와있었다.

이 남자를 꼭 닮은 우리 딸 연서를 데리고서 말이다.

김여주

연서야~ 놀이공원 오니까 좋지? 있다가 우리 퍼레이드도 보고 관람차도 타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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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

그럴까....? 그런데 나는 퍼레이드는 좀 안 끌리는데...

김여주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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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

음... 안 좋은 추억까진 아닌데 예전에 조카 데리고 갔다가 넘어진 적이 있어서...

나는 그 말을 들으니 왠지 마음 한켠이 푹 찔렸다. 그거... 난데.... 아 이렇게 말 못 할 비밀이 될 줄 알았다면 시작도 하지 말았어야했는데... 후회막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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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그날 저녁에 너를 우연히 마주쳐서 만나기로 한 거니까...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김여주

하.하.하... 그렇지...? 그 때 넘어지지 않았다면, 우리 못 만났을 수도 있잖아...

역시 이 이야기는 솔직히 고백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저녁 퍼레이드는 연서가 너무 좋아해서 즐겁게 볼 수 있었다.

퍼레이드에 지나가는 인형탈을 쓴 알바생들을 보니 처음 이 남자를 봤던 날이 생각났다.

여러 아이들을 다정하게 챙기던 모습..

어린이날, 인형탈 알바는 참 힘들었지만...

그 모습은 오래오래 기억해야겠다.

글자수 2014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