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순간

프롤로그: 순간의 순간

흔히들 소설에서는 같은 유치원,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나온 친구와 사랑에 빠진다는 소재가 많다. 왜 그럴까 하는 의문은 예전부터 시작되었다. 왜 시작되었냐고? 그건 쟤랑 친구해보면 안다. 어렸을때부터 쟤랑 다니면서 좋았던점이...아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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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면

또 설탕폭탄들 받았어. 너 다 먹어라

연인이나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는 날이 되면 김준면은 항상 선물들을 많이 받았다. 도데체 저새끼 한테 왜 주는 거지? 그리고 지가 싫어하니깐 나한테 주는것 봐. 하여간 못돼 쳐먹었다. 역시 어렸을때 부터 인성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아싸! 역시 너 밖에 없다! 잘 먹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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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면

갑자기 왜 날 경멸스러운 눈으로 쳐다봐?

옆통수에도 눈이 달린게 분명하다. 분명 시선은 앞이었는데 쳐다보는건 또 어떻게 알았데? 괜히 민망해져 그의 신발위를 삐죽 튀어나온 핑크색 수면양말을 쳐다봤다. 저 양말은 내가 중학교때 사준 선물이다. 발이 시릴때마다 이용하는 핫잇템이다.

근데 준면아, 그 양말 내가 왜 사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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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면

그냥 사줬잖아 이쁘다고

김준면과 나는 유치원때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다른학교로 가본적이 없다. 지금 나이가 몇살이냐고? 20살이다. 청춘이 시작되는 나인데... 세상염병, 대학교까지 같이 다닐줄은 꿈에서도 몰랐다.

덕분에 친구사귈 걱정은 줄었지만 걔랑 16년에 이어 20년까지 채우게 생겼다. 세상에. 상상만 해도 너무 끔찍하다. 1년에 주름이 한 12개씩은 생기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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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면

맥주 뭐 사게?

당연히 맥주는 구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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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면

응 사이다 마셔, 너 술 끊는다며

아 맞다 나 다이어트한다고 했지. 성인이되니 술을 자주 마셔 살이 쪘다. 주류을 지나 음료으로 가는 김준면의 손을 애석히 쳐다봤다. 근데 준면아 둘 다 살은 똑같이 찌지 않을까?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뒤에 날아올 잔소리가 두려워 가만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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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면

가자 박찬열이 치킨 왔데

그래, 술을 끊는다고 마음 먹으면 뭐하나 대신 치킨을 먹는데. 그래도 치킨이란 단어 듣자마자 웃음이 나오는건 어쩔 수 없나보다. 치킨아 기다려라 누나가 간다! 치매. 그건 나를 뜻하는 단어다. 처음에 김준면이 나를 그렇게 불렀을때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의미를 알고나서 스스로를 치매로 인식했다. 치킨 매니아의 줄임말이 치매다. 김준면 자식의 작명센스는 구리지만 어쨋든 치킨과 관련되있으니깐 됐다. 신나있는 나와 평온한 김준면의 조화가 썩 나쁘지않았다. 쟤는 항상 평온하더라.

빠르게 걷는 나를 따라 김준면도 발걸음을 빨리 했다. 치킨은 식으면 안돼. 앞만 보고 달리면 쉽게 넘어진다는 소리가 있지만 그건 나에게 해당

악!!!!아퍼!!!!

이 되네. 그건 나를 저격하는 말인가보다. 길의 틈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무릎바사삭 발목 바사삭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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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면

그러게 내가 전부터 뛰지말라 그랬잖아 멍청아

업어줘라. 걸을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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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면

미쳤냐? 나는 허리 아작날 일 만들지 않아.

그럴 줄 알았다. 예상한 반응이라 어떻게든 일어나려 애썼다. 용캐 일어나긴 했지만 발목이 너무 아프다. 진짜 아픈데? 엄살이 아니라 진짜다. 내 머릿속엔 치킨이고 나발이고 욱씬 거리는 발목만 있었다.아! 한걸음 내딛자 마자 터져나오는 신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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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면

엎혀

가만히 나를 지켜보다 등을 보여주는 김준면이 었다. 엎히라고? 진짜? 멀뚱이 쳐다보기만 하니 직접 나를 업었다. 살은 얼마나 많이 찐거냐. 나를 디스 하는 말은 추가요. 짜식, 많이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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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면

맥주는 니가 들어, 무거워.

당연하죠 준면님!

맥주를 넘겨주고 김준면은 손을 무릎 뒤로 넣어잡아 내가 민망하지 않게끔 배려해줬다. 이럴때 보면 진짜 착하단 말이지. 순간 가슴이 뛰었다. 뭐? 가슴이 뛴다고? 미쳤냐? 바람이 불고 어깨너머로 김준면의 샴푸냄새가 내 코에 들어왔다.

젠장. 너무 향기롭다. 심장이 점점 빨리 뛴다. 발목이 아파서 심장이 놀란게 분명하다. 갑자기 이럴 리 없잖아, 정신차려! 이건 16년 우정의 배신이야. 어느새 집에 도착해 김준면이 날 내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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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열

야 치킨 다 식었잖아!!!!맥주를 만들어서 오냐!!!!

찬열이의 아우성은 가볍히 무시했다. 지금 치킨이 중요한게 아니었다.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쇼파에 앉아있는 김준면을 쳐다봤다. 잘생겼다. 섹시하다. 멋있다.

세상에 나...사랑에 빠졌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