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살인사건
A-2



앨리스
..‘부점이었다’.

왜 갑자기 이 말이 생각났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언젠가 들어봤거나 듣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빌
(눈이 휘둥그레진다)어떻게 암호를 알고 있지? 비밀이 새나갔나?


앨리스
비밀이 새나갔다고?

빌은 겨울잠쥐를 노려본다.

겨울잠쥐는 여전히 숨을 색색 내쉬며 잠들어 있다.


빌
..역시, 잠자는 척 하는 건가?


앨리스
음, 혹시 겨울잠쥐 앞에서 암호를 말한 적이 있어?


빌
응. 정확하게 따지자면 난 앞쪽 절반을 말했고, 나머지는 네가 말했지만.


앨리스
방금 전에 우리 둘이 말한 거?


빌
응. 기억 안 나?


앨리스
기억나.

‘스나크는 부점이었다’가 암호라고? 상식은 아니지만 스나크에 관심이 있다면 알 수도 있는 정보잖아. 이런 걸 암호라고 정하다니.


빌
기억난다니 다행이다. 네 머리가 이상해진걸까봐 걱정했어.


앨리스
어째서 내가 이 암호를 알고 있었던 걸까?


빌
간단하지. 배신자가 있는거야. 배신자가 암호를 말한거야!


앨리스
난 누군가에게 암호를 들은 게 아니야.


빌
그럼 ‘누군가 아님’에게 들었어? ‘누군가 아님’이 배신자구나!


앨리스
배신자는 무슨, 머릿속에서 떠올랐어.


빌
그럼 누가 배신한거지?


앨리스
배신자는 없어. 암호가 문제야.


빌
암호는 죄가 없어!


앨리스
스나크에 대한 사실을 암호로 만들면 어떡해.


빌
(골똘히 생각하다가)스나크는 부점이었어?


앨리스
가끔 부점인 스나크가 있잖아.


빌
오. 새로 알게 된 사실이군.

앨리스는 머리가 아파 대화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궁금한 건 끝까지 알아봐야 하는 성격이다.


앨리스
스나크가 부점이라는 사실을 몰랐는데, ‘스나크는 부점이었다’라는 암호는 어떻게 정한 거야?


빌
몰라.

이 쯤에서 앨리스는 자리를 뜰 뻔 한다.


앨리스
..그게 무슨 말이야?(짜증을 억누르며)


빌
음.. 그냥, 너에게는 이 암호를 말해야 한다고 외쳤어.


앨리스
누가?


빌
빌이?

앨리스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가다간 자제력을 잃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앨리스
그래. 이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고..

“큰일이다!”

시종들과 말이 눈 앞을 달려간다.


빌
뭐야, 왜 그래?


앨리스
왕의 시종들과 말이 허둥대는 걸 보니 답은 하나야.


빌
역시 배신자가 있었던 거야?


앨리스
그게 아니라 담에서 떨어졌어.


빌
뭐가 떨어졌는데?


앨리스
‘뭐가’가 아니라 ‘누가’야. 적어도 여기서는.


빌
어디?


앨리스
여기. 이상한 나라.


빌
이상한 나라?


앨리스
이 세계 말이야, 빌


빌
넌 이 세계 말고도 다른 세계를 알아?


앨리스
음, 방금까진 알고 있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자신이 없네.


빌
무슨 소리야?


앨리스
제대로 기억이 안 나. 기억이 안 나는 게 아니라 기억이 날 만큼 실감나지 않는다고 해야하나. 그쪽에 가면 반대로 이쪽 세계가 실감이 안 나겠지만.

빌은 앨리스가 한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한 듯 하다.


빌
그래서 누가 떨어졌는데?


앨리스
정말 모르는거야?


빌
응.


앨리스
왕의 시종들과 말이 달려갔는대도 모른단 말이지.


빌
응.(고개를 끄덕인다)


앨리스
험프티 덤프티.


빌
누구?


앨리스
험프티 덤프티도 몰라?


빌
알아. 내가 언제 모른다고 했어?(발끈한다)


앨리스
무슨 일인지 보러 가 볼까.

이제 지금보다는 의미 있는 오후를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빌
험프티 덤프티는 분명 이쪽에 있을 거야.

빌은 짚이는 곳이 있는지 느닷없이 달려간다.


앨리스
잠깐만 기다려.(빌의 뒤를 쫓는다)


빌
여왕님의 성 정원이야.(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빌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을 보자 거기에는 팍삭 찌그러진 뭔가가 사방으로 흩어져 있다.

거대한 하얀색 껍대기가 보인다. 그리고 검붉은 뭔가도.

앨리스는 노란색이 보일 거라고 예상했기에 조금 놀란다.

뭐, 그렇게 놀랄 건 아니지. 험프티 덤프티가 꼭 무정란이여야 하는 이유도 없잖아?

험프티 덤프티의 시체(시체라기보단 깨진 계란이지만) 주변에 두 명이 서 있다.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사람 취급하는 것이 여기 방식이다.

가까이 다가가니 3월 토끼와 미치광이 모자장수가 서 있다.

어머, 저 사람들 저기서 뭐 하는 거람? 지금쯤엔 보통 정신 나간 다과회를 벌이고 있었는데. 뭐, 지금쯤이고 뭐고 저 사람들은 늘 다과회를 열지만.

미치광이 모자장수는 거대한 돋보기로 험프티 덤프티의 잔해를 열심히 조사하고 있다.

그리고 3월 토끼는 마치 정신이 나간 것처럼 주변을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있다. 아, 정신이 나간 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지만.


앨리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미치광이 모자장수
보다시피, 범죄 수사.

미치광이 모자 장수는 고개도 들지 않고 정말 수사를 하는 것처럼 수첩에 무언갈 열심히 적고 있다.


앨리스
범죄? 험프티 덤프티가 담에서 떨어졌을 뿐이잖아요. 그렇다면 사고죠.


미치광이 모자장수
(갑자기 고개를 획 든다)아니. 험프티 덤프티는 살해당했어. 이건 살인사건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