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살인사건
에이-3


여주와 원우는 잠시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김여주
있지,


김여주
나 지금 좀 무서운데.


원우
난 상당히 흥분돼.


원우
세상에 아직 이렇게 굉장한 일이 있다니.


김여주
그래.. 그러니까 지금 네가 놀란 이유와 내가 놀란 이유가 똑같은 거지?


원우
왜 그렇게 빙 둘러 말하는거야?


김여주
만약 내 착각인데 함부로 말했다가는 분명 내 정신이 이상하다고 여길 거야.


원우
넌 암호가 우연히 일치했다고 생각하는거야?


김여주
윽. 역시 암호구나.


원우
난 그렇게 말했지.


김여주
그렇다면 즉.. 안 돼. 못 말하겠어.


원우
왜? 이유를 모르겠네.


김여주
왜냐니, 너무 이상하잖아. 말도 안 된다고.


원우
이론은 나중에 생각하면 돼. 일단 현상을 분석하지 않으면 이론은 나오지 않아.


원우
그거 알아? 상대성이론은 어떤 상황에서도 빛의 속도는 항상 일정하다는 신기한 현상에서 발생했다고.


김여주
하지만 말 안 할래. 도저히 내 입으로 내뱉을 자신이 없어.


원우
그럼 내가 말하지, 뭐. 이렇게 다람쥐 챗바퀴 돌 듯 옥신각신해봤자 아무 진전도 없을 테니.

원우는 여주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원우
우리는 이상한 나라에 있었어. 그때 난 빌이었고, 넌 앨리스였어.

여주는 작게 비명을 질렀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원우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건 너무하지 않아? 누가 보면 내가 너한테 몹쓸 짓이라도 한 줄 알겠다.


김여주
미안. 너무 놀라서.


원우
내가 무슨 말을 할지는 대충 짐작이 가지?


김여주
응. 하지만 내 망상이 아닐까 싶어서.. 어쩌면 네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 자체도 내 망상이 아닐까?


원우
그렇게까지 의심이 많으면 자기 정신 상태도 못 믿게 돼.


김여주
지금 그야말로 내 정신 상태를 못 믿겠어.


원우
넌 그 세계에서 상당히 정상적인 축에 들었는데 말이야.


김여주
그러니까 이게 지금 어떻게 된 거야? 이거 최면술 같은건가?


원우
그게 무슨 말이야?


김여주
내가 이상한 꿈을 꾸도록 네가 무슨 술수를 부린 거지.


원우
그런 짓을 할 필요는 없는데.


김여주
그럼 뭔데? 네가 어떻게 내가 꾸는 꿈을 알아?


원우
나도 똑같은 체험을 했으니까.


김여주
우리 둘의 꿈이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야?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원우
이유는 아직 몰라. 그리고 단순히 우리 둘만의 꿈이 연결되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아.


김여주
그럼 역시 내 정신이 이상해진 건가?


원우
넓은 의미에서는 그럴지도.


김여주
역시..


원우
하지만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원우
일단 객관적인 현상이 존재한다고 가정해 보고, 모순이 생겼을 때 자신이 제정신인지 의심하면 되니까.


김여주
뭐가 객관적인 현상인데?


원우
이상한 나라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거야.


김여주
내 머리보다 네 머리가 걱정된다.


원우
오컴의 면도날이라고 알아?


김여주
뭐, 유명 브랜드야?


원우
불필요한 가정은 세우지 말아야 한다는 원리야.


원우
즉, 어떤 일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이론을 채택해야 한다는 뜻이지.


원우
지금 단계에서 필요도 없는 복잡한 가설을 검토하는 건 사고력 낭비잖아?


김여주
그러니까, 지금은 이상한 나라가 실재로 존재한다고 받아들이라고?


원우
그렇지. 그러면 깔끔하게 설명돼.


김여주
그래. 이상한 나라가 실제로 존재한다 쳐. 그럼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데?


원우
어디일 것 같아?


김여주
땅속. 아마 구멍에 떨어져서 거기 도착했을거야.


원우
그렇게 큰 공간이 땅속에 있을까? 그리고 그 세계에는 햇빛도 비치잖아.


김여주
그럼, 다른 혹성일까?


원우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아.


원우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어떻게 그곳을 이동할 수 있는지 설명하기는 힘들어.


김여주
이동을 했을까? 몽유병처럼?


원우
단순한 몽유병은 아니야. 우리는 변신한 상태였어.


김여주
잠에 취해서 변신했다고 믿은 건 아니고?


원우
네 말은 우리가 잠든 사이에 집을 나와서, 어딘가에서 만났고, 잠에 취한 채로 이야기를 나눴다는 거네.


김여주
그것 말고는 말이 안 되잖아.


원우
그런 짓을 했다면 누군가 알아차렸을 테고, 우린 지금 대학교가 아닌 병원에 있었겠지.


원우
돌아다닌 게 아니라 둘 다 집에서 잠들어 있었다면?


김여주
그럼 꿈이잖아.


원우
단순한 꿈이 아니야. 두 세계의 특정 인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


김여주
연결?


원우
이쪽 세계에는 나, 원우가 존재하고 저쪽 세계에는 도마뱀 빌이 존재해.


원우
그리고 그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한쪽의 꿈이 다른 쪽의 현실에 해당해.


김여주
결국 꿈 아니야?


원우
자신의 정신 건강이 최우선 과제라면 그렇게 받아들이는 게 가장 손쉬운 방법이지.


김여주
그럼 그렇게 할게.


원우
그래도 상관없지만, 이 사태를 방치하면 저쪽 세계의 네게 불행이 닥칠걸.


김여주
무슨 이야기야?


원우
앨리스는 험프티 덤프티를 살해한 범인으로 몰렸어.


김여주
그랬지. 하지만 그건 미치광이 모자장수와 3월 토끼가 자기들 맘대로 그렇게 믿는 것 뿐이야.


원우
하지만 증거가 있지.


김여주
증거라면, 흰토끼의 헛소리?


원우
이 세계에서는 흰토끼가 뭐라고 하든 증거로 취급하지 않겠지만, 저쪽 세계에서는 엄연한 증언이야.


김여주
앨리스가 체포당할 수도 있겠네.


원우
그럴 가능성이 높지.


김여주
어쩌피 꿈인걸.


원우
그러니까 그냥 넘어가자?


원우
만약 앨리스가 종신형을 받고 감옥에 갇히면 네 인생의 절반이 날아가버리는 거야.


김여주
절반? 꿈은 깨면 그만인데?


원우
반년 전까지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원우
하지만 같은 상황의 꿈을 꾼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서는 꿈 일기를 써보기로 했지.


김여주
나도 오늘부터 시작했어.


원우
좋네. 사람은 무슨 꿈을 꿨는지는 잊어버리니까.


원우
그리고 꿈일기를 쓰면서, 난 엄청난 사실을 알아냈어.


김여주
뭔데?


원우
난 꿈 일기를 쓰는 반년간 매일 이상한 나라의 꿈만 꿨어.


김여주
설마..


김여주
하지만 듣고 보니 나도 그런 것 같아.


원우
그 꿈을 언제부터 꿨는지 기억나?


김여주
글쎄. 아주 최근부터 꾼 것 같기도 하고, 몇 년 전부터 꾼 것 같기도 해.


원우
그럼 질문을 바꿔서,


원우
이상한 나라의 꿈 말고 기억나는 꿈은 있어?


김여주
당연하지.


원우
어떤 꿈?


김여주
어떤 꿈이라니.. 어?


원우
왜 그래?

원우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김여주
갑자기 물어봐서 그런가, 기억이 안 나네..


원우
하지만 이상한 나리의 꿈은 바로 기억나잖아.


김여주
그건 최근에 꾼 꿈이니까 그렇지.


원우
그럼 시간을 주면 다른 꿈을 기억해날 수 있다는 거지?


김여주
당연하지.


원우
좋아. 얼마든지 기다릴 테니 천천히 생각해봐.

원우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기다렸다.

여주는 눈을 감고 심호흡했다.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생각한다면 바로 기억날 거야.

3분이 지났다.

여주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원우는 아무 말 없이 기다렸다.

1분이 더 지났다.

여주는 천천히 눈을 떴다.

원우는 능글맞게 웃으며 여주를 보고 있었다.


원우
기억났어?


김여주
잠시 까먹었을 뿐이야. 원래 꿈은 잘 기억나지 않잖아.


원우
지금까지 살면서 꾼 꿈을 싹 다 까먹었다고?


김여주
전부 기억나지 않는 건 아니야.


원우
그럼 무슨 꿈이 기억나는데?


김여주
…이상한 나라.

여주는 작게 중얼거렸다.


원우
뭐라고?

원우는 웃음을 참으며 물어봤다.

여주는 한숨을 쉬었다.


김여주
그래. 난 지금까지 이상한 나라의 꿈만 꾼 것 같아.


원우
이제부터 매일 꿈 일기를 쓰다 보면 점점 믿기게 될 거야.


김여주
매일 밤 감옥에 갇혀있는 꿈 일기를?


원우
그래.


김여주
매일 밤 잠을 청하기에 기다려질 만한 꿈은 아니네.


원우
그러니 그런 비극을 피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지.


김여주
여차하면 난 탈옥하면 되니까.


원우
그게 말처럼 쉬울까?


김여주
당연하지. 네가 몰랐던 것 같은데 난..


김여주
..뭐해?


원우
흐음..

원우는 여주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원우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 중이야.


김여주
내 이에 뭐라도 꼈니?


원우
그게 아니라 네 마음이 얼마나 단단한지 가늠하고 있어.


김여주
남의 겉모습만 보고 그게 가늠이 돼?


원우
알 수 있을까 해서 시험해봤는데 안 되네.


원우
그럼 직접 물어볼게. 너, 마음이 단단한 편이야?


김여주
글쎄. 남의 것과 비교해본 적이 없어서.


원우
뭐 그래. 망설일 때가 아니긴 하지.


원우
지금까지 이상한 나라와 이 세계를 관찰해본 결과,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어.


김여주
중요한 사실..?


원우
응. 양 세계를 관찰하다 보니 조금씩 두 세계의 관계가 눈에 들어오더라.


김여주
보통은 자신의 망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원우
너도 네 망상이라고 생각해?


김여주
아니. 같은 체험을 한 사람이 있잖아.


김여주
믈론 너도 내 망상이 아니라는 가정하에지만.


원우
나도 마찬가지야. 같은 체험을 공유하는 한 사람이 있어서 망상이 아니라는 확신이 생겼어.


김여주
나 말고?


원우
응. 너는 방금 전에 알았지.


원우
너 말고 다른 사람이 있었어.


김여주
와..

여주는 입을 막고 살짝 뒷걸음질쳤다.


원우
일단 네가 앨리스라는 확신이 필요했어.


김여주
그런데 또 다른 한 명은 누구야?


원우
디에잇.


김여주
뭐?


원우
디에잇도 이상한 나라의 주민이었어.


김여주
아까 디에잇 씨와는 그냥 안면이 있는 사이라며.


원우
이상한 나라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사이니까. 그 전엔 모르는 사이었고.


김여주
그런데 디에잇 씨가 이상한 나라의 주민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어?


원우
어쩌다가 디에잇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는 걸 들었지. 최근에 이상한 꿈을 꾼다고 했어.


김여주
이상한 나라의 꿈이구나.

원우는 고개를 작게 끄덕거렸다.


원우
처음에는 흘려들었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더라고. 꿈의 내용이 나와 같았으니까.


김여주
그것만으로 확신하기엔 이르지 않나?


원우
그렇지. 하지만 디에잇의 말이 너무 신경쓰인 나머지 꿈 일기를 쓰기 시작했어.


원우
그 결과 확신이 섰지.


원우
내가 꾸는 꿈은 실제 세계로 존재해.


김여주
그래서 디에잇 씨에게 먼저 이야기를 한 거야?


원우
처음에는 기분 나빠하더라. 장난인 줄 알았나봐.


김여주
아무래도. 아무 일면식 없는 사람이 그런다면.


원우
그래서 제안했지. 다음 꿈에서 내가 말을 걸 테니 그 내용을 현실세계에서 확인하자고.


원우
..뭐, 그 결과 예상하다시피 성공이었지. 그 때의 놀라움은 죽을때까지 잊히지 않을 거야.


원우
그리고 사실이 명백해지니 연구자로서 흥미가 생겼어. 어떤 원리로 일어나는 현상인지 궁금했지.


김여주
알아냈어?


원우
아니. 가설만 겨우 세우고 있는 단계야.


김여주
어떤 가설인데?


원우
아직 남에게 알려줄 만한 수준은 아닌데.


김여주
상관없어. 정보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원우
알았어.

원우는 입술을 핥았다.


원우
우리는 이걸 아바라타 현상이라고 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