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생이, 일진의 아내?

피는 꽃

투둑, 툭.

날씨는 소나기, 마음 속은 새하얗게 안개. 만약 오늘 일기를 썼을 때 날씨 칸이 있다면 그렇게 쓰고 싶었다.

박지민에게 기대어 있던 몸은 결국 느린 속도로 비틀거리며 걸어서 비를 한가득 맞고 있었다.

생각보다 무지 차갑다, 으. 축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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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00아.

박지민이 나에게 다가왔고, 난 가만히 올려다봤다.

곧 박지민은 잔뜩 젖은 머리칼과 빗물 맺힌 속눈썹이 굉장히 자세히 보일 만큼 우리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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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아직도 김태형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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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너희 둘 다 너무 잘생겼어, 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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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넌 싫어.

000, 잘 생각해. 여기서 이 전생의 연을 확실하게 끊어내야 해. 후.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박지민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조금만 더 건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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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결국 넌 너를 위해서 모든 말을 뱉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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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은 아니니까, 그리고 너를 위해서 걸어나와 준 거 아니야. 나를 위해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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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너도 너를 위해서 행동하잖아. 우리 둘, 참 잘 어울리지 않아?

박지민의 목소리가 떨린다. 앞머리가 비에 젖어 얼굴에 계속 붙지만, 아무래도 박지민이랑 계속 상종하다간 내 주위 사람들이 다 얘랑 부딪힐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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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난 집에 가 봐야 할 거 같아, 집에서 연락할게.

이 정도로 멘탈을 부숴놨으면 이제 괜찮겠지, 알아서 잘 대응하겠지. 김태형… 안 건드리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집으로 뛰어가, 샤워를 하기 위해 축축한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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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까진 기대 안 했는데.

집에는 엄마가 사라진 상태였다. 삼 일간 워크샵이 있을 테니 친구들과 놀라는 포스트잇 한 장만이 성의 없게도 침대 앞 책상에 붙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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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친구가 몇 명씩이나 있다고.

나는 침대로 거세게 엎어져서, 연락처에서 김태형을 열심히 찾았다.

더 성의 없는 기본 프로필 사진에, 기본 배경화면 사진, 성의 없음의 끝판왕인 무 상태메세지에 대화명이 온점 하나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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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 김태형

내가 하다 못해 카카오톡에서도 겁에 질려 있어야 한다니, 난 한숨을 푹 쉬었다.

뒤에 꼬리표처럼 붙어 있던 일은 사라졌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뭐라고 해야 이 연이 끊길지 가만 생각하다, 큰 결심을 하나 했다.

어차피 반 강젠데, 못 할 게 어디 있어. 일진은 내가 잘 교육시켜 다스리면 되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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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귀어 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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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그거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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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박지민 건드리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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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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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우지ㄷ

뭐지, 장난식으로 한 말이었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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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 진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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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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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 이제 박짐한테 꺼지라고 할 수 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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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대로 해

욕이야 안 하면 다행이지, 드디어 연이 끝나겠다고 생각하고 휴대폰을 책상 위에 가만히 올려두었다.

사귀는 부분부터 싸움이 더 심해지리라는 걸 모르고 침대로 파고든 나를 뼈저리게 후회했다.

다음 날 일어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휴대폰의 알림이 가득 울리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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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씨발 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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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대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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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읽었으면 대답하라고

난 아직도 눈을 비비는 상태로 메세지를 욕만 필터링해서 보며 답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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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데 갑자기 욕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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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씨발 니가 김태형이랑 왜 사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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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왜 대답을 했어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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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정해진 연을 거스르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얘 지금 설마 전생을 빌미 삼아 나를 협박하는 건가?

내 목부터 허벅지까지 쪼그라드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연을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지, 나는 모르니까. 적어도 이 질문에 대답을 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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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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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뒤져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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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전생을 알아버린 사람은 그걸 거스를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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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수월기가 그렇게 안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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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가 수월기를 부수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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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수지한테 그랬던 것처럼

약 삼 분 동안 박지민은 내 말에 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다른 채팅방에서 온 톡들을 확인했다.

???

➤ 00이 안녕ㅇ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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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 아 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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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 얘가 사나야 수월기 가지고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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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 00아 김태형이랑 만나기 시작했다며

요즘 소문은 빛보다 빠르다는 걸 너무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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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자키 사나

➤ 보야!! 안녕

아가야, 안녕? 이 분도 나를 아가라고 부르네. 뭐 때문이지. 난 만인의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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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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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자키 사나

➤ 00ㅇ이에 대해서 알ㄹ아보구 와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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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자키 사나

➤ 찌미ㄹ랑 싸우고 있다는 얘ㅐ기를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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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자키 사나

➤ 00이는 찌미를ㄹ 못 이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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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자키 사나

➤目端のある子는ㄴ 그 아이를 이길ㄹ수 잇는 실력이야

저게 무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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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 쟤는 고등학생이야 미나토자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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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자키 사나

➤ 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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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자키 사나

➤ 그러ㅓ니까 나처럼 눈치가 빠른 사람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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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자키 사나

➤ 나쁜 ㅇ왕자 찌미를 물리ㅑ쳐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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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자키 사나

➤ 진짜 왕자님ㅁ처럼!!

미나토자키 선배의 말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박지민에게서 톡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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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내가 가진 수월기는 뭘까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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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을 거 같아?

사나는 변형되지 않은 순수한 수월기를 가지고 있고, 그래서 예언자처럼 유정이에게로, 정국이에게로, 태형이에게로 일어날 일들과 사람들 사이의 연을 알려줘요.

유정이와 같이 전생을 눈치 챈 건 이 년이 넘어가죠. (태형이와 일진 친구들은 일 년, 00이는 이 개월)

그렇기 때문에 눈치가 빠르지만 그냥 사람의 감정을 조금 이해하는 것 정도에요.

석진이는 저 정도면 능력 아닐까 싶을 정도로 눈치가 빨라요. 전생부터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말하기도 전에 이미 다 알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수월기가 없어도 빠르게 연들을 눈치채고 그걸 전생에서, 또 후세에서 태형이에게 전달해줘요.

하지만 태형이는 그 모든 사실을 다 이해하진 못 해요. 그냥 머릿 속에 저장소처럼 넣어놓고 다니다가, 필요한 상황에서 꺼내 쓰는 거죠.